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문학을 무기로 세상에 맞선 '기간제 교사'

서부원 2023. 5. 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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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좋은 선생님'을 향한 다짐을 새삼 일깨워준 아르헨티나 영화 <기간제 교사>

[서부원 기자]

 넷플릭스 영화 <기간제 교사> 포스터 이미지
ⓒ 넷플릭스
 
교사라면 다 그럴 테지만, 교단에 처음 섰을 때 내 꿈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교직 경력 25년을 넘긴 지금은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교사에게 최고의 보람은 어엿한 사회인이 된 졸업생들이 찾아와 학창 시절의 추억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선생님'이 되고,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는 건, 쉽지 않을뿐더러 평생 끊임없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수시로 개정되는 교과 내용에 대해 부단히 학습하고 수업 기법에 대한 연수를 받는 건 기본일 뿐이다. 그에 더해 '별도의 자극'이 필요하다.

예컨대, 역할 모델 삼을 만한 동료 교사를 만나는 것과 교사의 무사안일에 죽비를 내리치는 제자의 질문 등이 그것이다.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이 기존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일거에 허무는 힘을 발휘할 때도 있다. 비유컨대, 일신우일신 없이는 결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다.

잔잔한 영화 한 편이 때론 묵직한 교훈을 건네기도 한다. 교육 현장을 배경으로 하거나 교사가 주인공이라면, 교사로서 성찰할 대목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 다른 나라의 교육을 소재로 삼는 거라면 우리의 현실과 대조하고 비교해보면서 대안을 떠올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약에 연루된 제자를 구하려 뛰어드는 교사
 
 넷플릭스 영화 <기간제 교사>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지난 주말, '좋은 선생님'을 향한 다짐을 새삼 일깨워주는 좋은 영화 한 편을 만났다.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아르헨티나 영화 <기간제 교사(el suplente)>. 문학을 전공한 대학교수가 고향에 내려와 임시직 기간제 교사가 되어 마을의 방치된 아이들을 감화시킨다는 내용이다.

개과천선과 권선징악의 해피엔딩까지, 얼개만 보면 뻔한 주제와 구성이다. 그런데도 장면과 등장인물의 대사 하나하나가 낯설게 느껴지는 건, 남미 특유의 문화적 감수성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아르헨티나는 남반구의 우리와 지구 정반대 쪽에 자리한 나라다.

우선, 이 영화의 낯선 첫인상은 종교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부제'에서 기인한다. 'Nadie Se Salva Solo.' 에스파냐어로, 그 누구도 스스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냉소적이고 무기력했던 주인공 루시오가 '좋은 선생님'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점을 미리 보여주는 복선이다.

마약상에 연루된 제자를 구하기 위해 신변의 위협까지 감수하는 루시오. '부제'는 그의 교육자적 소명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찾아보라는 질문과도 같다. 비록 허구일지언정 평범한 지식인을 불의에 맞선 실천적인 교육자로 변모시킨 계기가 무엇인지 성찰해보라는 뜻이다.

고향에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선행 영향일 수도 있고, 자신은 공립학교에 근무하면서 어린 외동딸을 교육 환경이 나은 사립학교에 보내려고 안달하는 그의 이율배반적 태도에 대한 자성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문학을 공부한 학자의 감수성 덕분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의 헌신으로 제자가 마약 범죄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되고, '쓸모없는' 문학을 통해 아이들의 메마른 영혼을 일깨워주면서 기간제 교사의 직분을 충실히 완수해낸다. 주위 환경과 타인을 통해 자신이 구원받았듯, 그로 인해 아이들이 구원받는 선순환이 이뤄진 셈이다.

불법과 불신이 횡행하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루시오는 기꺼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의 편에 선다. 기존의 법과 제도, 폭력과 관행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교육자적 소명 하나로 일상을 견뎌낸다. 주변의 온갖 회유와 위협 속에서도 그의 한결같은 대답은 "나는 교사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교사에게 교육의 본령을 자문해보게 하는 영화다. '좋은 선생님'으로 거듭난 한 기간제 교사의 분투기는 냉소와 무기력에 허우적대는 이 땅의 교사에게 내려치는 매서운 죽비다. 아울러 초임 시절의 교육자적 소명과 열정을 반추해보라는 주문이다.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교사이지만...

기실 영화 속 루시오의 노력을 방해하고 조롱하는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신뢰를 잃은 공교육과 그 와중에도 자녀를 자사고와 특목고에 보내기 위해 혈안이 된 현실과 정확히 겹친다. 배제와 차별을 당연시하는 교육 현장의 슬픈 자화상이다.

무엇보다 학교 내에서 벌어진 불법 행위에 대처하는 정부와 교사들의 관행적이고 무기력한 행태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교육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법의 잣대를 들이미는 관료주의적 접근은 매우 위험하다. 책임을 모면할 수 있을지언정 교육을 포기하는 행위라서다.

정부가 교실에 '수업 감시 공무원'을 파견하는 장면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한 아이가 마약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교실 내 모든 아이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매시간 수업을 참관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의 방침에 맞선 루시오의 번민과 갈등이 최고조로 달하는 장면이다.

더욱 황당한 건, 학교 측의 대응이다. 정부의 방침이 무모하고 반교육적이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학교는 관행에 따라 순응하기로 한다. 서슬 퍼런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교육자적 소명을 스스럼없이 내팽개치는 교사 집단의 소심하고 무기력한 모습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루시오의 헌신은 아이들은 물론, 오로지 수업을 감시하기 위해 교실로 출근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까지 끝내 감화시킨다. 영혼을 주제로 시를 쓰려는 옆자리의 아이에게 그가 은근슬쩍 필기구를 건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루시오가 옳았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현실 속에선 루시오처럼 열정과 소명을 지닌 교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물며 근무 기간이 길어야 1년인 기간제 교사가 교육 현장의 뿌리 깊은 관행과 무기력에 맞서 싸우기란 불가능하다. 정규 교사라고 다를 건 없다. 그들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귀찮아하기 일쑤다.

어느 조직이든 관행에 찌들어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다수고, 반면에 낡은 관행을 깨트리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은 늘 소수다. 사회에서 가장 변화가 더디다는 학교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고래로 학교는 기득권에 순응하고 복종하도록 가치관을 이식시키는 공간이었다.

그나마 영화에선 낡은 관행에 맞서 열정을 쏟는 소수가 종국엔 이기지만, 자막이 오른 뒤 현실로 돌아오면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라고 자위하지만, 뒷맛이 영 개운찮다.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지만, 현실에서 교사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은 대강 이런 것들이다.

"교사가 '스승'으로 불리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죠. 지금 교사는 그저 '잡(Job)'일 뿐."
"그런다고 학교가 바뀔 것 같아요?"
"남들 가는 대로 가고,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게 뒤탈이 없어요."

과연 영화 속 기간제 교사 루시오가 지금 대한민국의 학교에 나타난다면, 이 안타까운 교육 현실도 바꿔낼 수 있을까. 부디 이 영화가 아이들의 삭막한 영혼을 일깨워줄 이 땅의 '루시오'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었으면 좋겠다. '좋은 선생님'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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