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5월 5일’로 정해진 사연은 [조홍석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 이야기’]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올해는 어린이날이 선포된 지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어린이날이 5월 5일이라는 건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방정환 선생님이 처음 선포한 어린이날은 5월 1일이었다는 걸 아시는지요?
어린이날이 5월 5일로 바뀐 이유는 사연이 좀 깁니다.
방정환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 치료비를 벌기 위해 학교를 중퇴,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등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입문한 천도교 청년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데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가 그를 마음에 들어 해 1917년 셋째 사위가 된 후 보성전문학교 법학과에 입학, ‘신데렐라 왕자’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이 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비극이 닥칩니다.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인쇄하다 일본 경찰이 들이닥치자 방 선생은 등사기를 우물에 던져 증거를 없앴는데요. 본인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지만 장인어른과 일부 청년회 동지들은 옥사하는 비극을 맞게 되지요.
방 선생은 ‘다음 세대에 민족혼을 심겠다’는 장인 뜻을 받들어 훗날을 도모하기로 하고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갑니다. 1920년 천도교 월간지 ‘개벽’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불켜는 아이’를 기고하면서 처음으로 ‘어린이’라는 단어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 아이들은 그저 ‘어린놈’ ‘애새끼’ 등으로 비하되는 경우가 많았다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방 선생은 젊은 사람은 ‘젊은이’, 늙은 사람은 ‘늙은이’라 부르니 어린 사람은 ‘어린이’라 부르는 게 마땅하다고 제안한 것이죠.
방 선생은 1921년 5월 1일 천도교인 자녀들을 모아 ‘천도교 소년회’를 만들고 1922년 소년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해 처음으로 이날을 ‘어린이날’이라고 칭했습니다. ‘앞으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서로 존댓말을 쓰자’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1923년 3월 국내 최초의 소년 잡지 ‘어린이’를 창간합니다.
방정환 선생 “어린 사람은 ‘어린이’로 불러야”…어린이 표현 처음 써
“어린이 운동이 계급 투쟁으로 변질”…기존 5월 1일 대신 5일로 새 출발
어린이 계몽 운동이 확산되자 1923년 5월 1일, 서울 지역 소년 단체 회원과 관계자 등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조선소년운동협회 주관 전국 행사로 새로이 어린이날을 선포했죠. 이날이 공식적인 첫 어린이날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2023년, 올해가 어린이날 선포 100주년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당시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들이 5월 1일 새벽 6시부터 나팔을 불며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라”고 구호를 외치며 전단지를 배포했다고 하니, 어린이 입장에서는 더 고된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 단체가 통합한 조선소년연합회 조직 내 좌익 운동가들이 어린이 계몽 운동을 자꾸 계급 투쟁 노선으로 변질하려들자 방 선생은 환멸을 느끼고 탈퇴를 선언합니다. 이후 ‘색동회’를 통해 어린이날 행사를 이어갑니다. 그러면서 5월 1일 노동절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1927년부터 5월 첫째 주 일요일로 어린이날을 변경합니다.
하지만 1933년 그가 사망하자 조선총독부는 1934년 ‘어린이’ 잡지를 폐간시키고 1937년부터는 아예 어린이날 행사도 금지시킵니다. 이후 해방을 맞이하면서 어린이날 행사가 부활합니다. 그러나 색동회는 5월 첫째 일요일로 하자고 주장하고, 타 단체는 5월 1일에 하자고 대립하다 1946년 5월 첫 일요일인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타협한 것이 굳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후 1948년 어린이날 노래가 만들어지고 1975년부터 국가 공휴일로 지정돼 현재에 이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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