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돌아온 운동회…청군백군도 부채춤도 사라진 까닭

장윤서, 최민지, 이가람 2023. 5. 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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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 동작구 본동초등학교에서 열린 '본동 놀이 한마당' 운동회에서 학생들이 '파도를 넘고 넘어' 경기를 하고 있다. 장윤서 기자

3일 오전 서울 동작구 본동초등학교 운동장에 아이들 키만큼 커다란 공 두 개가 등장했다. 두 줄로 선 학생들은 파란 천을 붙잡고 천 위로 빠르게 공을 굴리기 시작했다. 열띤 응원 끝에 3학년과 4학년의 대결은 무승부로 끝났다. 이 경기에 참여한 3,4학년 학생은 다 합쳐 44명 뿐이었다.

이날은 본동초의 봄 운동회 날이었다. 본동초는 전교생이 117명인 작은 학교다. 학년당 학급 수는 1,2학년은 두 학급, 3~6학년은 한 학급이다. 운동회는 보통 청군과 백군의 대결이지만 이 학교 운동회엔 그런 구분이 없었다. 점를 매기거나 우승팀을 가리지도 않았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운동회가 4년만에 돌아왔다.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요즘 운동회는 부모 세대가 기억하는 모습과 달라졌다. 소규모 학교에서는 운동회 경기 종류부터 교사 역할까지 변하고 있다.


교사 수도 줄어…'운동회 대행업체'가 진행


3일 오전 동작구 서울본동초등학교에서 열린 운동회에서 어린이들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 뉴스1
본동초는 1970년대 전교생이 2700명에 달했지만, 2000년대 들어 학생 수가 급감했다. 본동 일대 재개발이 미뤄지며 신입생이 유입되지 않은 탓이다. 조미연 교감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원이 적어 팀을 나누기 어렵다”며 “점수 계산보다는 협력 위주 프로그램으로 기획했다”고 했다.

학생이 줄고 교사 수도 15명으로 줄면서 운동회 준비를 하기 어려워지자 '운동회 대행업체'도 등장했다. 이날 운동회도 업체가 만국기 설치부터 경기 소품, 진행까지 모든 과정을 맡았다. 사회를 맡은 업체 직원은 “요즘은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교도 업체 진행을 선호한다. 코로나19 유행이 지나고 이번 달에만 운동회 10건이 잡혀있다”고 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선생님들도 학생 인솔과 안전 관리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기획과 진행을 맡아줄 대행업체를 많이 찾고있다”며 “전문MC가 게임을 진행하고 보조강사도 투입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3일 서울 동작구 본동초등학교에서 열린 '본동 놀이 한마당' 운동회 '인생 네컷' 부스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즉석 사진을 찍고 있다. 장윤서 기자

운동회를 앞두고 전교생이 동작을 맞춰 연습하던 '꼭두각시춤'이나 '부채춤'도 사라진지 오래다. 이날 운동회에선 걸그룹 아이브의 '애프터라이크' 노래에 맞춰 학생들이 즉흥적으로 춤을 췄다. 구양주 본동초 교장은 “예전에는 운동회 2주 전부터 사전연습을 하느라 아이들이 지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부채춤은 꽃 역할을 하는 학생만 주인공이 되지만 요즘은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운동회를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행사 진행에 나서기도 한다. 이날 운동장 한 쪽에는 학부모들이 마련한 '인생네컷' 즉석 사진과 얼굴에 스티커를 붙여주는 '페이스 타투' 부스가 등장했다. 학부모 박하나(45)씨는 “학생 수가 적어 처음엔 걱정됐지만, 선생님과도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학부모들도 똘똘 뭉치는 가족 같은 분위기라 좋다”고 말했다.


"축구도 하기 어려워"…'연합 운동회' 하는 지방 학교


3일 충북 단양공설운동장에서 '제1회 작은 학교들의 큰 운동회'가 열렸다. 이 운동회는 단양지역 10개 초등학교 가운데 학생이 50명 미만인 7개 초등학교가 참여했다.연합뉴스
학생 수 감소가 더 심각한 지역에서는 '연합 운동회'가 열리기도 한다. 학교 단독으로 운동회를 하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날 충북 단양에서는 관내 7개 초등학교가 연합 운동회를 개최했다. 김진수 단양교육장은 “단양 10개 초등학교 중 7곳이 전교생이 50명이 되지 않는 작은 학교”라며 “축구를 하고 싶어도 사람이 부족해 할 수 없었던 학생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되자는 취지에서 연합 운동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교육청의 지원 없이는 어렵다. 전남 보성군은 2015년부터 5년간 관내 초등학교 5곳의 연합 운동회를 진행했지만 코로나19 이후로는 운동회를 못하고 있다. 유소영 보성교육지원청 장학사는 “복수 학교를 묶어서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사전 협의나 작업이 많이 필요하다”며 “올해는 인근 2개 학교를 묶어서 간단하게 운동회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관내 8개 초등학교 연합 운동회를 진행한 전북 담양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행사를 주도할 교육청과 예산을 지원할 지자체 등의 의지 없이는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4%는 전교생 60명 이하 '초미니' 학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운동회조차 하기 어려운 소규모 학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교생 60명 이하 초미니 초등학교는 전국 1502곳으로 전체 초등학교의 23.9%에 달한다. 학생 수 60명은 정부의 통폐합·분교 권고 기준이다. 전국 초등학생 수는 2013년 278만명에서 지난해 266만명으로 줄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029년 초등학생 수가 170만명 수준까지 급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소규모 학교의 교육 수준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운동회나 수학여행 뿐 아니라 수업에서도 학생 규모에 따라 교육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권순형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소규모 학교에서는 학생 개인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수가 제한적이다. 6년 간 소규모 초등학교와 중급 규모 이상 학교 학생의 경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소규모 학교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이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경숙 담양교육지원청 장학사는 “소규모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큰 학교에서 진행하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 혜택을 똑같이 누릴 수 있도록 교육 당국과 지자체의 예산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권순형 연구위원은 “소규모 학교 중에서도 교원과 학부모, 교육과정 등이 모두 잘 갖춰져 학생 수가 늘어나는 등 좋은 교육 성과를 거두는 곳이 있다. 이런 곳에는 재정을 집중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원 인사에서도 특례를 마련해 소규모 학교를 위한 인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윤서·최민지·이가람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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