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떨며 영화 볼 사람? 오늘밤 랜선으로 모여”
“주인공이 라멘을 먹네요?” 해리슨 포드가 출연한 1982년작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주인공이 일본풍 라멘 가게에 들어서는 장면이 나오자 댓글 창에 이런 문장이 올라온다. 곧바로 들려오는 음성이 댓글 작성자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이 시대는 일본의 대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한 때입니다. 미국인들 사이에 일본에 대한 경계심과 동시에 오리엔탈리즘적 환상이 있던 시대죠.”
토종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왓챠의 ‘영화파티’ 서비스가 진행되는 풍경이다. 2021년 처음 선보인 ‘영화파티’에서는 최대 2만 명까지 동시에 같은 콘텐트를 감상하며 채팅으로 소통할 수 있다. 누구나 진행자나 시청자로 참여할 수 있는데, 지난달부터 한 달여 간 황석희 번역가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돌아가면서 진행을 맡아 영화를 실시간 해설하는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시청자는 댓글로, 진행자는 음성으로 소통하며 같은 영화를 감상하는 일종의 ‘라방’(라이브방송)인 셈이다. 김도훈·주성철 영화평론가가 진행한 ‘블레이드 러너’ 파티에는 400여명의 시청자가 방송 초반부터 위와 같은 감상을 주고받았다.
극장 중심이던 영화 관람 문화가 점차 OTT, IPTV(인터넷TV) 등을 활용한 개별적인 시청 쪽으로 옮겨가면서, 대면으로 이뤄지던 GV(관객과의 대화) 등의 전문가 해설 이벤트도 온라인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네이버의 ‘오픈톡’ 서비스 역시 콘텐트를 보며 실시간으로 떠들고픈 시청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공간이다. 네이버가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등 스포츠 이벤트를 중심으로 처음 도입한 오픈톡은 온라인에서 함께 경기를 시청하며 채팅하는 커뮤니티로 호응을 얻었다. 올해 초부터 드라마·게임 등의 분야로도 서비스가 확대됐고, 현재 공식 오픈톡을 개설한 드라마는 SBS ‘모범택시2’, JTBC ‘닥터 차정숙’ 등 총 22편(4월까지 기준)이다.
오픈톡 창에서는 배우들을 향한 응원과 ‘짤방’ 공유, “아까 엔딩에서 나온 노래 제목 뭔가요” 등의 질문이나 방송 내용에 대한 진지한 토론 등 다양한 종류의 채팅이 오간다. ‘모범택시2’는 6만 명이 오픈톡을 찾았고, ‘닥터 차정숙’은 3만3000명이 꾸준히 방문 중이다.
이처럼 드라마·영화 시청자가 온라인에서 더 빨리, 더 가까이 감상을 나누는 이유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불특정 다수와의 소통이 현실의 교류보다 더 큰 만족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오픈톡은 공통된 관심사에 기반한 ‘느슨한 유대’를 선호하는 요즘 트렌드에 발맞춘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좋아하는 콘텐트 이야기를 현실의 지인보다 온라인상 익명의 타인과 나누려는 게 요즘 사람들의 심리라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인터넷 세대인 젊은 층은 감정을 곧바로 문자로 옮기는 게 습관화돼있고, 이를 어디에든 표출하고 싶어 한다”며 “그에 대해 불특정 다수가 반응하면 실제에서보다 더 제대로 누군가와 연결됐다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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