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천 개입 의혹은 허풍이라는데…잘 안 믿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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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녹취 파문 확산 “사실이면 정무수석 고발해야”
대통령실과 여당 기울어진 관계 바로 세우는 계기로
바람 잘 날 없는 국민의힘이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당 최고위원인 태영호 의원에게 공천 문제를 거론하며 한·일 관계 옹호 발언을 부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태 의원이 3월 9일 보좌진에게 했다는 발언의 녹취를 MBC가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이 수석에게서 ‘최고위원 회의 때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 문제 등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 공천 문제는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취지의 말을 들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로 이 수석과 만난 뒤 태 의원의 한·일 관계 발언 수위가 높아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천 개입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일까지 소환되며 파문은 확산일로다.
비윤계인 김웅 의원은 “녹취록 내용이 사실이면 당무 개입, 공천권 개입이라는 중대 범죄를 저지른 것이니 이 수석을 즉각 경질하고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며 “태 의원이 전혀 없는 일을 꾸며내 거짓말한 것이라면 대통령실을 음해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했다. 전날까지 관련 언급을 꺼렸던 김기현 대표는 3일 태 의원의 기존 징계건에 이번 사안을 병합할 것을 당 윤리위에 요청했다.
당사자들은 해당 대화를 부인했다. “이 수석은 한·일 관계나 공천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전혀 없다. 녹취 발언은 공천을 걱정하는 보좌진을 안심시키고 의정활동에 전념하도록 독려하는 차원에서 나온 과장 섞인 내용”(태 의원), “(사무실에서) 자기들끼리 한 얘기고, 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이 수석)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 이들이 꽤 존재하는 이유는 그동안 대통령실이 보여 온 태도와 무관치 않다. 당원 100%로 치러진 3월 여당 대표 경선은 대통령실과 ‘윤심’의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수석은 당시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고 유력 대표 후보였던 안철수 의원을 압박했던 당사자다. 이런 일 모두가 두 사람 주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특히 보좌진 독려를 위해 없는 말을 지어냈다는 태 의원의 주장은 사실이라도, 사실이 아니라도 심각한 문제다. 보좌진과의 은밀한 대화가 유출된 것도 이상하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당 내엔 “그간의 발언이 대통령실과 코드를 맞추다가 벌어진 일이란 인상을 줘 징계 수위를 낮추기 위해 태 의원 측이 유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자작극’ 주장까지 제기됐다고 한다. 당 차원의 엄정한 조사와 책임 추궁이 필요한 이유다.
누가 뭐라 해도 이번 파문의 근저엔 비정상적으로 기울어진 용산 대통령실과 여당 간 역학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파문을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지 못한다면 이런 일은 언제든 또 벌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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