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택배기사님에게 쥐여준 5만 원

변은섭 2023. 5. 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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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 사는 딸에게 반찬 보낼 때마다 전전긍긍 하셨는데... 고마운 분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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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은섭 기자]

'으윽... 아, 왜 이렇게 무거워. 끄응'

엄마가 반찬을 또 보내주셨다. 엄마는 분명히 상자가 작아 반찬을 많이 못 넣었다고 하셨는데, 택배기사님이 문 앞에 내려놓고 간 택배상자를 불과 30센티미터 밀어 현관으로 끌고 들어오는 데도 허리가 나갈 지경이다. '아, 뭘 이렇게 많이 넣은 거야.'

딸 집에 반찬 보내기
 
 반찬 택배를 가져갈 택배기사가 오지 않아 부모님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은 다반사였다.
ⓒ Pixabay
 
내가 자취를 시작한 16년 전부터 반찬을 택배로 보내주셨던 부모님은 택배를 보낼 때마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예전엔 택배 회사의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못했던 건지, 무법천지의 시대였던 건지, 택배를 가지러 오겠다던 택배기사가 연락도 없이 오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택배기사가 오기로 한 시간에 맞추어 상자에 반찬을 넣고 테이프로 단단히 묶어 포장을 해놓고 기다렸는데도.

한 번은 집으로 온 택배기사가 김치는 절대 택배로 보낼 수 없다며 포장을 끝내놓은 상자를 굳이 열어 하나하나 확인하더란다. 그러더니 반찬은 배달 안 한다며 가버린 일도 있었다. 이런 만행(?)을 경험한 후로 부모님은 나에게 반찬이 무사히 전달될 수 있을지 늘 노심초사였다.

택배를 보낼 때마다 맘고생을 하시던 부모님은 궁여지책으로 집 근처에 있던 택배회사에 반찬 상자를 직접 가지고 가 택배를 신청하는 방법을 찾아내셨다. 두 분이 들기에는 무거운 무게였지만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게 행복이셨던 부모님은 맘고생보다는 몸고생을 택하셨다.

그렇게 몇 년간 택배를 보내주셨지만, 부모님이 이사를 하면서 다시 택배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여기 저기 전화를 해 택배를 신청했지만, 어째서인지 택배 수거 시간을 몇 시간씩 훌쩍 넘겨 택배기사가 도착하거나, 아예 그날 택배를 가지러 오지 않은 일이 되풀이 되었던 것.

목소리에 잔뜩 화가 담긴 엄마는 포장을 다 풀러 냉장고와 냉동실에 다시 반찬을 넣었다며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이야기했다. 그렇게 택배 때문에 맘고생을 하던 엄마가 어느 날 반찬을 보냈다는 말 끝에 맘에 드는 택배기사를 만났다며 한껏 좋아하셨다.

30대 초반의 청년이 택배를 가지러 왔는데, 호구조사까지 마치셨는지 아직 신혼에 돌이 지나지 않은 아이도 있다는 과한 정보를 알려주시더니, 일을 열심히 하는 괜찮은 택배기사 같다며 굉장히 좋아하셨다.

아마도 택배기사님은 지금껏 부모님이 만난 사람들과는 다르게 싹싹하고 친절하게 응대를 해주신 모양이었다. 계속 이 택배 기사한테 택배를 부탁해야겠다는 엄마의 말 속에는 안도감이 묻어났다.

그렇게 택배기사님께 몇 번 택배를 이용한 얼마 후, 아빠가 택배를 신청하러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마도 화물택배를 전문으로 하는 듯한 그 회사는 이제 개인 택배를 취급하지 않아 더 이상 택배 이용이 안 된다는 거였다. 부모님은 이전에 받아놓았던 택배 기사님의 핸드폰으로 정말 안 되는 건지 확인차 전화를 걸어보셨다.

택배 기사님은 아빠의 전화를 받고는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택배 회사에서 나이가 지긋한 사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알고 보니 사장님과 택배기사님은 부자지간이고, 얼마 전부터 두 분이 같이 택배 사업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사장님은 회사에서 택배를 접수받는 일을 하시고, 아들인 택배기사님은 직접 택배를 나르며 같이 사업을 키워가고 계신 중이었다. 사장님은 '아들이 전화해서는 다른 집 택배는 안 해도, 우리 집 택배는 꼭 배달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면서 배달을 해줄 테니, 내일 시간 맞춰 택배를 준비해두라는 말을 남기셨다.

오늘 내가 받은 택배에 담긴 수고
 
 택배기사님께 기어코 쥐어준 5만 원에는 부모님의 맘고생과 몸고생을 덜어준 고마움이 담겨 있다.
ⓒ 최은경
 
팬데믹 전이었지만, 그때도 택배를 신청하면 택배기사님께 직접 택배를 건네기보다는 문 앞에 놓은 택배를 수거해가는 게 이미 보편화 돼 있던 시기였다. 아마도 택배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택배기사님도 사람을 마주하는 일보다 문 앞에 놓여진 상자를 수거해 가는 게 익숙했을 거다.

70세가 넘으신 우리 부모님은 비대면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보다는, 사람을 대하는 게 편하신 분들이다. 더구나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을 그냥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부모님은, 택배를 가지러 온 택배기사님께 무거운 택배만 들려 보내지는 않으셨을 거다.

더운 데 음료수 좀 마셔라, 힘든 데 과일이라도 먹어라 하면서 뭐라도 입에 넣어주셨을 거고, 젊은 청년이 힘든 택배 일을 열심히 하는 걸 보시곤 '잘 한다', '기특하다' 어깨를 다독여주셨을 거다. 게다가 친절하고 싹싹한 택배기사님이 맘에 들었던 부모님은 몸조심하고 힘내라며 진심을 다해 응원을 해주셨던 모양이다.

사람의 정을 느끼기 어려운 요즘 세상에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택배기사님께 이런 일은 흔치 않으셨나보다. 올 때마다 좋아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우리 부모님의 진심을 느끼셨던 것 같다.

팍팍한 세상에서 택배일을 하며 알게 모르게 받았던 서러움과 고단함이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조금이나마 풀어졌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돈이 되지도 않고, 무겁기는 세상 무거운 우리 집 택배를 계속 배달해 주겠다고 한 게 아니었을까 그저 추측해볼 따름이다.

벌써 몇 해 동안 걱정 없이 반찬 택배를 보내신 부모님은 이번에 택배기사님한테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5만 원을 쥐어주셨다고 한다. 택배기사님은 극구 사양하셨다지만, 막무가내로 주머니에 돈 봉투를 찔러넣는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을 거다.

만 원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는 부모님인데 너무 큰돈 아니냐고 했더니 엄마는 당연한 듯 말하신다. "우리한테 이렇게 잘해주는데, 고마우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택배기사님께 기어코 쥐어준 5만 원에는 부모님의 맘고생과 몸고생을 덜어준 고마움이 담겨있다.

더불어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느낀 택배기사님의 보답과 수고도 들어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운 사이. 부모님은 택배기사님의 친절함과 수고가 고맙고, 택배기사님은 우리 부모님의 마음이 고맙다.

엄마의 반찬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데는 그 무거운 택배를 어깨에 짊어지고 옮겨주신 청주의 택배기사님과 나의 집 앞으로 배달하고 바로 정리할 수 있게 늘 문자를 남겨주시는 서울의 택배기사님이 계신다. 이 분들 덕에 오늘도 난 배부르게 밥을 먹는다.

내가 사는 세상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노력과 수고로 돌아가고 있다. 문 앞에 택배 배달을 완료했다는 문자를 보내주신 택배기사님에게 나도 답장을 보냈다. '늘 감사합니다'라고.  

5월은 가정의 달, 본인의 가정보다 물건을 더 많이 돌보실 택배기사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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