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빠져드는 여성, 스스로에게 빠져드는 남성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말>
[송주연 기자]
나는 이분법에 반대한다. 특히, '여자라서 이렇고, 남자라서 이렇고'라는 설명들에 늘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다. 실제로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성별 간 차이보다 개인 간 차이가 더 크다는 것을 입증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성별에 따른 차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원인이 비록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일지라도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관계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여성과 남성은 타인과의 관계를 바라보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에서 대조적인 모습을 종종 보인다(물론, 모든 여성과 남성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대체적인 경향성을 말한다).
요즘 방송 중인 두 드라마 <닥터 차정숙>과 <패밀리>는 이런 남녀의 차이를 '클리셰'처럼 보여주고 있다. 이 드라마들에 드러난 관계성과 관련된 여성과 남성의 심리적 차이를 살펴본다.
▲ 정숙은 레지던트로 일하면서도 끊임없이 가족들을 걱정하고, 이로 인해 일을 그만둘 결심을 하기도 한다. |
ⓒ JTBC |
<닥터 차정숙>은 40대 레지던트 정숙(엄정화)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까지 마쳤지만, 결혼,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현모양처로만 20년을 살아온 정숙. 그녀는 간 이식을 수술을 받은 후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고민하다 '정말로 괜찮은 의사'가 되고 싶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남편과 아들이 일하는 대학병원에 들어가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정숙이 변화를 결심한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가족에게서 소외감을 느꼈을 때였다. 간이식 수술을 하고 퇴원한 정숙을 가족들은 마치 '하녀'처럼 대한다. 그러던 중 정숙은 자신을 제외하고 한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우아하고 완벽했던 나의 아름다운 가족. 그들에게 난 무엇이었을까.' (2회)
즉, 가족과의 관계 안에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 것이다. 정숙에게 판단의 중요한 기준은 '관계'였던 셈이다. 이후 레지던트로 활약하면서도 정숙은 관계를 중시한다. 수술을 거부하는 환자들과 좋은 라포를 형성함으로써 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병원에서 고생하는 아들 정민(송지호)을 보며 불쑥불쑥 모성애가 발휘되기도 한다. 고3인 딸 이랑(이서연)이 힘겨워하자 이를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며 미안해하기도 한다. 5회에는 이랑에 대한 미안함으로 일을 그만두려 하기도 한다. 이렇게 정숙은 자기 자신을 추구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책임감을 느끼며 복잡한 마음으로 지낸다.
반면, 남편 인호(김병철)는 판단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다. 정숙에게 간 이식 수술을 해주기로 결심했을 때도 그는 정숙의 목숨보다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더 생각한다. 남편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고려해 간 이식 수술을 결심하지만, 어머니와 오랜 애인 승희(명세빈)가 반대하자 쉽게 포기해버린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손상당하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이 수술하지 않게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외도를 계속하면서 가정을 유지하는 것 역시 그렇다. 만일 그가 진정으로 애인과 가족을 생각하고 배려했더라면,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애인과 가족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겐 타인과의 관계보다 안정적인 가정과 낭만적 사랑 모두를 성취하고 싶은 자신의 욕구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자녀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의사로 만들고 싶은' 자신의 욕구만을 투사할 뿐, 자녀의 입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자녀와의 관계에 대한 책임은 그저 정숙에게 돌릴 뿐이다.
가족이 전부인 유라 vs 욕구 혹은 인정이 우선인 도훈
첩보물과 코미디가 합쳐진 독특한 드라마 <패밀리>에서도 이런 패턴은 드러난다. 유라(장나라)는 당당한 며느리다. 결혼기념일을 잊은 남편 도훈(장혁)에게 화가 나 혼자 여행을 떠나고, 이런 며느리를 시가 가족들은 물심양면으로 돕는다(1회). 시가에서 유라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있는 중요한 인물로 묘사되고, 가족들은 그녀를 추앙하듯 따른다.
▲ <패밀리>의 도훈은 아내에게 미안하다며 이벤트를 벌이지만 위기만 모면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하지 않는다. |
ⓒ tvN |
반면, 남편 도훈이 가족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도훈은 국정원 요원으로 비밀스런 업무를 수행하느라 바쁘면서도 가정적인 남편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에게 가족은 일하면서 신경을 써야 하는 존재, 혹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거나 인정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처럼 보인다.
도훈은 일 때문에 가족들과의 약속을 늘 지키지 못하는데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며 순간을 모면할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는다. 이는 가족을 진심으로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의 미안함을 해결하는 데 급급한 태도다. 가끔은 자발적으로 집에 일찍 들어가려고 애를 쓰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둘째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그는 "부부가 한 번 하는 게 이렇게 힘든 거야?"라고 외쳐댄다.
4회 그는 이혼한 동료에게 "나는 아침밥 안 먹으면 와이프한테 혼나요"라고 자랑하듯 말하는데, 여기서도 그에게 가족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처럼 보인다. 아버지(이순재)의 재혼을 둘러싼 이슈에서도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묻는 유라와 달리 도훈은 '내가 들은 유언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도훈의 마음은 자기자신을 향해있다.
신경증적인 여성 vs 강박증적인 남성
이처럼 두 드라마에서 여성은 자기 자신을 추구할 때조차 관계를 중시하는 모습을, 남성은 타인과의 관계보다 자기 자신을 우선으로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이런 차이들은 종종 감지된다.
이에 대해 정신분석가 박우란은 저서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에서 여성은 '신경증적'이고 남성은 '강박증적'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은 관계를 통해 무언가를 실현하길 바라고 늘 타인을 살피느라 피곤한 '신경증적'인 상태로 살아가고, 남성은 자기 자신에게 매몰된 '강박증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 인호는 낭만적 사랑과 안정적인 가족 모두를 갖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데 몰두한다. |
ⓒ JTBC |
하지만, 신경증과 강박증은 모두 건강하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삶을 온전히 누리기 힘들다. 더욱이 이것이 기울어진 사회문화적 구조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대체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필요를 더 절실히 느끼는 쪽은 여성들이다. 남성의 시선이 주류의 것으로 여겨지는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들의 '강박증적'인 삶은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주변인의 자리에 있는 여성들의 '신경증적'인 삶은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두 드라마에서도 변화는 여성이 먼저 시작한다. <닥터 차정숙>의 정숙은 가족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에 저항하며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6회), <패밀리>의 유라도 5회 잊었던 과거를 맞닥뜨리면서 자신의 불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숙과 유라가 변화를 시작했듯, 인호와 도훈도 자신들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그래서 '신경증적'이거나 '강박증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과 타인을 균형 있게 배려하고 바라보는 법을 보여준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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