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연준 의장 같은 JP모건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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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부터 2006년까지 거의 20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넥타이 색깔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인물이다.
SVB 사태가 터지자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미국 경제를 파월 의장이 아닌 다른 인물과 의논하고 있었다.
세계 경제도 미국 은행발 위기의 신용경색 국면을 단숨에 헤쳐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일 "지금 미국 경제에서 믿을 만한 구원투수는 Fed가 아니라 JP모건체이스, 그것도 단 한 명의 인물, 다이먼"이란 칼럼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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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부터 2006년까지 거의 20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넥타이 색깔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인물이다.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면 Fed가 시장 친화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뜻이었고, 빨간 넥타이를 매면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가는 파랗게 질렸다고 한다. 그린스펀은 미국 정권에 관계없이 신뢰받던 ‘영원한 Fed 의장’이었다.
지난 3월부터 세계 경제는 미국발 은행 위기에 휘청대기 시작했다. 각종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의 자금을 공급하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도산했고 지난 주말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파산했다. 두 은행의 파산은 Fed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이 단초를 제공했다. ‘제로’에 가깝던 금리를 이용해 자금을 차입한 뒤 이를 장기채권에 집중 투자했던 두 은행은 갑자기 단기자금 금리가 4%를 넘어가자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두 은행만이 아니다. 금리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올리려다 위기에 내몰린 중소 은행들은 수도 없이 많은 상태다.
Fed는 은행 위기가 발생했음에도 아무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3월부터 존재감 자체가 없어졌을 정도였다. SVB 사태가 터지자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미국 경제를 파월 의장이 아닌 다른 인물과 의논하고 있었다. 바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은행 최고경영자(CEO)였다. 다이먼은 회동 뒤 곧바로 SVB 인수 절차에 돌입했고 하루 만에 부채덩어리인 이 은행을 사들였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도 마찬가지였다. 다이먼의 신속한 결정으로 파산 선언 후 몇 시간 만에 JP모건체이스는 이 은행을 합병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다이먼은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인수합병을 완료한 뒤 “이제 미국에서 은행 위기는 끝났다”고 말했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휘청되는 지난주 내내 떨어지던 미국 증시는 다이먼의 발표 후 빠르게 회복됐다. 세계 경제도 미국 은행발 위기의 신용경색 국면을 단숨에 헤쳐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일 “지금 미국 경제에서 믿을 만한 구원투수는 Fed가 아니라 JP모건체이스, 그것도 단 한 명의 인물, 다이먼”이란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은 그린스펀의 ‘넥타이 메시지’처럼 항상 온화하지만 미묘하게 변화하는 다이먼 표정을 관찰하는 게 미국 금융시장 종사자들의 일상이 됐다고 썼다. 다이먼은 지난해 하반기에 ‘빅스텝’과 ‘자이언트스텝’을 반복하며 기준금리를 높이던 Fed 행보에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도 “먼저 금융기관 신용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경고를 해왔다.
Fed의 역할은 금리 결정만이 아니다. 각 주의 Fed 이사회 지부를 통한 금융기관들에 대한 감독도 주 업무다. 그런데 파월 체제의 Fed는 전자에만 몰두했다. 은행에 문제가 터지자 해결사를 자처한 곳은 미국 최대 민영 투자·소비금융 은행인 JP모건체이스였던 셈이다.
다이먼의 구원투수 역사는 20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기업과 개인을 넘어 지방정부들까지 연쇄 파산하게 만들었고 세계적인 경제 불황을 야기했다. 당시 가장 많은 악성 부채를 안고 있던 업계 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다이먼이 인수하면서 위기는 진정 국면으로 돌입했다. 대형 소비금융 은행과 투자은행들이 JP모건체이스를 따라 합종연횡했고, 서로 부실채권을 감시·감독하는 현재의 금융체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다이먼의 “은행 위기는 끝났다”는 메시지는 아마도 “대형 은행만이 아니라 중소·지방 은행의 감시체제도 곧 만들어질 것”이란 의미인지도 모른다.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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