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년]⑮금리인상 불끄기 바빴다…금융혁신 '실종'
기준금리, 임기전 1.50→3.50%
은행금리 조정, 서민금융 지원
자영업자 구제, 부동산 진화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역대급 금리 인상기를 맞았다. 윤 대통령이 취임했던 작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폭은 2%포인트였다. 임기 시작 직전 1.50%였던 기준금리는 현재 3.50%가 됐다. 한국은행은 동결 기조에 들어갔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부동산 시장 침체, 연체율 상승 등 금리 인상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오른 적이 없었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지난 1년의 금융정책을 돌이켜 본 한 정책금융기관 사장의 말이다. 은행 금리 조정, 서민금융 지원, 자영업자 구제, 부동산 위기 진화가 현재까지 윤석열 정부의 모든 금융정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리 인하, 서민금융이 지상과제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꺼낸 칼은 예대금리차 공시였다. 원래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은행의 수익이 되는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를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공시해서 국민들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예대금리차가 가장 높은 은행을 낙인찍어 은행들의 금리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낸 건 금융당국 수장들의 구두 경고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총대를 멨다. 예금금리는 올리라고 하고 대출금리는 낮추라고 했다. "고객이 어려운데 은행은 돈을 많이 번다. 상식적으로 맞는지 의문"(작년 7월, 금융위원장), "은행도 국민경제의 일원으로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지난 3월, 금감원장)는 식으로 은행을 대놓고 저격했다. 한국은행 통화정책을 금융당국이 무력화한다는 시장 비판이 일었지만 대출금리 인하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영끌족'의 눈물은 특례보금자리론으로 닦아줬다. 부동산 가격 인상기에 무리해서 집을 산 이들의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자 3~4%대 고정금리로 대출을 갈아탈 수 있게 한 조치다. 고금리에 물려있던 영끌족들의 대환 수요가 일제히 쏠렸다. 초기엔 주택금융공사 전 인력이 심사에 매달릴 정도였다. 올해 2~3월 사이 연간 공급목표액의 65%(25조6000억원)가 소진됐다.
이달 말에는 더 확실한 방법을 내놓는다. 금융위 주도로 1·2금융권 신용대출 금리를 한눈에 비교하고 즉시 갈아타는 대환대출 플랫폼 앱이 출시된다. 처음에는 신용대출에 한정하지만 올해 안에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까지 확대된다.
서민금융정책은 도덕적 해이 우려를 일으킬 만큼 파격적이었다. 자영업자의 빚을 탕감 해주는 새출발기금이 대표적이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따르면 작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새출발기금이 부실채권을 매입해 원금을 감면해준 금액은 395억원이었다. 총 603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평균 원금감면율은 74%였다.
저신용자들에게 급전 100만원을 빌려주는 소액생계비대출은 공무원들도 놀랄 만큼 씁쓸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말로 출시 한 달을 맞았는데 그동안에만 100억원가량이 풀렸다. 은행들과 캠코에서 기부받은 돈으로 운영하는 제도다. 금융위는 올해 1000억원 예산이 전부 소진될 것으로 보고, 금융권으로부터 추가로 640억원을 더 기부받기로 했다.
'수영장에 물 빠지자' 드러난 위기
예상치 못한 위기도 찾아왔다. 지난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불거진 채권시장 불안이 그랬다. 채권 수요가 증발해 돈줄이 마르자 신용도가 낮은 금융권과 건설사에 유동성 공급이 되지 않았다.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했는지 알 수 있다'는 워런 버핏의 말처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떠올랐다. 5대 금융지주가 자금시장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95조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 방안을 발표하자 채권시장은 빠르게 안정됐다. 하지만 PF부실은 예외였다. 부동산 시장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PF 연체율은 시간이 갈수록 오르고 있다.
'PF 줄도산만은 막아야 한다'는 게 당국의 의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PF 대주단 협약'이 지난달 재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보험사, 상호금융까지 3700개에 달하는 금융사들이 자금을 빌려준 PF 사업자들에게 만기연장, 채무조정을 해주기로 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여전히 금융시장이 불안하기 때문에 당국은 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유동성을 투입해 조기 진화에 나서는 게 최우선순위"라고 했다.
산 넘어 산을 넘어온 사이 역대 최대 실적을 챙긴 은행들은 제대로 미운털이 박혔다. 남들 어려울 때 이자 장사를 했다며 여론이 들끓자 대통령까지 나서 은행 돈 잔치를 비판했다. 악화된 기류는 은행을 코너로 몰아갔다. 금융당국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은행 과점체제를 허물고 금융지주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방안을 만드는 중이다.
금융혁신, 우선순위서 한참 밀려
사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취임할 때까지도 금융혁신에 대한 기대감은 있었다. 그의 취임 일성이 '은산분리 완화'이기도 했다. 은행이 다른 산업 영역에 진출할 길을 터주는 게 핵심이다. 지난해 금융위 수요조사에서 금융지주들은 부동산·자동차·의료 분야 등에 진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은산분리의 시계는 멈췄다.
시중은행 임원은 "은행이 공공의 적이 됐는데 당국이 규제 완화 이슈를 지금 꺼낼 수 있겠냐"라며 "전임 문재인 정부에선 핀테크 활성화와 인터넷은행 출범이라는 결과물이 있었지만 이번 정부에서 금융혁신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났다"고 했다.
"'금융정책'이란 개념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것이다. 외국에는 통용되는 'financial policy'는 회사 재무 정책을 말한다. 우리가 하는 서민금융은 복지부에서 담당한다. 당국은 기본적인 규제업무만 한다. 금리 개입 같은 건 없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지난 1년간 모든 역량이 서민금융과 은행 압박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을 이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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