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대화가 필요해’
새 정부 출범 1주년이 코앞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이나 지지자들의 심기가 편할 것 같지는 않다. 국정 지지도는 몇 달째 30%를 넘나들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평가는 국정의 일대 쇄신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확실한 실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권이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대표 정책도 분명치 않다. 지지자들은 문재인정부의 비정상을 바로잡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거나 진퇴양난의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흔들리던 한·미동맹을 글로벌 동맹으로 격상시키며 국가 위상을 높였다며 환호한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치의 사법화가 더욱 심화됐다거나 노골적인 편중 외교로 안보 위험은 고조되고 경제적 실리를 놓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부정적 여론의 근저에는 지난 1년의 경제 실적과 정부의 정책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 경제 사정이야 정부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관건은 3대 개혁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한다. 말은 많았지만 손에 쥔 성과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노사 법치주의 개혁에 드라이브가 걸리며 지지율이 한때 40%를 넘겼지만 ‘주69시간’ 헛발질로 노동개혁조차 길을 잃었다. 연금개혁을 위한 국회 특별위원회는 민간 전문가들에게 합의안을 부탁했지만 활동기간 연장 말고는 나온 게 없다. 교육개혁도 재정 지원을 통한 지방대학 육성 방안만 구체화됐을 뿐 이해 갈등이 첨예한 이슈들은 공론의 장에 오르지도 못했다.
윤 대통령은 여러 차례 다중 위기 시대에는 과감한 개혁을 통한 돌파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며 3대 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더구나 2023년은 큰 선거가 없는 개혁의 골든타임이라며 범정부 차원의 총력전을 예고했다. 국민적 기대도 컸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개혁 동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나 야당의 비토에 막힌 것도 아니다. 반대 세력은 이제 본격적으로 세를 불리고 있는 상태다. 연금과 교육개혁은 공론화도 못 해보고 제풀에 주저앉은 꼴이다. 구체적 액션 플랜 없이 대통령의 의지만 반복 강조되고 있다.
이제 개혁의 알고리즘을 바꿔야 한다. 정부 주도로 빠르게 가는 톱다운 방식에서 공론화를 거치며 끈질기게 가는 구조로 가야 한다. 3대 개혁을 위해 총선 승리가 필요하다는 호소가 먹히려면 무엇을 왜, 어떻게 개혁하려는지 쟁점을 명확히 드러내고 국민적 지지를 모으는 일부터 해야 한다. 엘리트 전문가와 기술 관료들이 만들어낸 최상의 개혁안이 꼭 최적의 솔루션이 아닐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개혁은 진리를 향한 투쟁이 아니고 국민적 동의를 얻는 설득 과정이다. 개혁에서 성과를 내려면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기득권 집단의 양보, 여야의 정치적 타협이라는 조건 중 최소 두 개는 충족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당초 구상은 여야의 정치적 타협으로 기득권의 양보를 받아내는 방식이었던 듯하다. 그는 작년 5월 국회에서 1940년대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노동당 대표 클레멘트 애틀리를 내각에 참여시켜 전시 사회통합을 다졌던 사례를 예시하며 3대 개혁을 위한 초당적 협력을 호소한 바 있다. 상황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진영 대결은 악화일로고 사회적 대화는 단절 상태다. 선택은 총선까지 손 놓고 있거나 상대방에게 손을 내미는 수밖에 없다. 여야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여야정협의체 상설화도 좋고 부정기적 간담회 형식도 좋다. 외교안보 구상에 대한 야당의 공감과 협력을 구하는 대통령의 노력만으로도 소모적 정쟁을 줄일 수 있고 대결적 사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이를 통해 국가 미래가 크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에 맞게 개혁 거버넌스도 크게 바꿔야 한다. 3대 개혁을 위한 폭넓은 공론화와 여야정 대화를 추동할 대통령실의 개혁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익집단의 갈등을 완화하고 국회와의 조율을 책임질 개혁 사령탑이 분명해야 한다.
2006년 유행하던 개그콘서트의 ‘대화가 필요해’ 코너는 지금 실정에 딱 맞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코너에서 말이 되는 말은 ‘밥 묵자’뿐이다. 지금 여야정이나 노사정이 만나봤자 십중팔구 밥만 먹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 집의 가장 ‘꼰대희’는 지금 ‘밥 묵자’ 유튜브로 100만 구독자를 자랑한다. 윤석열정부도 총선까지 전면적인 대화 공세를 펼치는 게 나을 것이다.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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