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검사 하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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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마을학교 성인문해교원입니다. 여러 면 소재지에서 모인 '마을한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씁니다. <편집자말>
[이상자 기자]
금요일 수업 때 가져온 마을학교 숙제 검사를 일요일이 지나도록 못 했다.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시간적 여유가 없다. 5월과 6월엔 초·중등학교로 출강하는 수업이 있어 틈나는 대로 그 준비를 해야 한다. 학교 수업은 많은 시간을 강의 하는 것이 아닌데 준비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 수업장면 마을학교에서 수업하는 모습 |
ⓒ 이상자 |
이 일은 굳이 안 해도 되지만 어르신 학생들을 위하여 사서 하는 수고다. 내가 보람 있다고 생각해 첫 번째로 꼽는 일이기 때문이다. 숙제를 내려면 자료를 찾아 컴퓨터로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검사도 도장만 꾹 찍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숙제한 것을 수거해 집으로 가져와 한 사람 한 사람 답글을 쓰고, 맞춤법을 수정해야 한다. 시간을 제법 투자하는 일이다.
남편은 교재로 수업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일을 벌여 사서 고생이냐고 말한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어르신들이 간절하게 배우고 싶은 게 한글 공부다. 재미도 있으면서 머리에 쏙쏙 들어가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이 방법을 택한 것이다. 어르신 학생도 처음엔 머리 쓰는 일이라 어렵다고 못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최고로 재미있다고 계속 하자 하신다. 비대면 수업 때 궁여지책으로 하던 수업이 이제는 학생들에게 익숙해지고 재미까지 더해진 것이다.
비대면 수업을 하려면 줌으로 해야 하는데, 팔십이 훌쩍 넘은 나이로 한글을 습득하는 분들이라 줌 수업은 언감생심이다. 스마트 폰도, 컴퓨터도 못 하니 비대면 수업을 어찌할까 궁리하다 시작한 일이었다. 지금은 대면 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은 수업대로 하고 비대면 수업 때 하던 과제를 하자니 내가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시간 투자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어르신 학생들이 눈에 띄게 학습 능력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기꺼이 하는 것이다. 재미가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본인들이 쓰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쓰는 언어를 맞춤법까지 알게 되고, 게다가 선생의 답글이 있어 재미가 쏠쏠한 것이리라.
▲ 꽃꽂이 하려고 도안에 색칠해 보면서 그림을 알게 한다. 그려 본 후 글 짓기를 하면서 한글을 익히게 하기 |
ⓒ 최기예, 이상자 |
갈색 긴 머리 소녀가 파란색 리본 핀을 꽂고, 초록색 블라우스, 목엔 보라색 스카프, 소매 단은 빨간색이다. 거기에 노랑, 분홍, 보라, 파랑, 초록색 세로 줄 바지, 바지 단 옆에 분홍색 리본이 매어져 있다. 이렇게 예쁘게 차려 입은 소녀가 꽃밭에서 꽃을 꺾고 있는 그림이다. 보라색 꽃밭에 노랑 나비 한 마리까지 나풀댄다. 와! 일곱 문장이나 된다. 내 눈동자가 새알사탕만큼 커졌다. 여든아홉 글 솜씨, 재치가 반짝인다.
"근디 이게 웄지 된 일이여, 알송달송 허구먼. 머리루 보면 아가씨, 아래로 보면 도련님. 그려, 안 그려. 이 할머니는 모루거구면. 꽃을 한 아름 휴여 잡는 걸보면 아가씨 갔찌? 아이구, 촌되기 할머니라 물으겄써."
최OO 학생이 보기엔 색을 고르고 골라 칠한다고 했는데 그려 놓고 보니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아 보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배꼽을 부여잡고 한참을 웃었다. 그림에 색을 곱게 칠해 놓고 들여다보며 글을 어떻게 쓸까 고민했을 것을 상상하니 대견(어르신에게 이런 표현 해도 되는지 모르지만)하다. 글짓기를 잘했으니,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10cm 높이로 방방 뛰어야지.
생각한 것, 말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쓰면 된다는 말을 머리에 꾹꾹 눌러 저장한 것도 칭찬해야지. 생생하게 표현한 능력 또한 칭찬 거리다. 맞춤법! 그건 틀려야 정상이다. 칠판에 붙여 놓고 감상하며 맞춤법 수정할 때 김OO 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선생님 그거 쓸려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데 시간 꽤 오래 걸려 쓴 거유. 쓸 때 받침도 이렇게 썼다가 지우고, 저렇게 썼다가 지우고 고쳐서 써온 거유. 얼마나 머리 썼는지 물류."
▲ 꽃꽂이 하려고 마을학교 숙제다.색칠해서 치매 예방도 하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며 한글을 익히기 |
ⓒ 김응숙, 이상자 |
옅은 갈색 머리에 빨강 리본 핀, 빨강 블라우스에 소매 단은 노란색, 빨강 스카프를 리본처럼 맸다. 바지는 초록 바지, 바지 옆에 노란색 리본 장식, 노란 양말에 신발은 보라색이다. 노랑과 빨강 꽃이 핀 꽃밭에서 소녀는 꽃을 꺾고 있다. 노랑 나비 한 마리도 날아와 어떤 꽃에 앉을까 고민 중인 그림이다. 글짓기는 세 문장이다.
"아기는 혼자서 꽃고지를 하나 봐요. '언니 있으면 함께 하려무나.' 할머니가 도와주면 좋은데 너무 멀어서 못 도와준다."
'꽂이'라는 두 글자가 틀렸으니, 집에 가서 또 얼마나 속상해 할지 눈에 선하다. 글 배운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김OO 학생은 이 세 문장을 쓰기 위해 몇 번씩 생각하고 다른 종이에 써 놓고, 고치기를 여러 번 하는 학생이다. 나름 정성과 시간을 투자해 공들여 쓰고, 다듬은 문장인 것이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맞춤법 틀린 것에 대하여 특별하게 속을 끓이는 분이다. 칠판에 붙여 놓고 수정할 때 두 글자만 틀렸다고 칭찬을 듬뿍 해야겠다. 그래도 속상해 할 건 불 보듯 뻔하지만.
같은 도안인데 색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 다르다. 그림과 글을 보면 학생의 성격이 어떤지, 가치관이 어떤지, 좋아하는 색은 무엇인지 다 보인다. 정갈하고, 의리 있고, 맺고 끊음이 분명한 학생이다. 일찍 남편 여의고 혼자서 오남매를 키워내신 훌륭한 학생이다.
언젠가 내 글을 보고 모 방송국에서 이 학생들을 취재해서 방송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 그 중에 특별한 사연이 있는 분을 찾는다고 했다. 이분들은 한 분 한 분 특별한 사연이 없는 분이 없다. 물론 모든 사람에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 학생들은 학교에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살면서 겪은 고통과 설움의 무게를 배운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한다. 아니 가늠을 못 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수업 때 어느 학생이 한 말이 있다.
"선생님, 우리는 칠판에 누가 와서 '너 여기서 오늘 죽일 거다.' 이렇게 써 놓아도 내가 죽는 건지 물러유. 글을 물르니께, 죽인다구 써놓아도 모르고 팔십 평생 살아왔슈."
그 말에 난 쇠 뭉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 삶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으랴.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글 몰라 배우겠다는 어르신들을 위해 그분들이 원하면 글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문해 수업!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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