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도서관에 계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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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우 기자]
▲ 서학동 예술 마을 도서관 내부 |
ⓒ 최승우 |
2주 만에 마주한 도서관 주변은 여전히 시끄럽고 부산하다. 도서관 앞 공터에 공사 중인 생활 문화 센터 외관은 점점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으나 공원 조성은 더디게 진행되는 것 같다. 공원 조성을 위해 모아 놓은 흙더미가 수북하고 바닥에는 정리하지 않은 각종 자재와 도구가 널려있어 어수선하다.
예전에 자리한 주차장은 좁아졌고 차량 진입로도 복잡해졌다. 완성된 공원의 모습이 불편함을 상쇄할지 모르겠지만 전에 있던 넓은 주차장과 차량 진입로가 더 좋은 것은 사실이다. 생활의 편리함과 유용함을 위한 개발이 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아쉽다.
도서관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바깥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다르게 도서관의 수목은 가지마다 새싹을 틔워 봄기운을 뽐내고 있다. 봄은 자연에만 변화를 선물하지 않는다. 사람 사는 세상에도 봄맞이가 한창이다. 예술 마을을 이끌 촌장님이 새로 뽑혔고 도서관으로 커피와 떡, 작은 모종을 가져왔다.
▲ 서학동 예술 마을 도서관 정원 |
ⓒ 최승우 |
▲ 도서관 갤러리 |
ⓒ 최승우 |
봄은 산과 들에 초록 물감을 들였다. 초록색에는 평화, 편안함, 자연, 조화 등의 이미지가 있고 기분을 온화하게 해서 마음을 편하게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미술가의 눈에 비치는 초록색은 수십 가지라고 하는데 내 눈에도 열 가지는 넘는 듯하다. 어느 한 가지가 튀어나오지 않게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은근한 색감을 전하는 자연의 모습에 감동할 따름이다. 때가 되어 저절로 생동하는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간직한 자연에 인위적인 힘을 가하려는 인간이 문제일 뿐이다.
도서관 연못에서 우연히 발견한 다슬기는 2주의 시간을 알차게 보냈는지 씨알이 굵어졌다. 한 개의 연못에서 보였던 다슬기는 두 개의 연못 모두에서 관찰되고 개체수도 상당하다. 다슬기의 성장에 맞추어 다슬기의 탄생 비화는 날로 미궁에 빠지는 게 문제이다.
다슬기는 연못 옆 물 밖에 나와 있기도 해서 비가 많이 오는 어느 날 집단 이주를 감행하고 그 어떤 다른 장소에서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슬기를 발견한 사람은 우리와 같이 다슬기의 탄생에 대한 각종 억측과 상상력을 발휘할 것이다. 새 생명의 탄생은 누구에게나 경이로운 일이다.
평일의 도서관의 방문객은 그리 많지 않으며 오전은 더욱더 그러하다. 2주 만의 도서관 출근은 자원봉사자의 존재 이유를 충분히 깨우치게 했다. 햇빛을 쐬지 못한 선인장에 일광욕시키고 도서관 기념품을 정리하고 갤러리를 정비하는 등 할 일이 제법 있다. 평소 같았으면 도서관 출근 후 도서관 안에 자리 잡은 여러 식물에 물을 주고 2층에 올라가 독서를 하는 게 일상이었으며, 간혹 외지인으로 생각되는 방문객에게 도서관을 안내하는 게 자원봉사 활동 대부분이었다.
한 부부에게 도서관을 안내해드리다
은퇴자로 보이는 부부가 도서관을 방문했다. "제가 도서관을 안내해 드릴까요?"라는 말에 "그러시면 고맙죠"라고 응답한다. 도서관 명칭의 유래와 개관일, 장서와 코너 소개 등을 안내하자 긍정적 반응으로 되돌아오고 나도 흥이 나서 도서관 소개에 열을 올린다. 도서관에는 그림엽서 그리기 체험 코너가 있는데 부부가 그린 붉은 색과 갈색의 그림과 하늘색과 녹색을 띤 서로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도서관 안내 중 나의 주 2회 자원봉사 활동에 대해서도 부인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데 따른 답답함이 없냐고 말했으나, 남편은 루틴이 있는 생활은 좋다며 서로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림엽서의 서로 다른 채색, 정기적인 출근에 대해 평가가 명확히 다른 부부가 어떻게 여행을 함께 할까? 아마도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서로 맞추어 가는 부부의 노력이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도서관 방문 후에는 어디를 가시나요?"
부부는 수목원을 거쳐 군산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종교적 믿음이 있다면 한 곳을 소개하고 싶어서 "혹시 믿으시는 종교는 뭔가요?"라고 물었다. 불교라고 해서 금산사 방문을 권하며 소요 시간과 식당을 소개하는 등 오지랖을 떤다. 과한 친절은 계속 이어져 여러 컷의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의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다. 노부부는 가족 모두가 방문하겠다며 물었다.
"내년에도 계실 거죠?"
나는 오랫동안 학생의 질문에 답하는 교사의 삶을 살았다. 그냥 뭉개도 될 답을 정답에 가깝게 답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곳에서 살 계획은 있는데 연로한 어머니가 있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연세가 90세거든요."
"저희 어머니도 90세인데 건강은 괜찮으세요? 우리 어머니는 귀가 잘 안 들리는데."
"저희 어머니도 귀가 잘 안 들리세요."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이 오래 산대요.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어서 그러신가 봐요."
"그러니까요, 스트레스를 덜 받겠죠?"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 도서관 안내를 넘어 가족 이야기까지 발전했으니 짧은 만남에 비해 말의 내용은 차고 넘쳤다. 어쩌면 끊임없이 말했던 직업적 버릇일 수도 있고 비슷한 연배의 사람을 만난 연대감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겠다. "내년에도 계실 거죠?"를 고마움과 감사함으로 인식하고 감정의 파도가 밀려왔을지도 모른다.
요즈음 통화하는 나를 향해 아내가 하는 말이 있다. "왜 이렇게 혼자 말을 해! 상대방 말도 들어야지." 예전에는 상대방과의 통화에서 "응, 응!, 알았어"가 내가 한 말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새는 전화를 받는 상대방이 "예! 예! 알겠습니다"로 바뀌었다. '나이 들어서는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라는 말이 있다. 과묵했던 내가 수다쟁이가 되었다. 더 큰 문제는 말 많은 내가 싫지 않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갑은 열어놓고 있다.
▲ 부부가 그린 서로 다른 그림 |
ⓒ 최승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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