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미 시네뷰] ‘토리와 로키타’ 검은 피부를 위한 노래

전형화 2023. 5. 4.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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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와 로키타' 스틸. 사진=영화사 진진

‘토리와 로키타’가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자 벨기에 형제 감독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이 내한했다. 

다르덴 형제는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고, 그 외에도 칸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였기 때문에, 칸 국제영화제를 다르덴 형제가 초청된 해와 그렇지 않은 해로 구분하는 평론가도 있는 세계적인 거장이다. 

‘토리와 로키타’는 2022년 칸국제영화제에서 75주년 특별기념상을 수상했던 영화다. 다르덴 형제가 영화화하는 소재는 주로 사회적 안전망에 취약한 계층의 삶이다. 인터넷 유행어인 ‘지못미’처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처럼 리얼하게 다루되, 진한 감동을 놓치지 않는다. ‘언노운 걸’, ‘소년 아메드’에 이어 ‘토리와 로키타’까지, 최근 세 편의 영화 모두 벨기에의 비백인 이민자들이 등장한다.

벨기에 이민자인 토리(파블로 쉴스)와 로키타(조엘리 음분두)는 합법적인 체류증을 따고자 노력 중이다. 12살 소년 토리는 어렵사리 체류를 허가 받아 학교를 다니지만, 그보다 몇 살 더 많은 소녀 로키타는 면접에서 계속 불허가를 받게 된다. 그들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이민자 쉼터에서처럼 앞으로도 남매로 함께 계속 살고 싶지만, 가족 관계 증명이 쉽지 않다. 

변호사는 유전자 검사까지 불사하고 있지만, ‘나도 로키타의 체류증을 수락해 주고 싶지만, 안 된다’고 말하는 면접관은 로키타와 토리의 남매 관계를 의심한다. 머나먼 타국으로 이민 와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소울메이트로 가족보다 더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그들은 면접에서 나올 예상 질문과 답을 연습하며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로키타는 아프리카에 사는 가족을 위해 엄마에게 송금을 하고자 불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하지만, 그나마 송금하려던 돈마저 이민 브로커에게 빼앗기고 만다. 게다가 나이보다 몸집도 크고 성숙해 보이는 로키타를 호시탐탐 노리는 일감을 가져다 주는 피자집 주방장 마약 판매상 베팀(알반 우카즈)같은 나쁜 남자들도 주변에 많다. 결국 면접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로키타는 삼개월 동안 갇혀 불법적인 일을 하면, 불법으로 체류증을 발급해준다는 베팀의 말을 거절하지 못한다. 
'토리와 로키타' 스틸. 사진=영화사 진진

이들의 상황은 열악하지만 토리와 로키타의 따스한 관계는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힘을 준다. 토리는 학교에서 좋아하는 사람 얼굴을 그려보라고 해서 로키타를 그렸다며 보여주기도 하고, 음식점에 있는 노래방 기계에서 아르바이트로 둘이 함께 부르는 노래는 어두운 스릴러에 빛처럼 밝게 비친다. ‘내 노래는 너를 위한 것, 나랑 함께 불러야 해, 네 눈물을 잊어야 해’라는 가사의 노래나, 로키타가 흥얼거리는 밝고 리드미컬한 주제가는 매일매일 위험천만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영화 오프닝은 로키타가 체류증 면접을 하는 장면이다. ‘나자마자 버려져서 본 적도 없었던 동생을 어떻게 알아보고 찾았느냐’고 묻는 면접관의 질문에 로키타는 공황장애를 일으킨다. 로키타는 이후로도 삼개월 동안 갇혀 불법적인 일을 시작할 때, 동생과 통화하면 안 된다는 말에 기절까지 하는 증상을 보이고, 수시로 숨이 답답해 공황장애 약을 먹곤 한다.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서 나고 자란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저서에서 자신과 같은 흑인들이 백인들의 세상에서 경험하는 종속과 부적응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정신 분석 이론을 적용했다. 자신의 문화를 잃어버리고 백인의 문화를 모방하려는 흑인에게 열등 콤플렉스로 인한 자아 인식의 분열이 생긴다는 점을 명시했다. 로키타의 공황장애도 백인 사회에 들어가고자 하지만, 법적인 절차가 가로막힌 상황이 그의 의식과 심리적 불안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보호해 주지 못하는 타인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절박하고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는 것이 사람사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황영미(영화평론가, 시네라처연구소 소장)
황영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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