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왕 일당, 대출 3000억으로 집 무한확장…특별법은 또 불발
HUG 보증보험 가입 등 정상전세 252억뿐
인천 미추홀구의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자를 양산한 ‘건축왕’ 남 모(62)씨의 대출잔액이 무려 3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총 전세보증금을 웃도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일으켜 사업을 확장한 정황으로 볼 때 원금 상환 대신 대출 이자만 갚으면서 주택 수를 늘려나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금리 인상으로 인한 이자 상승 압박과 집값 하락 등이 겹쳐 자금난에 빠지자 피해가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
4일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로부터 받은 ‘남씨 소유 건물 피해 보증금 규모’ 자료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파악된 남씨 전세 사기 피해 세대는 2734세대다. 대책위는 남씨 소속의 내부고발자로부터 받은 정보, 전세사기 발생 아파트들의 등기부등본 여람, 부동산 계약서, 피해자 인터뷰 등을 취합해 작성했다.
이들 세대의 전세보증금을 합친 금액은 1957억원으로, 이 중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등이 이뤄진 정상 계약의 보증금 규모는 252억원(12%)에 불과했다. 미추홀구청이 최근 파악한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있는 세대는 874세대뿐이었다.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 전세보증금 규모가 평균 7000만~9000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800억~900억원 정도를 뺀 1000억원가량은 보전받을 가능성이 희박한 셈이다. 이는 작년 한해 발생한 전세보증 사고금액(3422억원)의 3분의 1 수준이며 작년 악성 임대인 1위에 오른 자가 낸 보증사고액(554억원)의 두 배에 이른다.
남씨는 임대주택은 전세를 놓고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을 받은 돈과 보유 주택을 담보로 빌린 돈을 더해 주택 수를 늘려나갔다. 대책위가 자체 추산한 남씨의 대출금액은 3323억원. 이는 피해 아파트의 등기부등본에 게재된 채권최고액을 합친 금액이다. 통상 채권최고액은 대출받은 자가 이자를 연체하거나 채무액을 변제하지 못할 경우를 가정해 실제로 빌린 대출금보다 높게 설정된다. 예컨대 실제 받을 대출금 1억원이 등기부등본에 기재되지 않고 1억원의 평균 110~130%로 기재된다. 이를 고려하면 남모씨가 저축은행, 단위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을 통해 조달한 금액은 3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전체 보증금 1957억원보다 무려 1000억원이나 웃돈다. 남씨가 세놓은 주택 보증금과 월세 수익(2억원가량)을 고려해도 매달 상당한 규모의 대출금 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재무구조다. 피해자들은 미추홀구 전세보증금을 제외하고 잉여자산이 있다고 해도 망할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보증금과 대출을 통해 충당한 자금으로 신축건물을 짓는 방식으로 주택 수를 늘려나간 남씨는 대출금리가 뛰고 집값이 떨어지자 자금난에 처했고, 이는 전세금을 못 돌려주는 상황까지 됐다. 집은 안 팔리고 은행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세금 회수까지 어렵게 된 것이다. 즉 대출을 일으켜 집을 지은 뒤 세입자가 안 구해지자 시세보다 저렴하게 전세를 놓고, 대출이 많으니 계약자들 망설이자 확약서 써주겠다고 안심시킨 다음전세금을 받는 날 근저당 말소를 해제하지 않아 이후 경매에 넘어가게 된 구조다.
3일 열린 2차 공판에서 남모씨는 사기, 부동산실명법 위반,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결국 2차 공판도 법률적 쟁점을 정리하지 못한 채 별다른 진전 없이 마무리됐다. 같은 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논의됐던 전세사기 특별법은 여야 이견을 좁히지 못해 또 처리가 불발됐다. 이로 인해 당초 이번 주로 기대됐던 특별법 통과 시점은 다음주로 늦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가 민간계약, 사인 간의 계약이다 보니 정부가 나서서 피해금을 물어주는 방법은 쉽지 않다"며 "보증금을 늦게라도 되돌려받을 수 있는 피해자들이 아니라면 전세 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으로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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