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짬뽕 같은 사람”…클리셰 버리고 입양인 현실 담은 ‘리턴 투 서울’
영화가 시작되면 두 여성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배경은 서울 어딘가의 게스트하우스. 비슷한 이목구비를 지닌 동양인들이지만, 둘 사이엔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인 공기가 느껴진다.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 날이 또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이정화가 부른 1967년 노래 ‘꽃잎’의 구슬픈 가락만 메아리치듯 공간을 메운다.
첫 장면부터 범상치 않은 영화 ‘리턴 투 서울’(3일 개봉)은 배경도 한국, 출연진도 대부분 한국 배우들에, 배경음악으로 한국의 옛 가요가 흐르지만, 한국 영화라 규정하기 힘든 이국적인 결을 지녔다. 영화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부모에게 입양돼 20대가 된 여성 프레디(박지민)가 우연히 서울에 온 뒤 펼쳐지는 여정을 쫓아간다.
거칠게 요약하면 해외 입양아가 고향에 돌아오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서사에서 흔히 예상되는 친부모와의 극적인 재회, 감동적인 화해 등의 공식을 이 작품은 따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규정 지으려는 여러 수식어 사이에서 방황하고 저항하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여성의 치열한 분투에 초점을 맞춘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 받았다.
캄보디아계 프랑스인 데이비 추 감독이 한국인 입양아 친구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만큼, ‘리턴 투 서울’은 입양인들의 현실을 단순화하는 대신, 소용돌이치듯 복잡한 내면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프레디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부터 통념을 벗어난다. 입양인이라면 으레 고국을 그리워할 것 같지만, 프레디는 친부모를 찾겠다는 굳은 의지가 아닌, 그저 일본에 가려던 비행기가 기상악화로 취소되자 가장 가까운 대안으로 한국행을 택했을 뿐이다. 부모를 찾으려는 계획도 딱히 없었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구들의 권유로 입양기관을 찾게 되고, 생각 외로 쉽게 친부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친부와 만나면 끝일 것 같던 프레디의 여정은 오히려 그 재회에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를 프랑스인으로만 인식하고 살아온 프레디는 “한국에서 함께 살자”며 매달리는 아버지가 불편하다. 끝내 매몰차게 한국을 떠나지만, 이후 2년, 5년 간격을 두고 총 세 번에 걸쳐 서울에 돌아온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을 건너뛸 때마다 프레디는 외모와 성격은 물론 한국을 향한 태도도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 영감을 준 친구 뿐 아니라 많은 입양인들을 인터뷰해 시나리오를 썼다는 데이비 추 감독은 주인공의 여정을 이렇게 긴 시간에 걸쳐 펼쳐낸 이유에 대해 “입양인들에게 친부모와의 만남은 상처를 치유해주기보다 그때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설명한다. 프레디에게 그 긴 여정은 “관객이 기대하는 것과 정반대의 선택을 하며 자신을 재창조하고, 다시 정의하며 스스로 진화해가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와 같은 질문은 비단 입양인 뿐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 천착하게 되는 고민이라는 점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프레디의 행보도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가게 된다.
이런 주제는 캄보디아계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데이비 추 감독 자신의 경험과도 맞닿아있다. 그는 최근 언론시사회에서 “저 자신도 이민 2세이기 때문에 25살에 처음 캄보디아에 가봤다”며 “부모님의 고향이면서도 내게 미지의 나라인 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나와 닮았지만, 너무나 다른 삶과 문화를 가진 캄보디아인들의 얼굴에서 강한 타자성을 느꼈다”고 돌이켰다. 첫 장면과 같이 얼굴 클로즈업 장면이 많은 건 바로 이런 기억에서 비롯된 연출이다.
이방인의 눈에 담긴 한국 곳곳의 풍경들, 그 속을 무아지경으로 누비는 프레디의 댄스 신은 ‘리턴 투 서울’을 한층 낯설면서도 매력적인 영화로 만든다. 홍대의 LP바, 용산의 게스트하우스 등 네온사인이 빛나는 서울의 거리부터 친부의 군산 시골집과 같은 구수한 공간까지, 친근한 풍경들이 모두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온다.
데이비 추 감독은 특히 3막으로 구성된 영화의 파트마다 다른 색감과 톤을 취해 시간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프레디와 한국의 관계를 표현했다. 서울을 처음 마주하는 1막에서는 선명하고 강렬한 색감으로 출발해 갈수록 톤을 누그러뜨려 점차 편안해지는 프레디의 심리를 나타내는 식이다.
어디서나 자유롭게 춤을 추는 프레디의 모습은 “지속적으로 프레임(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그의 속성을 상징한다. 감독은 “프레디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종류의 규정을 거절하는 사람”이라며 “그가 추는 춤은 단순한 춤이라기보다 프레임을 벗어나려는, 일종의 카메라와의 싸움과도 같다”고 비유했다.
댄스 신을 비롯한 모든 장면에서 분위기를 장악하는 배우 박지민은 연기 경험이 없었던 한국계 프랑스인 아티스트다. 8살 때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 정착한 그는 친구 소개로 만난 데이비 추 감독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나선 첫 도전으로 “데뷔작 임에도 날 것처럼 펄떡인다”(뉴욕매거진) 등의 찬사를 받고 있다.
“나는 한국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짬뽕 같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한 그는 “나는 전문 연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본능과 상상력에 맡겼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힘들었던 기억과 감정을 사용해 나만의 색깔로 (인물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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