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Q sign #12] 노숙인이 물었다 “너 돈 있어?”

전병선 2023. 5. 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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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인 목사

이제, 춥고 어두운 길, 홈리스들 사이를 뚫고 학교에 가야 한다. 긴장이 되는 게 사실이지만 한가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무인도에, 혹은 저 어둡고 광활한 우주에 버려 짐을 당한 것 같은 경우에라도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면(기도는 24시간 가능하다. 꼭 앉아서만 하는 게 기도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건져 주셨다.

또 한가지는, 두려워하는 것이나 외면하는 것이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가 있다. 누가 되었든(홈리스든 부랑자든) 당당하게 대꾸하고 씩씩하게 대처하면 굳이 해를 입히려 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학교를 향해 급하게 가고 있는 나에게 “Mam, any change?”(돈 있어?)라고 하면 “You know what I am same as you, no money. That’s why I am going to go school to learn to get a job.(나도 너랑 마찬가지야. 돈이 없어. 그래서 직업을 가지려고 학교에 가고 있는 중이야.)”라고 대꾸하며 지나가곤 했다.

자기들 눈에 보기에도 내가 부자같이 보일 리 만무했다. 민얼굴에 싸구려 운동화, 염색하지 않은 희끗희끗한 머리를 하나로 움켜서 고무줄로 잡아매고 청바지에 가방 하나 둘러맨 할머니를 바라보면 자기들이나 나나 행색이 비슷하니까. 다른 게 있다면, 자기들은 앉아있고 나는 부지런히 걷고 있다는 차이일 뿐, 그런 말이 있다지, 군중들도 뛰어가는 사람에게는 길을 비켜준다는.

그렇다. 나는 앉아있지 않았다. 미국에 오자마자 바느질 공장엘 들어갔고 영어가 입에서 술술 나오지 않으니 미리 문장을 작성해 전화로 인터뷰를 하면서 직장을 찾아다녔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예배를 드리고 공부를 해서 삼세번 만에 우체국 시험에 100점 만점을 받았다.

우체국 시험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와 정확성이 관건이었다. 5분 동안에 95문제를 푸는 두 종류의 시험을 보았다. 통지를 받고 갔더니 몸집이 큰 흑인 시험관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자기가 몇 분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지?”라고 묻곤 했다. “네가 이런 이런 말을 내게 한 게 아니니?”라는 식으로 30분 정도의 인터뷰를 한 후에, “네 체격으로 70파운드를 들기도 힘들어 보이니 영어도 조금 더 공부하고 나중에 다시 오라”고 했다.

당연히 실망할 줄 알았던 내가 “감사합니다. 나중에 봅시다!”라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보이니 그 여자가 이상한 듯한, 실망한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슬픈 표정을 보여주는 게 예의였을까. 실은, 인터뷰하러 들어가기 전에 우체국 건물과 제복을 입은 직원들의 모습을 보았다. 보암직스러워 보이지도 않았고 직사각형의 시멘트 건물 안에서 매일 단순한 일들을 반복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내키지 않았었다. 당시에 나는 이미 게스(Guess Company)의 Man Division Department Pattern Room에서 Production Sample Maker로 일을 하고 있었다. 당장 내일부터 오라고 했더라도 거절을 할 참이었는데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닐까. 상대방이 나를 합격시켜 주지 않은 덕분에 “거절”이라는 몹쓸 카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하룻밤에는, 수업을 마치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는데 한 동양인 홈리스가 맨홀 뚜껑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날 밤은 유난히 추워서 대부분의 홈리스들이 이미 보호소로 간 상황인데 그에게로 다가갔다. 배고픔을 누그러뜨리려 가지고 다니는 사탕 몇 개와 지갑에 있던 돈을 그의 앞에 다 쏟아 놓았다. 동전까지 합쳐서 $7.00 정도의 돈을 추려 그에게 내밀며, “따듯한 코코아 한잔이라도 사서 마시고 빨리 보호소로 가세요”라고 하니 그가 나를 쳐다보며 하는 말, “너 가진 것 다 나에게 주면 너는 어떻게 하려고?” 그 지경에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 홈리스가 참 특별하게 보였다. “나는 괜찮아요, 여기 버스표가 있잖아요. 빨리 보호소로 가세요. 오늘 밤은 특별히 춥다고 했어요. 여기 이대로 있으면 얼어 죽어요.” 버스표를 그를 향해 흔들어 보이곤 부리나케 버스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 사람은 다 마찬가지다. 누가 원래부터 홈리스였으며 평생에 평탄한 삶만 살겠는가.

등교할 때는 추위를 가릴 만한 것들을 챙겨 나와서 나누어 주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그럭저럭 잘 살다가도 피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서 몇 달 일을 못 하게 되면, 그래서 집 모기지나 아파트 비를 내지 못하게 되면 그냥 길바닥이다. 어디 가서 뭉개고 비비고 할 곳이 없다. 어떻게 하다가 마약이나 술, 도박에 빠지게 되면 그 인생은 되돌릴 수가 없게 된다. 결국은 독하지 못한 사람들이 홈리스가 된다.

그렇게 결사적으로, 필수과목들까지 다 수료하고 드디어 2014년 6월, Denver Convention Center에서 졸업식을 했다. 내 나이 66세, 두 달 후면 67세가 되는 시점이었다. 자, 이제 디자인대회(Design Competition)에 나가 Grand Prize를 획득하게 되면 시간당 임금이 $100.00이 넘어가게 된다고. 공부하는 과정 중 Fashion Show를 참관하고 난 후에, 참석한 디자이너들과 대화를 나누는 수업시간이 있었다. 한 미국 여자 디자이너가 말을 하기를, 자기가 대회(Competition)에 나가 1등을 한 후에 시간당 $130.00을 Charge한다고 했다. 아들이 아파서 부득이 Shop을 자기 집 안으로 들인 후에는 Shop Rent비도 절약을 할 수가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Fashion Overview Class에서는 Fashion Shop의 운영자에게 가서 인터뷰해 와야 하는 Project가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 인터뷰를 해서 와야 할까 고민스러웠다. 다운타운에 있는 이런저런 매장들을 기웃거려 보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감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온 날에, 그동안 눈여겨 보아 두었던 매장으로 쳐들어갔다. 뒤로 물러설 수가 없으므로 일단 인사를 하고 본론을 이야기했다. 그녀가 잠시 나를 바라보며 생각하더니, 내가 들고 있던 인터뷰 질문지에 손을 내밀었다. 자기가 스스로 적어 주겠다고. 그녀에게 질문지를 넘긴 나는, 그 상점의 세일 코너로 가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닐지라도 두 어 가지 물품을 구매했다. 이 세상 모든 일을 맨입으로 해결하려면 일이 힘들어진다. 피차의 필요를 존중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것이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라면.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Digital Fashion Illustration Class였다. 컴퓨터로 디자인을 하고 색깔을 넣고. 교회 행정 일은 컴퓨터로 하는 일이 많다. 각가지 예배 순서지는 물론, 모든 서식을 스스로 제작을 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 그렇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린 학생들도 이 과목을 공부하는 중에 Drop(과목을 포기하는)을 하는 것을 보면서, 얘들한테도 쉬운 게 아니었구나! 알게 되었다. 힘에 부치는 만큼, 담당 Instructor가 귀찮을 정도로 질문에 질문을 해 대면서 결국엔 무사히 그 과목을 마치긴 했다. 어쩔 수 없이 B학점을 받게 되었지만. <계속>

◇김승인 목사는 1947년에 태어나 서울 한성여고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LA 기술전문대학, Emily Griffith 기술전문대학을 나와 패션 샘플 디자인 등을 했다. 미국 베데스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북미총회에서 안수받았다. 나성순복음교회에서 행정 비서를 했다. 신앙에세이를 통해 문서선교, 캘리포니아에 있는 복음방송국(KGBC)에서 방송 사역을 했다.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논픽션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했다.
정리=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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