아이와 차박하기, 몸은 피곤했지만 뿌듯하네요

배은설 2023. 5. 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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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바닷가에서 차박하고 느낀 점

[배은설 기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저녁을 먹은 뒤 샤워를 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드는 대신, 차에 올랐다. 세 가족의 첫 바닷가 차박을 위해서였다. 차박이 처음인 생초보인만큼 저녁도 먹고 씻기도 다 마친 뒤, 잘 때 사용할 매트와 차창을 가릴 커튼만 달랑 챙겨 나서기로 했다.

궁금했다. 코로나 이후 급격히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된 차박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불편할 것 같기도,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지금의 날씨라면 밤에 크게 춥지도 않을 테니, 그동안 벼르던 차박을 드디어 실행에 옮겨 보기로 했다.

밤, 바닷가로 향하는 길
 
 늦은 저녁, 첫 차박을 위해 바닷가로 향하는 길
ⓒ 배은설
평소라면 잘 준비를 하고 있을 저녁 시간에, 특히나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어둑해진 저녁에 어딘가로 향한 적이 처음이다 보니 시간대부터가 우리 가족에겐 색다른 출발이었다. 바닷가로 향하는 길, 라디오에서는 밤 시간대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는 디제이의 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창 푸릇해지기 시작하는 5월의 색깔은 까만 밤에 묻혀 볼 수 없었지만, 대신 반짝이는 야경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밤에 더 빛나는 것들이 있었다. 낮에 봤으면 그리 호들갑떨 풍경이 아니었을 텐데, 색색깔의 조명으로 꾸며진 각종 조형물이나 건물들은 낮보다 더 화려하게 빛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밤에 더 빛나는 야경들
ⓒ 배은설
 
달밤에 차박하기

그렇게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밤길을 달려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느 곳에 차를 세우면 좋을지 잠시 고민하다, 바닷가 근처 화장실이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일명 평탄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앞좌석을 앞으로 당긴 뒤, 뒷좌석 등받이 부분을 접어서 평평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트렁크의 짐들은 앞좌석에 몰아넣은 뒤 매트를 깔고 집에서 덥던 이불을 펼쳤다.

작지만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제법 만들어졌다. 우리만의 아늑한 잠자리가 완성됐다.
매트 위에 올라간 어린이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신나서 엎드렸다 누웠다 이리 데굴 저리 데굴거리는 어린이의 흥분에 가득 찬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차박을 시도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장롱 속이나 할머니네 다락방처럼 굳이 비좁은 곳에 찾아들어가서 놀거나 숨는 걸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아이도 아마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짐작됐다.

하지만 마냥 즐거운 아이와는 달리 엄마아빠는 다소 분주했다. 잠자리가 만들어진 뒤에도 앞, 뒤, 옆 창문을 차량용 커튼으로 가리느라, 또 커튼이 들떠 가려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바람에 근처 편의점에 가서 임시로 고정해 둘 테이프를 사와서 붙이느라 얼마간을 더 바쁘게 보냈다. 달밤에 차박하기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이윽고 셋이 나란히 누운 시간은 밤 열한 시가 다 돼 가는 시간이었다. 정말이지 뒤척일 여유라곤 없는 공간이었다. 성인 두 명이 누우면 꽉 찰 차 안에 세 사람이 누운 터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천방지축 어린이는 공간이 있거나 말거나 엄마, 아빠 몸을 번갈아가며 타고 넘기도, 발로 밀어대기도 했다.

그런 아이에게 말은 하지 말라 하면서도, 응징을 빙자해 끌어안았다. 좁은 만큼 서로에게 더 꼭 붙어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들뜬 아이는 한참을 데굴거렸고, 더불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연신 테이프로 고정해둔 차창 커튼을 들추며 그 틈으로 바깥 구경을 했다. 덕분에 우린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지만,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차박을 본격적으로 해보겠단 마음가짐보단, 차박을 한 번 경험해보고 싶단 마음가짐으로 떠나온 터라, 차박 전용 매트가 아닌 아이가 어렸을 적 집에서 깔던 매트를 깐 상태였다. 이 매트는 너무 딱딱하게 느껴졌고, 차 안은 좁아서 자세를 바꾸기도 어려웠다.

이 한 몸 뉘일 자리만 있다면 충분... 했으면 좋았겠지만, 밤새 이곳저곳이 배기느라 피곤한 몸은 그렇지 않다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일어난 새벽. 눈이 퀭했다.

와락 밀려들어오는 파도 소리

차창 커튼을 젖혔다. 응? 퀭하던 눈이 번쩍 떠졌다. 햇살에 끊임없이 반짝이는 넓디넓은 수면이 한눈에 들어왔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딱딱한 매트 위에 다시 누웠다. 가만히 누워 있자니 파도가 쏴 밀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
ⓒ 배은설
커튼을 여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창문을 열었다. 새벽녘인데도 쌀쌀한 공기대신 따뜻한 햇살이 비쳐 들었다. 수면에 반사된 빛이 차안 벽에까지 닿아 아른거렸다.

동시에 파도소리가 와락 차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좁디좁은 차안이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한층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는 사실, 차박의 명백한 이유였다.

아침 7시도 채 되기 전, 잔뜩 졸린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으면서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가놀겠다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아빠는 아들과 함께 해변에서 모래놀이를 했다. 아침햇살에 빛나는 바닷가 프레임 속에서 노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는 행복이 별 건가 싶었다.
 
 이른 아침부터 모래놀이 하느라 신난 어린이
ⓒ 배은설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바다
ⓒ 배은설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위해 필요한 일

모래놀이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해변에 막 도착한 어느 여행객은 우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웠다. 다정한 커플로 보이는 두 사람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아름다운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는 숙소뿐만 아니라, 우리처럼 차박을 즐긴 듯한 차들도, 캠핑카들도 종종 서 있었다. 어느 차 앞, 한 사람이 차를 방패막이 삼아 그 뒤에서 양치를 하고 있었다. 생수통에 들어 있다 입안을 헹구는 데 쓰인 물은, 바닥에 그대로 버려졌다.

첫 차박을 마친 뒤 당일 여행을 위해 차에 올라 천천히 달렸다. 근처 바닷가 마을에서는 미역을 다듬어 말리는 어르신들의 손길이 벌써부터 분주했다. 마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간단한 조리도구를 꺼내들며 아침을 준비하는 부지런한 캠핑족들의 모습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바다를 보며 즐거워하는 이들의 풍경과 바다에서 미역을 채취해 말리는 이들의 풍경이 공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더 나아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역시나 전자인 이들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같은 여행객들, 특히 자연 속에 오래 머무른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즐긴 만큼의 매너 역시 필요했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 배은설
사람이 머물다간 자리에는 고유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때론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멋진 흔적이지 않을까, 우리의 흔적은 지우고 왔던가 같은 생각을 하며, 푸르게 펼쳐진 아름다운 해안 도로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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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위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tick11)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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