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호스피스 환우 상봉… “복음 통해 천국으로 안내하죠”
항암치료로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 깡마른 몸에 소변줄을 꽂은 김미선(가명·67)씨가 병동에서 목욕 침대로 옮겨졌다. 분홍 유니폼을 입은 4명의 여성이 조심스럽게 김씨를 목욕탕으로 데려갔다. “오래 목욕을 못 해서 찜찜하셨죠. 깨끗하게 씻겨 드릴게요.”
봉사자들은 조용히 찬송을 부르며 김씨의 몸을 구석구석 씻기고 머리를 감겼다. 무표정이던 김씨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던 그가 목욕을 마칠 때쯤 힘겹게 입을 뗐다. “너무 개운해요. 고마워요.”
코로나19로 굳게 닫혔던 병원 문이 조금씩 열리면서 호스피스 사역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우와 가족의 고통을 경감시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뜻한다. 지난달 27일 경기도 시흥 새오름가정의원을 찾은 안양호스피스선교회(회장 정태수 목사) 자원봉사팀과 현장을 동행했다.
1998년 설립돼 3000명 넘는 환우를 돌봤던 안양호스피스선교회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자원봉사자 교육과 말기 암 환우 지지 모임, 청소년 호스피스 교육을 이어가며 병원이 열릴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정태수 목사는 “올해 3월부터 새오름가정의원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경기도 군포 남천병원이 봉사자들에게 문을 열면서 호스피스 사역이 본격 재개되고 있어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봉사자 송정심(74) 권사는 “코로나 3년 동안 환우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떠난 환우들이 많았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며 “호스피스 사역을 다시 이어가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목욕봉사를 받은 또 다른 환우 유한옥(가명·73)씨는 전날 병원에서 세례를 받았다. 소식을 들은 봉사자들이 축하 인사를 건네자 유씨는 “딸이 하도 권유해서…”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정말 잘하셨어요.” “이제 천국 가시겠네요.” 봉사자들이 한마디씩 덧붙이면서 목욕탕은 마치 축복의 샘터가 된 것 같았다.
목욕봉사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2시간이 흘렀다. 봉사자들의 몸도 땀으로 흠뻑 젖었다. 황옥화(61) 권사는 “봉사를 하고 나오면 몸이 가뿐하고 개운하다”며 “의사소통이 되는 환우는 거의 없지만 그들의 편안한 미소를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웃었다.
호스피스 사역은 환우의 정서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어 무리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지양하고 있다. 그러나 남은 생이 많지 않은 환우들이기에 1분 1초가 아까운 것도 사실이다. 환우는 관심을 보이는데 보호자가 반대하는 경우에는 봉사자들의 속이 타들어 간다.
김민정(54) 권사는 “곧 예수님을 믿을 것 같았던 환우가 다음 주에 찾아갔더니 돌아가신 경우도 많다. 반대로 생각지 못했던 환우가 몇 시간 만에 주님을 영접하기도 한다”며 “호스피스 병동에 오기 직전까지 한 번도 복음을 듣지 못했다는 환우를 만날 때면 틈나는 대로 예수님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귀띔했다.
3년 전 남편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떠나보낸 임연월(69) 권사는 호스피스의 의미와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남편이 떠나기 얼마 전 목사님이 덥수룩하게 자란 남편 수염을 밀어주셨어요. 호스피스 봉사를 20년 가까이 한 저도 경황이 없어 생각 못한 부분이거든요. 덕분에 남편이 깨끗한 얼굴로 천국에 갈 수 있어 감사했죠. 그 후 제 목욕 봉사가 환우들 생애의 마지막 목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정성을 기울이게 돼요.”
봉사자들은 자신이 환우들에게 복음을 전할 마지막 사람이라는 사명감을 품고 병원을 찾는다.
“보통 전도를 하면 교회나 단체가 부흥하기 마련이잖아요. 호스피스는 환우가 복음을 받아들인 직후 돌아가시니까 눈에 보이는 열매가 남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분들이 천국에 가셨다는 확신을 할 수 있죠. 호스피스는 ‘천국과 가장 가까운 지상’이에요. 이곳에서 천국을 안내하는 기쁨을 계속 누릴 겁니다.”
시흥=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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