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貧而樂, 富而好禮(빈이락, 부이호례)
2023. 5. 4. 00:42
춥고 배고픈 사람의 생존을 위한 아첨은 오히려 동정을 살 수 있지만, 먹고살 만함에도 더 큰 부를 탐하여 부자에게 아첨한다면 꼴사나운 일이다. 가난하지만 아첨하기는커녕 오히려 가난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부자임에도 예(禮)를 좋아하고 즐기며 모두를 예로 대하는 진짜 부자다운 부자도 있다. 많지는 않지만 지금도 더러 그런 사람이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소동파는 도연명에 대해 “여유가 있을 때면 닭을 잡고 기장밥을 쪄서 손님을 맞기도 하고, 배가 고플 때면 남의 집 문을 두드려 걸식도 마다지 않은(飽則鷄黍以延客, 飢則扣門而乞食) 인물”이라고 평했다. 도연명은 가난을 위장할 체면 따위는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진실하게 산 사람인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유학자 송기면(1882~1956) 선생은 거지가 오면 반드시 마루에라도 앉게 한 후에 밥을 상에 차려주었다고 한다. 밥에 반찬 하나를 얹어 걸낭에 부어주거나 땅바닥에 놓아주는 게 상례였던 당시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적 ‘가진 자’로서 예를 잘 지킨 아름다운 사례이다.
가난하면 아첨하기 전에 열심히 일할 생각을 해야 하고, 부자는 항상 예를 좋아하고 또 지킴으로써 추한 ‘갑질’을 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어느 구름에서 어떤 비가 내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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