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막자'며 추진된 재정준칙…5월 임시회는 넘어설까
野 "재정수지 악화하지 않아"
5월 기재위 통과 어려울 듯
"다른 나라가 다 하니까 한다는 논리처럼 그야말로 의미 없는 논리가 없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따라가야 되는지에 대한 논리가 있어야 하지 않나."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미 쓰나미를 겪었고 (언제) 또 쓰나미가 올지도 모르는데 뭐 하러 제방을 만드나. 재정준칙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런 논리 아닐까 싶다. 하다못해 개인도 가정들도 지출액에 실링(한도)을 두는데 국가에서 이런 것을 안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
지난 3월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재정준칙 도입에 관한 공청회에서 여야 위원들이 격론을 벌였을 당시 발언 중 일부다. 재정준칙은 윤석열 대통령 대선공약으로 포퓰리즘을 거부하는 상징과도 같았지만, 3월 공청회에도 불구하고 4월 임시국회에서 기재위는 재정준칙 논의를 진척시키지 못했다.
취임 1년을 맞는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재정준칙 도입 법제화를 강력히 주장해왔다. 정부가 밝힌 재정준칙의 대원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를 넘어서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 이내로 축소해, 재정적자 확대를 막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예외는 전쟁과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등 위기 상황으로 한정했다. 국가재정법상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요건과 같은 요건으로 '위기' 상황에서만 재정준칙 예외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재정준칙은 총량적인 재정지표에 대한 기준을 두는 것으로 정부의 재량적 재정정책에 제약을 가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재정 운용 체계다. 적용 기준에 따라 재정수지준칙, 채무준칙, 지출준칙, 세입준칙으로 분류된다.
관련 법안은 국가재정법 개정안 형태로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발의된 상태다. 류성걸·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재정건전화법안을 따로 내놓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문재인 정부 등 이전 정부에서도 재정건전화 논의 과정에서 빠짐없이 거론됐던 주제기도 하다.
◆왜 정치적 쟁점이 됐을까= 도입을 찬성하는 쪽은 코로나19 등을 거치며 지난 정부에서 급속도로 증가한 국가부채를 문제 삼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위축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규모 집행된 확장 정책 여파가 재정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2022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가부채는 2326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30조9000억원(6%) 늘었다. 국가채무로만 따지면 지난해 말 1067조7000억원으로, 전년보다 97조원 늘어나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 코로나 여파로 추경 편성 등 국채 발행액이 늘면서 확정부채는 전년보다 89조2000억원 증가했다. 특히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 제외한 수지)는 117조원 적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반면, 반대 목소리를 내는 쪽은 한국 재정이 비교적 건전하다는 주장을 편다. 국제통화기금(IMF)이 4월 내놓은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에 따르면 GDP 대비 재정수지(General Government Overall Balance) 결과표에서 한국은 2021년 0%, 2022년 -0.9% 적자를 기록했지만 2023년 다시 0%로 회복된다. 2024년부터는 -0.1%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기준으로 G7 국가의 평균은 2021년 -9.1%, 2022년 -5.4%, 2023년 -5.6%였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름 선방을 했다는 논리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재정준칙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나라만 갈라파고스식 계산으로 관리재정수지,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만들고 있지만 전 세계적 기준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경제적 실질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 재정수지는 악화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해외 사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를 제외한 전 국가가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최근 각국의 사정을 보면 재정준칙이 반드시 엄격히 이행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 사례에서 보듯 재정준칙을 통해 사실상 정치적 동맹을 이뤄내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유럽이 경제 통화 동맹 참여를 위해 수립한 마스트리흐트조약과 연계되며 많은 국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EU의 경우에도 재정적자는 GDP의 3%, 부채비율은 60%를 초과하는 회원국에 대해 제재를 부과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을 거치면서 만성적 재정 적자 국가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한도를 느슨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947년부터 재정준칙을 도입한 일본도 적용 기준이 다소 완화됐다. 일본은 1997년 '재정구조 개혁법'을 통해 재정적자가 GDP의 3%를 초과하지 못하게 하고. 경상지출을 위해 국채 발급을 금지했지만, 1998년 아시아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관련 규정이 폐지되기도 했다. 2018년 이후부터는 정부 총지출에 대한 양적 제한이 폐지된 상태다.
법제화 상황에서도 과연 재정준칙의 적용 범위 등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예외 조항을 어디까지 인정할지 사회적 합의도 부족하다. 이를테면 저출생 고령화와 같은 현재의 인구 위기에 대해 재정준칙이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등이다. 최종윤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열린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재정준칙 면제 사항은 대규모 재난, 재해, 글로벌 경제위기 관련인데, 인구 위기에 대해서는 재정준칙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한 번 논의를 해봐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와 같은 인구 소멸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재정준칙 준수를 이유로 재정의 역할을 제한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5월 국회에서 논의될까= 지난달 윤영석 국회 기재위원장(국민의힘 소속)과 여야 간사 등 일부 기재위원들은 재정준칙 제정을 위한 출장을 다녀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를 만난 자리에서 '재정준칙은 필요한 원칙'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왔다고 한다. 관련 최종 보고서도 이달 말 나올 계획이다.
이전까지 정부와 여당은 재정준칙 도입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세수 결손 등 예외적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경제 악화 등으로 당초 예측했던 세수보다도 세금이 덜 걷히는 세수 결손이 우려되는 상황으로 기재위 안팎에서는 재정준칙 논의가 힘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급격한 경기침체 영향으로 예상했던 세금조차 거두지 못한 상황 탓에 재정준칙 주장도 힘을 받기 어려워진 것이다. 실제 올해 3월까지 국세 수입은 지난해와 비교해 24조원이 줄었다. 착시 효과 등을 제거해도 1분기 세수효과 감소 폭은 14조3000억원이다.
기재부는 최근 국가 채무비율 기준을 하향 전망하기도 했다.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25년 채무비율 기준은 GDP 대비 51.4%로 2021~2025년 계획과 비교해 7.4%포인트 축소했다.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경기가 얼어붙을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고삐를 죈다는 시그널을 주는 재정준칙 도입을 기재부가 무리하게 시도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온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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