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공매도 타깃 된 '기업 사냥꾼'…칼 아이칸, 재산 13조 증발
이번엔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 겨냥
아이칸 재산 하루 새 13조 증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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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기업 사냥꾼'이자, 손꼽히는 월가 행동주의 투자자인 칼 아이칸이 공매도 세력의 공격으로 불과 하루 만에 재산 100억 달러(약 13조4000억 원)를 날렸다. 공매도를 주도한 세력은 월가 대표 공매도 투자회사인 힌덴버그 리서치.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부터 우리나라 KT&G에 이르기까지 지배구조나 주주환원정책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기업을 공격해 왔던 아이칸이 이번엔 반대로 공매도 세력의 타깃이 됐다.
공매도 타깃 된 기업 사냥꾼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힌덴버그는 아이칸의 지주회사인 아이칸 엔터프라이즈에 대해 "과도하게 많은 자금을 차입했고 순자산가치(NAV)에 비해 극단적으로 높은 프리미엄으로 거래되고 있다"며 '공매도' 중이란 사실을 밝혔다.
힌덴버그 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 주식은 자산 대비 200%가 넘는 프리미엄에 거래되고 있다. 보유자산의 가치도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분석이다. 아이칸은 아이칸 엔터프라이즈가 보유한 자동차 부품업체의 가치가 작년 말 기준 3억8100만 달러(약 5100억 원)라고 밝혔지만, 이 회사의 자회사 중 한 곳은 올 1월 파산을 신청했다. 또 아이칸은 육류 포장업체인 비스카세 지분 90%를 보유한 데 대한 평가가치가 지난해 말 기준 2억4300만 달러(약 3300억 원)에 이른다고 계산했지만, 시장조사업체 팩트셋은 절반 수준인 1억1400만 달러(약 1500억 원)로 평가했다.
또 아이칸이 '폰지 사기'와 같은 경제 구조를 만들었다고 힌덴버그는 주장했다. 힌덴버그는 "아이칸이 새로운 투자자에게서 받은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해 왔다"고 비판했다. 폰지 사기란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 등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 사기를 뜻한다. 아이칸의 주식담보대출이 보유주식의 60%로 지나치게 높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주가 하락시 더 많은 주식 물량을 담보로 제공해야 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힌덴버그는 "우리는 월가의 전설인 아이칸이 지속된 손실에 직면에 지나치게 많은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고전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이칸은 즉각 반발했다. 아이칸은 성명을 내고 "힌덴버그의 보고서는 자기 잇속만 차리려는 것(self-serving)"이라며 "숏(매도) 포지션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게 유일한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순자산 하루 새 13조 증발…아이칸은 누구?
힌덴버그의 공격으로 전 세계 부호 순위 60위 내에 들었던 억만장자인 아이칸의 순자산도 순식간에 쪼그라들며 100위권 밖으로 벗어났다.
이날 뉴욕 주식시장에서 아이칸 엔터프라이즈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20% 하락한 40.3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에 따라 아이칸 엔터프라이즈 지분 85%에 대한 평가가치 감소분을 포함해 아이칸의 순자산은 이날 하루에만 100억 달러(약 13조4000억 원) 이상 쪼그라들었다. 순자산의 41%가 증발하면서 아이칸의 자산은 146억 달러(약 19조5000억 원)로 줄었고, 전 세계 부호 순위는 종전 58위에서 119위로 추락했다.
기업 사냥꾼으로 이름을 떨친 억만장자에서 한순간 공매도 투자자의 타깃이 된 아이칸은 1936년 미국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1961년 월가에 뛰어든 그는 1980년대 미 항공사 트랜스월드에어라인스(TWA)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로 전설이 됐다. 그 때부터 저평가 됐거나 현금이 많은 기업에 투자한 뒤 경영권에 간섭해 차익을 얻는 투자자로 유명해졌다. 과거 애플 주식을 집중 매수한 뒤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고, 우리나라에선 2006년 KT&G 경영권을 위협해 1년여 만에 매각 차익과 배당금 등으로 15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챙겼다. 당시 국내에 외국 자본의 '먹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아이칸이었다. 최근엔 맥도날드, 월트디즈니의 지분을 집중 매수했고, 바이오업체 일루미나 경영진과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아이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행동주의 투자자'란 평가도 있지만 '기업 사냥꾼'이란 비판도 만만치 않다. 아이칸은 초기엔 주식 매매 차익을 통해 수익을 얻는 투자자였다. 이후 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하면서 이름을 떨쳤지만 점차 장기 성장에 대한 고민 보다는 단기 차익 실현에 집중하면서 이젠 기업 사냥꾼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전설적 행동주의 투자자 vs 공매도 선수' 대결 승자는
월가는 전설적인 행동주의 투자자와 공매도 선수 간 대결의 승자가 누가 될 지를 흥미로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특히 악명 높은 기업 사냥꾼인 아이칸이 월가 대표 공매도 세력의 타깃이 됐다는 점에서 눈길이 쏠린다. 힌덴버그는 최근 인도 재벌인 고탐 아다니가 창업한 아다니 그룹을 공격해 580억 달러(약 77조60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사라지게 한 공매도 선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이칸은 기업 지분을 사들인 뒤 주가를 올릴 걸로 생각되는 변화를 요구하는 전설적인 행동주의 투자자로,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비판에 힘을 쏟고 주주 이익 증대에 끈질기게 집중해 왔다"며 "(이처럼) 기업들을 노리는 투자자(아이칸)를 역시 기업들을 타깃으로 하는 공매도 투자자(힌덴버그)가 겨누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아이칸 엔터프라이즈는 힌덴버그가 크게 히트를 친 수많은 공매도 투자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봤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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