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 친구 말에 영화 출연" 예술가 박지민의 결심
[이선필 기자]
▲ 영화 <리턴 투 서울>에서 프레디를 연기한 배우 박지민. |
ⓒ 엣나인필름 |
초등학교 2학년 때 한국에서 프랑스로 터전을 옮긴 뒤 줄곧 미술 작가로 살아왔다. 첫 영화 <리턴 투 서울> 출연으로 75회 칸영화제에 초청됐고, 여러 영화제를 다니게 됐지만 여전히 '배우'로 불리는 게 낯설다고 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지난 4월 말 만난 박지민은 무엇보다 고향인 한국에서 관객과 만나는 사실에 "묘하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영화는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가 항공편 문제로 서울로 향하게 된 프레디의 여정을 다룬다. 프랑스 입양인으로 생모와 생부의 소식을 전혀 몰랐지만, 군산에 대가족을 꾸린 생부를 만나게 되며 어떤 변화를 맞이하는 모습이 세밀하게 담겨 있다. 실제 입양인은 아니지만 이민자 2세로서 박지민은 등장인물 감정에 충분히 공감했고, 자신의 경험을 십분 녹여가며 인물을 만들어 갔다.
부유하는 삶
"프랑스와 유럽 등지에서 설치 미술과 회화, 조소 등을 해오다가 영화를 찍는데 묘한 감정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한국이 이 영화의 주제 중 하나라 기대감도 크고, 살짝 두려운 것도 있다. 일단 감독(데이비 추)이 한국 사람이 아니잖나. 한국에서 태어나 사시는 분들 입장에서 왜곡된 면이 있을까 봐 그렇다. 그리고 입양이라는 게 쉬운 소재가 아니기에 제 마음이 그리 가볍지는 않다."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이 영화에 출연할 강한 명분이 있었다. 박지민의 친한 지인이 데이비 추 감독과 만남을 주선했고, 이후 카메라 테스트를 하게 됐다. 당시 박지민은 "카메라 테스트를 하면서도 굳이 왜라는 생각이 컸다"며 "본업에 에너지를 쏟고 있기도 했고, 한편으론 전문 연기자가 아닌데 내가 뭐라고 카메라 테스트를 받나 하는 생각이기도 했다"고 당시 기억을 전했다. 그때 입양인이기도 한 지인이 "입양인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 지인과 오래전부터 얘길 많이 나눴다. 입양인의 감정도 제가 나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한국 부모 입장에선 더 좋은 환경으로 아이를 보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입양되고서도 매우 힘든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많다. 파리가 아닌 작은 시골이나 소도시에선 아시안이 거의 없거든. 인종차별이 일상이다. 이 영화 또한 해피엔딩이 아니잖나. 그간 나온 다큐멘터리나 자료에선 생부모나 양부모 관점이 많이 나왔다면, 이 영화인 실제 입양인이 처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프랑스, 벨기에, 독일, 한국 등 여러나라가 참여했지만 메인이 프랑스다. 프랑스 영화를 보면 아시아계 배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영화 종주국이라지만 아시안이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라 영화에 아시안이 주연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게 자랑스럽다. 정말 프랑스도 인종차별이 심하거든."
▲ 영화 <리턴 투 서울> 관련 이미지. |
ⓒ 엣나인필름 |
방황하면서 의미를 찾다
박지민은 자신이 모든 입양인을 대표할 수 없다고 가정하면서도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화에서 생부(오광록)에게 강한 거부감을 보이다가도 영화 말미 이해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도 그런 방황 덕일 것이다.
"영화에서 프레디 아버지 또한 나름 노력한 결과라고 믿는다. 영화 초반엔 정말 강압적이잖나. 다짜고짜 한국에 살라고 하고, 한국 남자와 결혼하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다 나름 프레디를 이해하려 노력했고, 프레디 또한 그런 아버지를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 같다. 다만 모든 게 영원하지 않듯 그 마음이 끝까지 유지되진 않았을 것 같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다가가며 사는 게 인생 아닐까.
제 생각이지만 프레디는 자신의 정체성을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저도 그렇거든. 다만 이해해내기 위해 긴 여정을 하고 있는 셈이지. 방황하는 영혼이 나쁜 게 아니다. 답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정체성이 잘만 섞이면 독창적일 수 있다고 본다. 프랑스에서 태어나도 자기 살 곳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도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분이 많잖나. 이 영화가 입양을 소재로 하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통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결론을 우리가 알 순 없지만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고 흥미로우니까."
영화를 찍으며 박지민은 운명론자가 됐다고 고백했다. 박지민을 설득했던 지인은 처음부터 그가 영화에 출연할 것임을 예감했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은 박지민을 알기 전부터 이미 데이비 추 감독과 아는 사이였고, 영화 출연에 서로가 놀랐다고 한다. 영화 속 프레디가 댄스 음악에 격한 춤을 추듯 평소 박지민도 춤을 즐긴다. 테크노 음악에 맞춰 혼자 춤추면서 그는 많은 걸 해소한다고 말했다.
미술 작가 어머니, 소설가 아버지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적 영향을 받은 박지민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감독과 배우들의 작품을 보며 영감을 얻어왔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크래쉬>, 이창동 감독의 <시>를 언급하며 그는 "다 가상임에도 인간의 감정을 그렇게까지 구현하는 걸 매번 감탄하며 봐 왔다"고 말했다. 칸영화제 이후 여러 작품 제안이 왔고, 거절할 만큼 배우의 길은 자신과 분리됐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서야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신 연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즐거움, 행복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연기할 때 느꼈던 쾌감을 억누르고 있었더라. 내가 뭐라고 감히 나대지 하는 생각이 컸었거든. 영화 한 편 하니 1년이 훅 가는데 시간이 지나니 뭔가 그립더라. 이젠 조심스럽게 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가로서는 보람도 크지만 많이 힘들다. 꾸준히 작업해야 하니까. 그리고 프랑스 파리엔 좋은 예술가들이 엄청 많다. 그들과 경쟁이면서 스스로와 계속 경쟁해야 한다. 마치 물 위에 떠있는 백조와 같다."
▲ "인생의 결론을 우리가 알 순 없어도,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고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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