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의 전역, 기분이 우울하다
[조영준 기자]
수림의 꽃다발(Surim's Flowers)
코리안시네마(Korean Cinema) 섹션
한국 / 2023 / 23분 / 컬러 /
감독 : 임시연
출연 : 김세원, 최용준
▲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수림의 꽃다발> 스틸컷 |
ⓒ 전주국제영화제 |
수림(김세원 분)은 내일 전역하는 남자친구의 꽃다발을 위해 새벽 일찍 꽃시장을 찾는다. 이렇게까지 해본 적은 처음이라 평소 같으면 아무 일도 아닌 그냥 꽃을 사는 일조차 어색하기만 하다. 한 송이씩 구입이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한 단이라고 부르는 단위가 몇 송이 정도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가뜩이나 정신없이 긴장되는 와중에 지갑 사정도 그리 변변치 못하다. 요즘 같이 배달도 쉬운 때에, 이렇게 꽃시장까지 나온 건 어쩌면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전역을 축하하는 마음의 크기만큼이나 꽃다발은 크고 풍성하게 선물하고 싶으니까. 생각대로 쉽게 되지는 않는다. 예쁜 꽃들은 역시 가격이 비싸 큰 꽃다발을 만들기에는 지금 갖고 있는 돈이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꽃들은 원래 생각했던 장미꽃에 비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꽃말이 담긴 장미꽃이 그래도 내일 선물할 꽃다발에는 가장 아름다울 것 같다.
좀처럼 내 맘처럼 되지 않는 날이 있다. 생각해서 애써 힘들게 준비했는데 정작 상대방은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제 딴에는 열심히 노력해서 결과물을 만들었는데 다른 누군가의 결과물이 압도적으로 높은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처음부터 누군가 꼭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인지라 이런 상황 앞에서 조금은 섭섭하고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수림의 꽃다발> 스틸컷 |
ⓒ 전주국제영화제 |
사실 수림의 꽃다발에는 있으면 좋은 감정부터 있지 않아도 좋았을 감정까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감정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처음의 시작은 동운의 제대를 축하하는 아주 기분 좋은 감정이다. 오랜 기다림이 끝났다는 해방감은 물론, 제한된 공간에 갇혀 고생했을 남자친구에 대한 축하, 그리고 특별한 제약 없이 이제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겠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말이다. 그리움과 애틋함, 사랑과 같은 감정은 기본 옵션이다.
이런 처음의 감정들만 있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현재 수림이 놓여있는 상황과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사고까지 겹치면서 남자친구가 제대를 하기도 전에 꽃다발에는 아쉬운 마음들이 함께 놓이게 된다. 돈이 충분하지 않아 제일 좋은 꽃다발을 해주지 못한다는 약간의 미안함과 서글픔, 꽃다발을 사서 돌아가는 길에 여고생과 부딪히면서 떨어지고만 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속상함, 그리고 충분하지 못한 선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불안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 복잡한 꽃다발을 들고 남자친구가 전역을 하는 부대 앞으로 향한 여자친구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영화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포착하는 데 소홀하지 않는다. 새벽에 꽃시장을 다녀왔다고, 비어 보일까 봐 종이꽃을 몇 개 접어 꽂았다며 웃고 있지만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계속해서 남자친구의 표정을 살피는 그 모습을.
03.
그런 수림의 마음을 동운이라도 잘 들여다 살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근처 모텔에서 사랑을 나누기는 했지만 적어도 첫 끼니는 밖에 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줄 알았던 수림과 달리 동운은 배달을 시켜 먹자고 하고, 남들 다하는 전역 기념 촬영도 동운은 자신의 짧은 머리가 조금 길고 나면 찍고 싶다고 말한다.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수림이 미리 스튜디오에 예약을 다 해놨다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말이다.
갑자기 두 사람의 모텔방으로 배달 주문된 커다란 꽃바구니도 수림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종이를 접으면서까지 모자란 부분을 채워온 자신의 장미 꽃다발과는 눈에 보이게 차이가 날 정도로 크고 화려한 동운의 꽃바구니가 고마우면서도 씁쓸하다.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지만 새벽 아침부터 꽃시장에 나갔던 자신의 어제가, 지갑을 몇 번이나 확인하며 최대한 맞춰 꽃다발을 마련해야만 했던 자신의 현실이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탓이다.
▲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수림의 꽃다발> 스틸컷 |
ⓒ 전주국제영화제 |
04.
그래, 이 날의 모든 일들이 그랬다. 그냥 지나가려면 충분히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들. 크게 다툰 것도 아니고 서로에게 치명적인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어쩐지 기분만 조금 불편한 상황들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것들이 더욱 큰 서운함을 남긴다. 큰 무언가를 바란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조차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상대의 무신경함에, 큰 문제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속이 좁아지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이 미묘한 거리에 위치한 사랑을 포착해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지점이 이 영화 <수림의 꽃다발>이 가진 매력이다. 사랑이 아닌 것은 결코 아니지만, 어느 한쪽의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는 한쪽이 기울어진 사랑. 영화는 그런 사랑의 모양을 직접 말을 하기엔 사소하고,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기에는 답답한 정도의 경사를 유지하며 그려나간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 쪽으로 치우치지는 않도록.
양쪽 모두를 굳이 이해해 보자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한 사람은 이제껏 미뤄두었던 '우리의 현재'를 힘껏 즐기고 싶었을 뿐이고, 반대로 한 사람은 이제 모자랄 일 없이 충분할 '우리의 미래'가 있으니 오늘은 조금 편하게 보내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나 역시 차창 너머의 노을을 바라보며 다소 지친듯한 수림의 편을 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꽃다발에 놓인 그 어떤 감정도 어루만져주지 못한 동운의 오늘을 돌이켜보면 말이다. (수림의 꽃다발에 대한 행방은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말이 없을 꽃다발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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