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 딛고 연기 20년… “장애는 그분의 선물”
“장애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배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배역을 잘 마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살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에게는 걷고 말하는 것이 일상이고 당연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소원이고 기적이 되는 경우가 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마다 곤욕을 치른다. 역마다 멈출 때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있는 힘을 다해 손잡이를 쥐어 잡고 버틴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내려서 계단을 오르기 위해 뒤뚱뒤뚱 거리며 한발 한발 걸어 이동한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스텝이 꼬여 그대로 고꾸라져 무릎이 계단 모서리에 찍혀 피가 흐르고 뼈가 보일 정도로 찢어지기도 한다. 머리를 다쳐 몇 개월 고생한 적도 있다. 지하철이 멈출 때에 중심을 잃고 임산부 앞으로 넘어져 태아가 다친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을 때도 있었다.
올해로 20년 차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뇌병변 1급 장애인 배우 길별은(사진·53·여의도순복음교회)씨 이야기이다. 현재 길씨는 ㈜프로316 소속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장애인 배우를 양성하고 있는 (사)한국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길씨는 그동안 뮤지컬 ‘날개없는 천사들’ ‘배우수업’ 드라마 ‘뻔뻔한 삼총사’ ‘갑동이’ ‘개가천선’ 등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KBS 아침마당 출연, 교회 간증, 강의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길씨는 “어머니가 나를 가졌을 때에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에 걸려 아기를 낳고 보니 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사신다. 어머니는 나를 어렸을 때에 업고서 많은 곳을 보여주기 위해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다니셨다. 어머니 아버지의 눈물 어린 기도와 사랑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길씨가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어머니와 함께 걷다가 생활정보지에 실린 광고 때문이었다. 2004년 당시 예술의전당 안에 있는 서울예술단에서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 장애인 배우를 모집하는 광고였다. 어렸을 때 영화를 보면서 배우가 되면 하늘도 날 수 있고 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을 갖게 됐다. 5명을 모집하는 데 20여 명이 지원을 했다. 결국 5명 안에 뽑혀 서울과 지방을 순회하며 장애인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프로316 김은경 대표를 만나 17년 동안 각종 드라마와 영화, 방송출연 등의 시간을 보냈다.
길씨는 “내가 배우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된 것은 지금의 ㈜프로316 김은경 대표를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서울예술단에서 3년 동안 ‘크리스마스 캐롤’의 장애인 배우로 활동하다가 뮤지컬 공연이 중단돼 더 이상 배우의 길을 걸을 수 없게 됐다. 그래도 배우의 꿈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영화 제작사나 드라마 제작사, 기획사 등의 홈페이지를 찾아 배우가 되고 싶다고 글을 곳곳에 올렸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한곳 가나엔터테인먼트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은 첫마디가 ‘교회 다니세요’였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자 와서 한번 이야기하자고 했다. 찾아가 대표님을 만나 상담을 했는데 ‘나 같은 사람도 배우가 될 수 있을까요’라고 하자 ‘할 수 있습니다. 한번 해봅시다’라고 했다. 이렇게 시작된 김은경 대표님과의 만남이 오늘까지 17년째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길씨는 “나의 꿈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저런 사람도 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겠다는 꿈을 갖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최근 한달 전까지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고 한다.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렵고 불안해서 정신적인 고통이 심해 우울증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길씨에게 가장 힘든 것은 이동하는 것이다. 아직은 휠체어를 탈 정도는 아닌데 온몸이 뒤틀리는 경련으로 걷기가 힘들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넘어질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다닌다. 그런데도 배우는 하루라도 연습을 게을리하면 안된다며 발음과 발성, 연기연습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했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연기를 보고 희망을 갖기 바라는 마음으로 마포에 있는 연습실로 향한다.
길씨는 인터뷰 내내 한마디 한마디 말을 이어가기 위해 온몸이 뒤틀리고 발음하기가 힘든 가운데서도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데 근육 경련으로 손이 떨리는데도 연신 아멘을 외쳤다.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에 있는 협회 사무실을 떠날 때 길씨의 충만한 믿음으로 오히려 필자가 더 은혜를 받았다.
김변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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