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m금융톡]'부산行 공식화' 산은, '좌불안석' 정책금융기관
"그저 (정치권의) 레이더망에나 걸리지 않았으면 하죠."
한국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서울에 잔류해 있는 정책금융기관들이 긴장하고 있다.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과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광역자치단체가 정책금융기관 유치전에 시동을 걸고 있어서다. 금융권에선 기관마다 이를 둔 내홍이 깊어질 수 있다고 본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시청 앞에서 ‘일방적 산은 이전기관 지정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국토교통부가 전날 산은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공식적으로 지정·고시하면서 반발에 나선 것이다.
산은 노조 측은 입장문을 통해 "서울에 본점을 두도록 법에 정해진 기관을 법 개정 없이 어떻게 부산으로 이전한단 말인가"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위법 행정을 당장 멈추고 산은 이전에 대해 논의하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본점을 서울에 두도록 규정한 현행법(산은법 제4조) 개정이 우선이란 노조의 반발에도 부산 이전은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권 관측이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데다 총선을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상황이어서다. 산은 측은 현재 진행 중인 ‘산업은행 정책금융 발전 방향 컨설팅’ 결과가 도출되는 대로 이전계획안을 마련해 금융위원회에 제출, 이전계획을 연내 승인받는다는 계획이다.
이렇듯 산은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좌불안석 상황이 된 것은 서울에 잔류한 정책금융기관들이다. 정부가 상반기 내 2차 이전 공공기관을 지정할 방침인 가운데서다. 특히 국토교통부는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전 대상 공공기관이 500여곳에 이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에 소재한 한 정책금융기관 관계자는 “아직 우리 기관과 관련해 이전론이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불안감은 꾸준하다”면서 “요새 젊은 직원들을 보면 애초 수도권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많고 또 소재지가 서울이기에 입사한 경우가 많은데, 이전론이 나오면 반발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산은의 사례를 참고한 각 지자체는 정책금융기관의 역내 유치를 위한 여론전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산은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 부산 내에선 ‘금융중심지’ 육성을 위해 한국수출입은행, 중소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서민금융진흥원 등도 추가 이전해야 한단 주장이 지역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된다.
강원에서도 김진태 지사가 한국은행 유치를 내건 바 있고, 금융감독원, 기은 등의 기관 이전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외엔 호남권(광주·전남·전북)에선 지역 특성을 염두에 두고 농업협동조합중앙회·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농협·수협은행 이전론도 회자된다.
물론 산은을 비롯한 주요 정책금융기관들은 법령상 설립 근거 법에 본점 또는 주(主) 사무소를 서울에 두도록 한 경우가 많아 여소야대의 국회라는 관문이 남아있기는 하다. 산은은 물론 수은, 기은 등도 설치 근거법에 본점을 서울로 하게 돼 있다. 야당은 산은 이전과 관련해 법 개정이 우선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역시 내년 총선서 지역 표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니 중·장기적으론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야당 역시 대선 과정에서 지역 균형발전 및 공공기관 이전을 거론한 바 있다.
이전에 앞서 타당성과 기대효과를 따져보자는 당위론도 거세지만 당사자 간 인식의 차이는 매우 크다. 지방으로 이전한 한 정책금융기관 고위관계자는 "내려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지역의 인구감소와 경기침체가 매우 심각한 것은 맞다"라면서 "(지방 이전의) 타당성과 파급효과를 따져보는 게 중요하지만, 당장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에선 이런 논의가 통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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