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에 150년... 거대한 돌을 깎아 만든 사원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런던 킹스 크로스 역을 닮은 뭄바이의 CSMT 역에서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뭄바이를 떠나 제가 향하는 곳은 인도 중부의 아우랑가바드입니다.
사실 아우랑가바드를 가야 하는지를 두고 여행 내내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우랑가바드에 방문하면 이동 동선이 많이 꼬이기도 했고, 일정을 최대한 줄이고 싶기도 했거든요. 비용 문제도 좀 부담스러웠고요.
▲ 아우랑가바드로 향하는 열차 |
ⓒ Widerstand |
긴 거리를 가야하는 만큼, 꽤 많은 분들이 현지 여행사와 협의해 차량을 대절해 움직이시더군요. 하지만 혼자 여행을 하는 제 입장에서는 그 가격이 상당히 부담스러웠습니다. 결국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 아잔타 석굴 |
ⓒ 김찬호 |
석굴의 형태는 아주 다양합니다. 석굴 안에 좁고 긴 회랑을 만들고 탑을 모신 경우도 있습니다. 전통적인 사원의 구성 형태와 유사하지요. 보다 넓은 공간을 확보한 형태도 있습니다. 이런 형태는 많은 스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참선을 하고 설법을 듣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엇보다 아잔타 석굴사원에는 벽면에 그림을 그렸다는 점이 아주 특징적입니다. 1번 석굴에 그려진 보살화가 가장 유명하죠. 인도 회화사에서 가장 오래된 보살화이지만, 유려한 자세와 화려한 장신구, 빛을 이용한 양감 표현까지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줍니다. 불상 옆에 그려진 두 보살화의 스타일이 눈에 띄게 다른 것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고 있습니다.
▲ 1번 석굴의 관음보살 |
ⓒ Widerstand |
▲ 1번 석굴의 대세지보살. |
ⓒ Widerstand |
엘로라 석굴에서는 16번 석굴이 가장 유명합니다. 석굴이라고 하지만, 처음 봤을 때는 석굴이라고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절벽에 굴을 판 것이 아니라, 거대한 바위를 깎아 사원과 같은 형태로 만들었거든요.
▲ 카일라시 사원 |
ⓒ Widerstand |
아잔타 석굴의 경우 제작 연대에 대한 다른 설도 있습니다. 5~7세기에 석굴이 만들어진 것은 맞지만, 실은 대부분의 석굴이 460~480년이라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는 설입니다.
▲ 카일라시 사원의 조각 |
ⓒ Widerstand |
그런 위태로운 정치적 환경 때문일까요, 아잔타 석굴은 조성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버려집니다. 늦어도 8세기 이후에는 방치된 것으로 보이죠. 주변에 사는 현지인들에게만 알음알음 알려져 있었죠. 실제로 아잔타의 여러 석굴 중에는 완공되지 못하고 조성 중에 버려진 것들도 있습니다.
▲ 아잔타 석굴의 순례객 |
ⓒ Widerstand |
지금 아잔타 석굴 안에는 낮은 조도의 조명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수준에 그칩니다. 당대에는 오히려 이 유려한 그림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겠죠. 스스로조차 볼 수 없는 그림을 그리던 화공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보이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의 열정은 무엇이었을까요?
▲ 아잔타 1번 석굴 |
ⓒ Widerstand |
아잔타 석굴의 낮은 천장 아래, 불상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순례자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가가 없어도 좋다는 마음. 완성되지 않아도 좋다는 마음.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낼 뿐이었던 사람들. 그들이 만든 흔적을 둘러보았던 순간이, 저의 여행 가운데서는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대가 없이 바칠 수 있는 열정이 저에게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요. 거대한 바위 앞에 선 막막함을 그것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다만 바랄 뿐입니다. 천 년이 넘게 버려졌다가도 다시 발견될 수 있는 석굴들처럼, 단단한 흔적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렇게 거대한 바위를 깎아 사원을 만들어낸 사람들만큼이나 무모한 꿈을 품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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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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