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협치 실종’… 쟁점법안은 강행 처리, 민생법안은 표류

박민지,구자창,박성영 2023. 5. 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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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부 출범 1년] 여야 정쟁 반복에‘최악 상황’ 분석
지난 2월 24일 열린 국회 본회의가 여당 의원들의 퇴장 속에 정회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정부 1년 동안 발생한 ‘협치 실종’ 상태가 민생 법안 표류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수적 우세를 앞세운 더불어민주당의 강행 처리로 쟁점 법안들은 국회를 계속 통과한다는 것이다.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는 소수 여당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난 여론전뿐이다. 최근에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가뜩이나 좁았던 ‘협치의 공간’은 더욱 협소해지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쟁점 법안들을 사이에 놓고 여야가 멱살잡이를 하는 동안 촌각을 다투는 민생 법안은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文정부 때보다 낮은 법안 통과율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 10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접수된 5581건의 의원 발의 법안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525건(9.41%) 수준에 그쳤다. 같은 기간 정부가 발의한 법안도 144건 중 36건(25.00%)만 통과됐다.

문재인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현 정부 기간 법안 처리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문재인정부 5년 동안 의원 발의 법안 통과율은 29.15%(2만9587건 중 8624건)를 기록했다. 윤석열정부 1년과 비교했을 때 3배 높은 통과율이다. 정부 발의 법안 통과율도 문재인정부의 경우 61.98%(1202건 중 745건 통과)로 현 정부보다 2.5배 높았다.

그러나 여야 이견이 큰 쟁점 법안들은 앞으로도 민주당의 ‘힘자랑’으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방송3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등의 단독 처리를 벼르고 있다. 민주당 주도로 지난달 27일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이른바 ‘쌍특검’(대장동 ‘50억 클럽’ 특검·김건희 여사 특검) 법안도 240일 이후인 올해 12월 23일 이후 국회 통과가 가능하다.

전세사기 방지 법안 등 표류


여야 정쟁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정작 민생 법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우선 전세사기를 사전에 막고,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자를 보호·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들은 국회 상임위원회를 떠도는 중이다. 여러 개정안이 앞다퉈 발의됐으나 언제 국회를 통과할지 기약이 없는 상태다. 최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여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민주당이 지난해 12월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개정안에는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한 기구를 설치하고 전문인력 지원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민의힘도 전입 당일 집주인이 소유권을 변경하는 유형의 전세사기를 막기 위한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발이 묶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여야 모두 스토킹 가해자에게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하고, 스토킹 범죄를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 소추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서 제외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줄줄이 발의했지만, 후속 조치는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민주당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여야 이견이 없는 대표적인 민생 법안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생계가 어려워진 서민을 위해 발의된 법안으로, 대출금이 일부 연체됐을 때 전체 대출금이 아닌 연체된 부분에 한해서만 연체이자를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은 일부만 연체하더라도 원금 전체에 대한 연체 가산이자를 물어야 한다. 이 법안은 현재 법사위에 두 달째 표류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 상황도 비슷하다. 재난으로 인해 피해를 본 소상공인의 임대료 등 고정비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민생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뒷전으로 떠밀렸다. 여야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국정조사 등 책임 공방에만 집착하는 사이 소상공인 지원 대책은 국회 문턱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의한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도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사업주의 임금 지급 책임을 강화하면서 근로자는 체불된 임금을 신속히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현행법은 사업주가 체불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융자를 받으려면 ‘일시적인 경영상 어려움’이 있어야 하는데, 이 같은 조건을 완화하는 것이다.

“민생법안 표류로 국민만 피해”

여야가 정쟁에만 매몰돼 민생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외과 교수는 “야당은 강행 처리하고 여당은 대통령 거부권을 건의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여야가 대안을 만들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어 “특히 집권여당이라면 상대가 거부할 수 없는 법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잘 안 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여야 협치라도 돼야 하는데 이조차 안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그러면서 “민생 법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면서 “입법 지연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비용도 상당하기 때문에 대안을 마련하거나 상대를 설득하는 등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지 구자창 박성영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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