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정전이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전종보 기자 2023. 5. 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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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원 언성히어로] ② 세브란스병원 안상민 전력관리파트장​

스포츠 뉴스 기사를 읽다보면 ‘언성히어로’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주로 경기에서 돋보이진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들을 이렇게 부르곤 합니다. 언성히어로(unsung hero)는 우리말로 ‘보이지 않는 영웅’을 뜻합니다. 사회 곳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언성히어로들이 많습니다. 병원도 마찬가집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무사히 진료 받을 수 있도록, 의사들이 환자를 잘 진료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각자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 언성히어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편집자주)​​

세브란스병원 안상민 전력관리파트장/ 세브란스병원 제공
병원은 정전(停電)이 불허(不許)된 곳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병원에 전기가 끊긴 상황을 상상해보자. 중환자실, 수술실에서는 몇 초, 몇 분 만에 사망자가 발생하고, 입원실, 검사실 등 곳곳에서도 긴급한 상황이 속출할 수 있다. 전력 공급이 중요한 것은 모든 시설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병원은 전기가 잠시라도 끊겨선 안 되는 곳이다. 그래서 병원 전력관리팀은 조금 다른 의미로 늘 응급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안상민 전력관리파트장은 “전기는 모든 건물에서 근본이 되는 주요 인프라”라며 “특히 병원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전실에서 콘센트까지… 전력 관련 업무 총괄
국내 대형병원의 설비용량(설비된 전기 기기가 정상 작동될 때 소모되는 전력 용량 합계)은 대형 쇼핑몰이나 호텔 등과 맞먹는다. 설비용량만 놓고 보면 서울에서 두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세브란스병원과 같은 서울 시내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대부분 한 해 전기요금으로만 100억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이처럼 일정량 이상 전기를 사용하는 시설에는 자격증을 가진 전기안전관리자가 상주해야 한다.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안상민 전력관리파트장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그가 속한 시설관리팀 전력관리파트에서는 발전기, 차단기 등 설비 관리와 안전 점검 등 병원 전력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수행 중이다. 안상민 파트장은 “한국전력에서 공급받은 전기가 병원 안 변전실을 거쳐 말단 콘센트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안전을 총괄해서 책임지고 있다”며 “쉽게 말해 의료원에 들어오는 전기를 총 관리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정전되는 순간 발전기 가동… 최대 7일 간 전력 공급
병원 내에서도 전력이 많이 소비되는 시설, 전력 공급이 잠시만 중단돼도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시설은 특별 관리 대상이다. MRI·CT검사실, 수술실, 중환자실, 진단검사의학과 등이 있으며, 최근 세브란스병원에 들어선 중입자치료센터 역시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시설에 포함된다.

다행히 이들 시설은 정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외부에서 발생한 요인으로 인해 전력 공급이 중단돼도 발전기가 가동돼 자체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전기가 가동되려면 2~3분이 필요한데, 이 시간에도 중환자실, 수술실, 서버실 등 주요 시설에는 UPS(무정전 전원공급장치)를 통해 전력을 공급한다. 발전기, UPS가 정상 가동되지 않는 이상 병원은 단 1분도 정전될 일이 없는 셈이다. 안 파트장은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면 행정 건물이나 교육 건물은 일단 단전시키고, 어린이병원, 심혈관병원, 암병원 등 시급한 곳부터 비상 전력이 공급된다”며 “발전기가 정상적으로 가동된다면 7일까지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본관 비상 고압 발전기. 세브란스병원에는 본관 비상 고압 발전기 5기 포함 총 11기 발전기가 있다. 갑작스럽게 외부에서 전력이 차단되면 비상 고압 발전기가 가동돼 최대 7일 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항공정비사 꿈꾸던 전기공학도… “눈 떠보니 어느새 10년”
안상민 파트장은 올해로 10년 째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처음부터 병원 전력관리 업무에 뜻이 있던 건 아니었다. 사실 그는 항공정비사를 꿈꾸던 전기공학도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항공정비사를 준비하던 중 생계를 위해 병원 전력관리파트에 지원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눈 떠보니 어느새’ 10년 째 이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어찌됐든 대학시절 공부했던 내용과 졸업 전 취득한 자격증은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그 역시 한 때 일에 대한 회의감에 휩싸였다. 가슴 한 켠에 항공정비사라는 꿈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을 터다. 당시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안상민 파트장은 “장비 관리를 위해 어린이병원 10층 무균실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업무를 마치고 나오는데 투명한 커튼 안에 있던 어린 환자가 손을 흔들면서 환하게 웃어주더라”며 “한 눈에 봐도 매우 어린 아이가 하루하루가 어떻게 될지, 왜 아픈 건지도 모르는 힘든 상황에서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는데, ‘내가 교만했구나, 뭔가 잘못 판단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부터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도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의료진·환자가 ‘전기 걱정’하지 않도록 최선”
안상민 파트장은 현재 전기기술사 시험을 준비 중이다. 전기기술사 자격증은 해당 분야에서 최상위에 해당하는 자격증으로, 한 해 합격자가 한 명도 배출되기 힘들 만큼 문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과 병원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기기술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안 파트장은 “전기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한다면 개인으로서 전문성을 갖출 수 있고 당연히 병원 전력 관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즘 그의 고민이자 목표는 ‘안전한 근무 환경 조성’과 ‘전기 요금 절감’이다. 안상민 파트장은 “비용 절감을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단가가 계속해서 오르는 상황”이라며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사람들이 편하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병원은 의료진이 정확한 의술을 펼칠 수 있어야 하는 곳”이라며 “의료진, 환자가 병원에서 전기 문제만큼은 걱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안상민 전력관리파트장/ 세브란스병원 제공
<4담: 네 가지 담지 못한 이야기>
1. 일 할 때 그의 모토는 ‘아무도 다치면 안 된다’라고 한다. 이유를 묻자 “누군가는 어떤 부모의 자녀일 것이고, 누군가는 어떤 자녀의 부모일 것이기 때문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2. 사진 촬영을 위해 장소를 옮길 때마다 안상민 파트장은 천장을 바라봤다. 어느 곳에서든 전기가 잘 들어오는지 항상 확인하는 버릇 때문에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한다.

3. 하루는 근무 중 병동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수술을 앞둔 환자가 의료진에게 ‘수술 중 정전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며 구체적인 대응 절차를 물었다는 것이다. 안 파트장은 환자와 통화하며 절차에 대해 자세히 안내했고, 환자는 ‘믿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4. 세브란스병원 전력관리파트는 직원 대다수가 50세 이상이다. 40대인 안상민 파트장은 ‘젊은 파트장’이다. 그는 팀원들에게 “어린 파트장이지만 최선을 다할 테니 믿고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추가로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가급적 회식도 많이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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