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반한 HERO ‘영웅시대’ [스페셜리포트]
# 4월 8일 FC서울과 대구FC의 K리그 경기가 열리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5만명 가까이 수용 가능한 경기장이 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평소에는 1만명 남짓 차던 경기장에 4배가 넘는 4만여명의 관중이 몰렸다. 국가대표 축구 대항전이 열려야만 볼 법한 숫자다. 성비와 연령대 구성도 평소와 다르다. 축구 경기장을 자주 찾는 2030 남성 관람객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40대부터 70대까지 중·장년 여성층이 주를 이룬다. 젊은 여성 숫자도 만만찮다. 몇몇 좌석에서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눈에 띈다.
2023년 국내에서 가장 ‘뜨거운’ 연예인을 꼽으라면 단연 ‘임영웅’이다. 일부 세대, 연령층에서만 인기를 얻는 다른 연예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장년 여성층을 넘어 전 세대에서 인기를 얻는 스타로 영향력을 과시한다. 실제로 임영웅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크게 몰린다. 그의 공연은 ‘돈 있어도 못 보는 공연’으로 불린다. 워낙 극악의 예매 난이도를 자랑하는 탓에 붙은 별명이다. 일례로 지난해 10월 27일 티켓오픈을 한 ‘2022 임영웅 전국투어 콘서트 IM HERO’는 예매 사이트 83만 트래픽을 기록, 전 회차가 초고속 매진됐다. 임영웅의 공연 실황을 찍은 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은 3월 극장에서 개봉 이후 누적 관객 수 24만명을 기록했다. CGV 단독 개봉이었음에도 공연 실황 영화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영화 열기는 VOD로 옮겨 가서도 꺼지지 않고 있다. 4월 20일 VOD 서비스 기업인 홈초이스에 따르면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의 VOD 사전 구매 기간 동안 LG헬로비전, SKB알뜰, 딜라이브, HCN, CMB 등 전국 케이블 TV 매출이 전 플랫폼 1위를 달성했다.
문화 전반에 걸친 임영웅의 영향력은 지표로도 드러난다. 임영웅은 ‘미스터트롯’에 등장한 2020년부터 현재(2023년 4월)까지 28개월 연속 트로트 가수 브랜드 평판 1위를 차지했다. 해당 지수는 가수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참여 지수, 미디어 지수, 소통 지수, 커뮤니티 지수 등으로 측정된다. 세부 지수에서 모두 임영웅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비단 ‘트로트’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범위를 넓혀 스타 평판 지수로 봐도 임영웅은 2020년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방탄소년단, 뉴진스, 손흥민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과 함께 랭킹 최상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야말로 ‘영웅시대’다.
팬덤 소비 기업들 ‘HERO’ 찾는다
많고 많은 스타 중에서도 임영웅은 기업에서 ‘모셔야 할 스타 1순위’로 꼽힌다. 임 씨가 광고 모델로 나서거나, 직접 사용한다고 알려진 제품들은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서다. 중·장년 여성층이 주축이 된 임영웅의 팬들은 막강한 소비력을 앞세워 임 씨가 광고하는 제품을 연일 ‘완판’시키고 있다.
2020년 3월 임 씨가 트로트 가수로 성공을 거둔 직후, 러브콜이 끊임없이 쇄도했다. ▲2020년 발효홍삼(한국야쿠르트), 영웅문(키움증권), 렉스턴(KG모빌리티), 바리스타룰스(매일유업), 덴티스 임플란트(덴티스) 등 ▲2021년 언택트 얼음정수기(청호나이스), 닥터클로 탈취제(엔오엔), 발효침향(뉴트리원), 브루노바피(세정) 등 ▲2022년 경옥고 (광동제약), 애니팡(위메이드플레이), 본죽(본죽) 등 수십 개 업체들이 임영웅을 광고 모델로 발탁했다.
임영웅을 모델로 쓴 해당 브랜드들은 ‘임영웅 효과’를 맛보며 ‘대박’을 터뜨렸다. 청호나이스는 임영웅이 모델로 활동하기 시작한 2020년 1월에서 5월 사이 정수기 렌털 판매가 전년 동기에 비해 20% 늘어났다. 특히 임영웅이 직접적으로 출연한 광고 제품인 살균얼음정수기 ‘세니타’는 판매량이 50% 신장했다.
업계 판도를 흔드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했다. 임플란트 업체 ‘덴티스’는 임영웅 효과에 힘입어 업계 1위인 오스템임플란트를 바싹 추격 중이다. 본래 임플란트 시장은 오스템의 독주 체제였다. 그러나 덴티스가 임영웅을 광고 모델로 섭외한 이후 오스템의 아성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임플란트를 하러 온 여성 고객층이 임영웅이 모델인 덴티스로 갈아타기 시작한 것. 때문에 한때 치과의사 사이에서는 ‘덴티스 임플란트 제품’을 필수로 구비해놔야 한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덴티스 관계자는 “임영웅 씨를 광고 모델로 쓰면서 기업·제품 인지도가 확 올라갔다. 병원 영업도 훨씬 수월해졌다. 코로나19 유행 시점과 광고 시작 시점이 맞물렸는데, 광고 효과에 힘입어 회사 매출은 지속 성장 중”이라고 귀띔했다.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는 임영웅이 기사회생시킨 브랜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쌍용자동차는 스포츠 유틸리티 차(SUV) G4 렉스턴의 모델로 임영웅을 발탁했다. G4 렉스턴은 임 씨가 모델로 활약한 이후 판매량이 약 한 달 만에 53% 급증했다. 주요 완성차 모델의 판매량 부진으로 인해 위기에 몰렸던 쌍용차는 렉스턴의 활약 덕에 숨통이 틔게 됐다.
세정웰메이드는 2020년 4월 선보인 임영웅 CM송 ‘트롯웰송’의 영상 조회 수가 167만을 기록하며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영상 속 임영웅이 입은 ‘스트라이프 린넨 셔츠’는 영상 노출 후 3주일간 판매량이 노출 전보다 510% 폭증하기도 했다. 브랜드 경쟁력이 다소 ‘떨어진다’고 평가받던 시기, 임영웅의 활약에 힘입어 이미지 회복에 성공했다.
‘임영웅 효과’는 2022년에도 계속됐다. 광동제약은 지난해 12월 기준 ‘광동 경옥고’가 2016년 리뉴얼 제품 출시 후, 누적 매출 900억을 초과 달성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성과를 달성하기까지 해당 제품의 광고 모델로 활약한 ‘임영웅’ 효과가 컸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밖에도 화장품 브랜드 ‘리즈케이’는 진행한 홈쇼핑에서 매진 기록을 세웠고, 모바일 게임 ‘애니팡’이 역주행 열풍을 일으키며 구글플레이스토어 인기 순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과거 향수·진정성에 감탄
대중들은 왜 이토록 ‘임영웅’에 열광하는 걸까. 단지 그가 광고한다는 이유만으로 물건을 사들이는 ‘충성심’은 왜 나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임영웅 신드롬’의 배경을 2가지 각도에서 분석한다.
첫 번째는 스타 자체의 경쟁력이다. 임영웅은 스토리가 매력적인 데다, 실력이 뛰어나다. 한국 대중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가수라는 설명이다.
다음으로 임영웅 팬의 주축인 ‘시니어 여성’의 특성이다. 현재 4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 중·장년층은 청소년기부터 다양한 가수의 음악을 즐겨왔다. 이들이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덕질’ 대상으로 임영웅에 몰입한다는 평가다. 마지막으로 ‘팬덤 문화’의 확장이다. 시니어세대는 임영웅 팬덤을 만들 때 2030세대 팬덤 문화를 그대로 답습했다. 과거 트로트 가수의 ‘리사이틀’ 공연을 들으러 다니던 모습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젊은 세대처럼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음원 사이트에서 무한 반복하는 ‘스밍’부터, 가수 관련 굿즈 구입까지 현재 아이돌 팬덤과 비슷한 소비 행태를 보인다. 자신과 비슷하게 ‘덕질’을 하는 기성세대에게 젊은 세대도 거부감을 덜 느낀다.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도 자연스레 ‘임영웅 덕질’에 동참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임영웅이라는 사람 자체가 큰 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노래 실력도 출중한데 인간성·대외적으로 모범적인 태도 등이 높은 충성도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임영웅의 ‘음악을 대하는 진중한 태도’역시 높은 지지를 끌어낸다. 손민정 한국교원대 음악교육과 교수는 “팬과 가수 사이의 충성적인 관계에서는 ‘진정성’이 매우 중요하다. 트로트에 대한 진정성, 사람에 대한 진정성, 인생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아티스트에게 대중은 쉽게 매료된다”고 설명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트로트와 음악에 대한 진정성을 놓지 않은 그의 모습이 충성도 높은 팬들을 양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팬덤의 주축인 ‘시니어 여성’ 세대 특성도 임영웅 신드롬에 한몫한다. 1020세대보다 경제력은 탄탄하고 가수를 향한 애정 표현도 1020세대에 뒤처지지 않는다. 기부, 지하철 전광판 홍보, 스트리밍, 앨범·굿즈 구매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주도적으로 애정하는 스타를 지원하며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한다.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많아 씀씀이가 크다. 경제적인 파급력이 다른 세대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하나은행 하나경영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 팬덤은 잃어버린 나의 정체성을 찾고 위안을 얻는 수단으로 관련된 소비에 매우 적극적이다. 연령 특성상 좀 더 관대하게 스타를 바라보기 때문에 ‘덕질’ 지속성도 긴 편이다”라고 분석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7호 (2023.05.03~2023.05.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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