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가족 뛰어들어 월수 2천만원... 우리가 버는 돈은 특별합니다 [나의 막노동 일지]

나재필 2023. 5. 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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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막노동 일지 ⑪]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절제하는 삶... 막일꾼은 결코 헤플 수 없다

인생 막장, 마지막 정거장, 밑바닥 인생, 완행열차...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폄훼와 하대, 조롱, 멸시당하며 눈물 젖은 밥벌이에 뛰어든 일용잡부를 흔히들 '노가다'(일본어, dokata, 土方)라 칭한다. 노가다 꾼은 씹다 씹다 단물이 쏙 빠진 껌처럼 끝내 버려지는 비운의 삼인칭이다. 27년 동안 한 기자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노동으로 지난해 9월 노가다를 시작했다. 몇 차례에 걸쳐 직접 겪은 땀의 현장을 전한다. <기자말>

[나재필 기자]

 흔히들 막일하는 사람들이 돈을 헤프게 쓴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들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절제한다.
ⓒ envato
 
흔히들 막일하는 사람들이 돈을 헤프게 쓴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들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절제한다. 내가 일하는 이곳, 반도체 공사현장 노동자들은 특히 그러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오해를 받는 일반 공사 현장 분위기와는 다르다.

비나 눈이 온다고 일을 공치지 않으니 꾸준히만 일하면 돈을 모을 수 있는 구조다. 더욱이 술 먹을 시간조차 많지 않다. 퇴근하면 삼삼오오 모여 선술집으로 달려가지도 않는다. 다음날 출근 게이트에서 음주(숙취) 단속을 하기 때문에 폭음할 수가 없다. 밥도 3000~3500원짜리 식권으로 해결하니 굳이 밥값 가지고 머리 굴릴 이유도 없다. 사실, 돈 쓸 일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돈 쓸 시간이 없다.

이곳 반도체 공사현장은 돈 쓰는 방법보다 돈 버는 방법이 특별한 곳이다. 흔치 않지만 2대가 모인 막일 가족도 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이 같은 현장서 일하기도 한다. 다른 업체 소속이기에 부딪힐 일이 없고, 각자 맡은 일을 하고 헤쳤다 모인다. 출퇴근을 함께하고 점심도 만나서 먹는다. 월급을 받으면 목돈이 된다. 보통 남자는 조공, 여자는 장비유도원을 맡는다.

가족이 총출동해 열심히 일하면 한 달에 1600만~2000만 원을 번다. 자식들에게 막일 시킨다는 시선도 있고, 장기적인 직업을 갖는 게 좋지 않느냐는 말도 있지만 의기투합한 사례다. 짧고 굵게 벌어서 가족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다.

팀끼리 뭉쳐서 전국 일터를 돌아다니는 부류도 있다. 10~20여 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 이쪽 현장 일이 끝나면 타 지역 현장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각자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돈벌이를 위해 결성된 끈끈한 이동형 연대다. 일명 '물량팀'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공기(工期)를 맞춰 속전속결로 일을 끝내고 목돈을 받는다. 완전한 특공대다. 다만 일을 빨리하려다 보니 안전상의 문제와 몸 고장이 잦다.

돈은 써야 들어온다더니... 30년간 속았다

비교적 돈을 쏠쏠하게 버는 반도체 공사현장 사람들은 그나마 먹는 것에 많이 지출하는 편이라 할 수 있다. 고급 요리는 아니어도 고기류를 자주 찾는다.

한 달에 두세 번 팀장이 쏘는 회식은 잔칫날이다. 애인 등 파트너를 동반해도 된다. 보통 삼겹살이나 삼계탕, 오리를 먹는데 무한리필 집을 애용한다. 머릿수로 내면 양껏 먹으니 좋다. 한 팀원의 경우 삼겹살, 목살을 10인분 먹는 것도 봤다. 특별한 때 무한리필 참치집도 찾는다. '내돈내산'이 아니니 팀원들은 간만에 공짜 식탐을 즐긴다.
     
회식이 아닐 때는 남에게 다소 인색한 편인 듯하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난 동료들과 친해지기 위해 일대일 술자리를 가졌었다. 술 한잔 해야 금세 친해지고, 함께 일할 때도 즐거울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술자리가 곧 친교는 아니었다. 그냥 그때뿐일 때가 많았다. 그 취기는 휘발성이 강했다. 더구나 지독한 '자린고비'를 만나면 그날 일당이 헛수고로 증발했다. 그래도 어렵게 번 돈이라는 걸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원망하진 않았다. 노동으로 번 돈이라고 해서 구겨진 것이 아니고, 절대 가볍지도 않다. 주름과 맞바꾼 시간의 마모이고, 지병들과 맞바꾼 소중한 대가다.

올해 서른이 된 팀원과는 '소삼(소주+삼겹살)'을 가끔 한다. 이 친구는 아들 뻘인데도 술값을 번갈아 가며 낸다. 아들 같아서 내가 많이 샀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자연스럽게 나눠 낸다. 그도 신세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고 했다. 술을 마시며 그의 속 얘기도 많이 들었다. 돈을 모아서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는 게 꿈이란다. 생각도 젊고 목표도 젊다.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수성가하고 싶단 얘기를 들었을 땐 장하기까지 했다.
 
 하루의 고단함을 푸는데 소주와 삼겹살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 나재필
 
막노동을 하기 전 기자 시절에도 술값이 많이 나갔다. 선배가 사야 한다는 불문율이 암묵적으로 작동했고, 내가 사야 맘이 편한 이유도 있어 지갑 여는 일이 잦았다. 나는 재테크에 젬병인 탓에 크게 벌지 못했고, 작게라도 모으지 못했다. 그런데 쓰는 건 도사다. 신세 지는 걸 싫어하고, 자존심이 센 편이어서 얻어먹는 걸 싫어한다. 한번 공짜로 먹었으면 반드시 사고야 만다.

그런데 얌체와 자린고비들이 생각 외로 바글거렸다. 열 번을 사도 한 번을 안 사는 종족이 있었고, '당연히' 내가 사는 걸로 아는 철면피도 있었다. 하지만 대인관계를 위해 늘 아낌없이 쐈다. '돈은 써야 들어온다'는 어느 개똥철학을 굳게 믿었다.

하지만 30년간 속았다. 내 계산법이 틀렸다. 돈을 쓰면 그냥 나가는 것이지, 나간 만큼 복덩이가 굴러들어 오진 않았다. 부끄러운 사실은 퇴직 무렵에야 더치페이를 선언했다는 거다. 차라리 계속 샀으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듣는데 말이다.

물론 자린고비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선후배를 제외하고 동기나 동년배들은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몰래 카드를 미리 긁거나 재빠르게 뛰어가서 계산하는 쪽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서로 내려고 가벼운 실랑이까지 벌이곤 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건 늘 얻어먹던 '그분'들 역시 돈을 모으진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주변에선 이런 우스개가 떠돌았다. '기자와 경찰, 거지가 함께 밥을 먹는데 서로 계산을 안 하려고 버티자, 거지가 냈다'던 이야기다. 얼마나 공짜 밥, 공술을 좋아했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하긴 기자들이 단체장이나 공무원, 기업인과 술밥을 먹고 자신들이 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긴 하다.

노동자들이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44평 맨션에 산다. 방 4개, 화장실이 2개, 앞뒤 베란다가 있으니 제법 폼이 난다. 하지만 대출이 끼어 있어 안방과 부엌은 어느 은행 쪽에 저당 잡힌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남는 공간은 어디인가. 뭐 빼고 뭐 주고 나면 남는 건 빚뿐이다. 그래도 비와 바람을 피할 집이 있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돈에는 필시 '발'이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벌면 나갈 일이 생기고, 모으려고 하면 목돈이 뭉텅 나간다. 마이너스로 시작한 사람이 통장의 잔고를 플러스로 만들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월급이 들어오는 순간 카드사가 먼저 빼가고, 은행권이 달려든다. 정작 통장을 확인할 땐 채권자들이 치고 빠진 얼룩만 남는다. 이제 공과금과 약간의 보험료, 통신료를 정산하고 나면 한숨만 남는다. 이게 노동자들과 소시민들의 비애다.

모든 노동자들이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 나에게 밥을 안 사줘도 좋고, 술을 안 받아줘도 괜찮다. 그냥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어떻게든 이 현장에서 살아남아 따뜻한 밥을 먹고, 뜨끈한 온돌방에서 여유를 갖기를 바란다.

먹고 싶은 걸 참고, 입고 싶은 걸 참고, 가고 싶은 여행을 참지 않았으면 한다. 최소한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를 잘살아 가길 소망한다. 현재의 삶이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더 나은 미래,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땀 흘리는 모든 노동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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