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노래방’ 한 템포 쉬고 또 가즈아~
2000년대 후반 프로야구는 황금기를 맞았다. 2006년과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2회 연속 선전한 데 이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우승하면서 KBO리그의 인기는 상한가를 쳤다. 그리고 2007년부터 시작된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라이벌 구도는 프로야구를 살찌웠다. 주춤했던 KBO리그의 인기가 다시 살아났다.
국내 프로야구 인기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구단이 있다. 바로 롯데 자이언츠다. 부산을 연고로 한 롯데는 2008년 프로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인 제리 로이스터를 영입하면서 새 바람을 일으켰다. 로이스터 감독은 ‘노 피어(No Fear)’란 말로 표현되는 화끈한 공격야구를 앞세워 만년 하위권에 머물던 롯데를 3위로 끌어올렸다. 구단 역대 최다인 11연승 기록도 이때 나왔다. 사직구장에는 연일 구름관중이 몰려들었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응원소리가 메아리쳤다. 관중들의 응원가가 그치지 않아 ‘사직노래방’이라는 별명도 생겨났다.
이즈음 새로운 신조어가 탄생했다. 바로 ‘엘롯기’다. 프로야구 전통의 인기 구단인 LG 트윈스와 롯데 그리고 KIA 타이거즈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다. 당시 롯데가 주도한 ‘엘롯기’ 돌풍은 프로야구의 황금기로 직결됐다. 2008년 KBO리그 총관중은 사상 처음으로 5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250만 명의 관중이 롯데(137만 명)와 LG(80만 명), KIA(36만 명)의 홈경기에서 나왔다.
롯데의 신바람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15년 역사의 엘롯기 동맹에서 롯데는 늘 뒷전이었다. KIA가 2009년과 2017년 통합우승을 차지하고, LG가 가을야구 단골손님으로 자리 잡는 동안 롯데는 최근 5년 연속 가을야구를 TV로 지켜봐야 했다. 5년 연속(2008~2012년) 관중 동원 1위를 놓치지 않던 사직구장은 다시 썰렁해졌다.
그러나 올 시즌은 이야기가 다르다. 롯데가 4월 레이스를 1위로 마치면서 부산에 화색이 감돌고 있다. 롯데는 4월 한 달간 14승8패를 기록하면서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또 지난 2일 광주 KIA전에서도 7-4로 승리를 거두고 9연승 돌풍을 이어갔다. 그러나 3일 광주에서 열린 KIA와의 경기에서 2-10으로 져 15년 만의 10연승 고지를 밟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난달 내내 에이스로 활약했던 선발 나균안이 4이닝 5실점으로 부진해 시즌 첫 패전을 기록했고, 타선은 KIA 신인 투수 윤영철을 공략하지 못한 채 침묵했다. 그런데도 1500여 명의 롯데 팬들은 부산 사직구장에서 전광판을 통해 이 경기를 지켜보며 열띤 ‘원격 응원’을 펼쳤다.
롯데의 깜짝 활약은 프로야구의 흥행으로 연결되는 분위기다. KBO는 지난달 26일 총 관중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단 101경기 만에 이뤄낸 성과다. 코로나19 직전과 비교해도 큰 손색이 없다. 2019년에는 90경기, 2018년에는 92경기 만에 100만 관중을 넘어섰다.
풍경이 가장 많이 달라진 곳은 역시 사직구장이다. 경기를 치를수록 관중이 들어차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의 홈경기에선 2만2990석이 올 시즌 처음으로 매진됐다. 지난해 롯데는 4월 한 달간 12경기에서 8만6418명의 홈 관중을 기록했다. 올 시즌에는 같은 기간 13경기에서 13만2634명의 팬이 사직구장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롯데의 센터라인 보강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포수 유강남과 유격수 노진혁을 FA 시장에서 영입하면서 수비력이 강해졌다. 과거 롯데가 개막 초반에는 상위권으로 올라갔다가 여름 들어 순위가 내려간 이유는 역시 수비 탓이었다”고 진단했다. 이 위원은 또 “결국 관건은 선발진이다. 최근 부진한 외국인 투수들과 박세웅이 안정된다면 롯데가 후반부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리라고 본다”며 “롯데를 비롯해 KIA와 LG 등 팬층이 두터운 구단의 선전으로 프로야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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