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묵의 과학 산책] 자화상 속의 미생물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나왔지만 비슷한 내용의 가르침은 동서고금을 망라한다. 간단해 보여도 무엇이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고 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는 쉽지 않다. 자아 성찰은 철학이나 심리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물 개체로서의 ‘나’를 생각해보자. 우리 몸을 이루는 인간 세포는 약 30조 개다. 몸에 있는 박테리아는 더 많다. 인간 세포의 84%를 차지하는 적혈구는 산소 운반용이고, 안에 유전자가 없다. 이를 제하면 인간 유전자를 가진 세포보다 미생물의 유전자를 가진 세포가 10배쯤 많게 된다. 이를 모두 다 합친 것이 소위 말하는 ‘나’다.
게다가 인간 유전자는 진화 과정에서 삽입된 바이러스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으니 순수 인간 유전자란 모호한 개념이다. 몸 밖은 더하다. 인류의 몸에 사는 미생물을 다 합친 것보다 흙과 물속에 사는 미생물은 수백만 배 이상 많다. 식사하거나 매번 숨 쉴 때마다, 혹은 신진대사를 통해 외부의 미생물이 항상 들락날락한다. 이중 극소수는 질병을 일으키지만, 대부분은 우리의 절대적 일부다.
결국 지구는 미생물의 행성이고 우리는 이에 깃들여 있는 존재다. 몸속의 미생물은 신체건강뿐 아니라 우리의 정신상태에도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실리적인 측면 외에 수많은 미생물이 나의 일부임을 생각하면 자의식도 변하게 된다.
‘나’라는 존재는 고립해서 생각할 수 없고 주변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종이에 번져 경계가 모호한 붓 자국과 같다. 그림을 감상하는 데는 붓 자국 하나만 아니라 붓이 노는 화폭 전체를 보아야 한다. 많은 분야가 그렇듯이 생명과학도 깊이 배우면 세상이 달리 느껴진다. 자신을 더 넓게 보고 세상에 대해 겸허해지는데, 이는 살아가는 데 대체로 좋게 작용한다.
황원묵 미국 텍사스 A&M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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