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 생활]교통사고 시뮬레이션, 살인 누명을 벗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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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폐 질환으로 오래전부터 기력이 없었고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한 그를 살뜰하게 보살핀 것은 아내였다.
아내는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조심조심 운전하였으나 내리막길에서 운전대가 말을 들지 않았다.
액수가 매우 컸던데다 시속 30km 이하로 운전했는데 아내는 멀쩡하고 남편의 목만 부러지는 것은 굉장히 의심스러운 정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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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폐 질환으로 오래전부터 기력이 없었고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한 그를 살뜰하게 보살핀 것은 아내였다. 공기가 좋다는 시골로 내려간 것도 아내의 결단이었다.
어느 겨울, 눈이 한바탕 몰아친 다음 도로는 매우 미끄러웠다. 아내는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조심조심 운전하였으나 내리막길에서 운전대가 말을 들지 않았다. 황급히 운전대를 돌리는 순간 갓길 언덕에 차량이 부딪쳤다. 앞 범퍼가 ‘빠지직’하는 소리를 내며 깨졌다. 아내는 가슴을 운전대에 부딪쳐 통증이 있었다. 남편을 돌아보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사망했다. 진술을 듣던 경찰은 보험 가입 유부를 확인했다. 아내는 남편 사망보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시신을 이송한 병원에서는 엑스레이 촬영 후 남편의 목뼈가 부러져 사망한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경찰은 보험 액수를 확인한 후에 살인사건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액수가 매우 컸던데다 시속 30km 이하로 운전했는데 아내는 멀쩡하고 남편의 목만 부러지는 것은 굉장히 의심스러운 정황이었다.
부검에서는 사인이 확실했다. 우리 몸에 목뼈는 총 7개가 있다. 사망자에게서는 위(2~3목 뼈 사이), 중간(4~5목 뼈 사이), 아래(6~7목 뼈 사이)에서 골절과 출혈이 있었다. 사망원인은 다발성 목뼈 골절에 의해 목 신경(경수)이 손상된 것으로 명확하게 관찰되었다. 이 밖에 무릎을 대시보드에 부딪치며 피하출혈이 있었다. 혈액에서는 수면제나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다.
할리우드 배우 스티븐 시걸 같은 절륜한 무예가 있더라도 이렇게 목뼈 여러 개를 부러뜨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명쾌한 수치가 필요했다. 최근 교통사고나 추락 사망자에게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일명 마디모)을 적용하여 관찰 손상 부위와 맞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차량의 종류와 조수석의 위치 등을 고려하여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해석 결과 시속 30km에서 갓길의 물체와 충돌한 순간 인체모델은 의자 앞쪽으로 이동하면서 무릎이 대시보드에 접촉하게 되고 이 부분이 회전중심이 되어 머리가 천장에 걸려 목 부분이 꺾이는 현상 발생했다. 시속 20km부터 머리가 천장에 걸리는 시뮬레이션이 확보되었다. 남편의 목과 무릎의 손상과 일치하는 소견이었다.
결론적으로 남편은 안전띠를 매고 있지 않고 차량 좌석을 뒤로 젖힌 상태였는데, 낮은 속도라도 안전띠를 매지 않은 경우 전방 물체와 충돌할 경우 상체가 세워지면서 천장에 목이 걸리며 다발성의 목뼈 골절이 나온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내는 살인 혐의에서 벗어났고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교통사고 사망자에 대한 부검은 법의학자에게 의료사고만큼 힘든 사례에 뽑힌다. 가끔은 부검 없이 교통사고 상황을 해결하다가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것이 교통사고 사망이다. 법의학자는 부검을 통해 확보한 사실에 더하여 영상 자료와 위에서 언급한 최신의 컴퓨터 모델링 등 다양한 자료를 이용하여 현장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간단하게 서술했으나 시간이 걸리고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거나 억울한 누명을 벗게 해준다면 그것으로 만족을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기회도 없이 영원히 진실을 밝힐 기회를 상실한 사례들도 꽤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보험금이 높은 사건에 대해서는 반드시 부검을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
유성호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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