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오버랩 된 송영길 '출두쇼'…정작 녹취록 답변은 궁색했다 [현장에서]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으로 검찰 수사선에 놓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자진 출두’는 검찰청사 출입구에서 막혔다. 송 전 대표는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대뜸 방호과 직원에게 “검사님 면담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으나, 직원은 “등록이 안 돼 있다”는 이유로 출입을 불허했다. 송 전 대표가 “변호사 통해 면담을 요청했다. 통화 좀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불발됐다.
그러자 송 전 대표는 “전화까지 안 받을 거 있나”라는 혼잣말을 한 뒤 “기자회견문을 낭독할 테니 자리를 정비해달라”고 요구했다. 자진 출두가 기자회견으로 전환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에 불과했다. 전날 기자로부터 자진 출두 소식을 전해 들은 민주당 의원이 깜짝 놀라며 “검찰청사에서 기자회견만 한다는 거로 알고 있다. 그게 맞을 것”이라고 말한 것 그대로였다.
송 전 대표는 미리 준비한 A4용지 5장 분량의 회견문을 꺼내 포토라인 앞에 섰다. 송 전 대표는 이번 사건을 “검찰의 정치 기획 수사”로 규정하면서 “주위 사람 괴롭히지 말고 송영길을 구속시켜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그는 “검찰이 공안부에 배당할 사건을 특수부에 맡겼다”라고도 했다. 돈 봉투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에 대해선 “참고인의 신상정보가 아무런 통제 없이 언론에 유출되고, 수사상 획득한 정보가 실시간 보도되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송 전 대표의 주장을 두고 한 민주당 관계자는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같지 않냐”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던 논리와 사실상 일치한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해 왔고, 전방위적 수사에 대해선 “검찰이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 수사에 대한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위법한 피의사실 공표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수사 검사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한 상태다.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외곽조직 '먹고사는문제연구소' 압수수색을 “명백한 정치적 탄압”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 대표 역시 지난해 10월 당사 압수수색 때 “그야말로 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영길 힘내라”, “송영길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기자회견문을 읽는 모습 마저, 국회의원 40여명에게 둘러싸여 입장을 밝힌 이 대표의 모습과 오버랩됐다.
기자회견으로 끝난 자진 출두였지만, 정작 국민이 궁금해하는 ‘이정근 녹취록’에 대한 송 전 대표의 답변은 궁색했다. 송 전 대표는 취재진이 ‘녹취록까지 나온 상황에서 몰랐다는 해명을 납득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고 묻자, “(녹취록의 대화 당사자인) 강래구씨가 조사를 받았지만, 영장이 기각됐다. 3만개나 되는 녹취록의 일부만 추출한 것의 신빙성은 검찰과 법원에서 다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돈 봉투 살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신할 수 없느냐’는 질문에도 “그 문제는 검찰 수사를 통해서 대응하고 법정에서 다투도록 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송 전 대표는 민주당이 집권당일 때 마지막 당 대표를 지냈다. 그가 선출된 전당대회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로 현재 민주당은 ‘더불어돈봉투당’이란 오명을 받고 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정치 쇼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는 말로 입을 열었지만, 23분간 기자회견에도 국민적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았다. 같은 당 내부에서도 그의 ‘자진 출두’를 두고 “국민이 정치적으로 방어한다. 혹은 덮으려고 한다는 오해를 할 수 있다”(김종민 의원)는 혹평이 나온 이유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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