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보면 1년전 마약도 안다"… 대검 법화학실 정밀감정 참관기
2021년 2만6800점 감정 역대 최대… 마약검사 특허 20건 출원
대한민국 전체가 어느새 '마약 천국'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검찰이 전국 각지에서 수사하는 마약 사건의 '증거물들'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1층 법화학실로 모인다. 검찰이 유일하게 운영하는 마약 감정 시설이다.
기자는 마약 검사 체험을 해보기 위해 지난달 26일 머리카락 100올을 뽑아 들고 대검 법화학실을 찾았다.
대검 법화학실에는 여러 가닥의 투명 호스나 선으로 연결된 대형 검사장비 수십여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흰 가운 차림의 법화학실 연구관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검사 장비를 작동하고 있었다. 의자는 거의 없었고 전부 서서 여러 장비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검사를 진행했다.
대마 검사에는 머리카락 150올, 필로폰은 50~70올이 필요하다고 한다. 기자는 미용실에서 미리 잘라서 비닐봉지에 넣어 간 머리카락 100올가량을 이곳의 총책임자인 김진영 대검 법화학실장에게 건넸다.
"자신 있으세요? 검사하면 1년 전에 투약한 극미량의 마약도 검출됩니다." 김 실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기자는 마약을 한 적이 없지만 이 말을 듣자 괜히 움찔했다. 김 실장이 다시 웃으면서 "실제 마약 검사 의뢰가 들어온 감정물로 진행합시다. 기자님이 마약을 투약했을까 걱정하는 게 아니라, 감정 요청이 들어온 의뢰서가 너무 많아서 시간 여유가 없습니다"고 말했다.
기자의 머리카락으로 직접 체험할 수 없게 돼 아쉬웠지만, 수사 방해를 피하기 위해 참관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대검 법화학실에는 하루 평균 14건 내외의 의뢰가 들어온다. 여기에 따라오는 감정물은 머리카락, 소변, 마약류 제품 등 일평균 26개 정도. 대검 법화학실은 감정물에 포함된 마약 성분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찾아내는데, 매일 총 150여점의 마약 성분을 찾아내서 감정 결과를 일선 검찰에 통보한다고 김 실장은 설명했다. 대검 법화학실은 매년 2만점 내외의 마약 감정을 처리했는데, 지난 수년간 감정 건수가 계속 늘어서 2021년에는 2만6800여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마약 검사의 전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일단 전국 검찰청에서 인편 또는 택배로 보내온 감정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분류대 위에는 흰 봉투에 든 머리카락이 놓여 있었고, 소변은 투명한 용기에 밀봉된 채 냉장고에 보관돼 있었다.
머리카락은 봉투마다 100여 가닥이었고 비슷한 길이로 맞춰져 있었다. 규격에 맞춘 듯 길이와 양이 비슷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이렇게 많은 양의 머리카락이 필요한가요?"(기자) "최근 투약한 마약부터 최대 1년 이내 투약한 마약까지 확인이 필요하고, 여러 종류의 마약류 제품의 투약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시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발은 보통 한 달에 1㎝ 성장하기 때문에 1년 이상 된 12㎝ 이상의 모발은 감정하지 않습니다."(김진영 실장)
연구관이 봉투에 담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검사실로 들어갔다. 검사실에는 화학약품이 담긴 병과 검사 도구가 즐비했다. 검사실을 둘러보고 있는데 연구관이 갑자기 마약 투약이 의심되는 피의자의 모발을 물에 세척하기 시작했다. '세척하면 마약 성분이 씻겨나가지 않나?"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다른 액체로 머리카락을 추가로 씻었다.
"세척을 하면 마약 성분이 사라지지 않느냐"고 모발 감정 담당 서승일 연구관에게 물었다. 그는 "아닙니다. 씻어도 마약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모발 겉에 묻었을 수도 있는 다른 성분을 제거해서 오인 감정 요인을 없애기 위해 물과 증류수, 아세톤 등을 이용해 여러 차례 세척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서 연구관은 세척을 마친 머리카락을 건조한 뒤 무게를 측정하고, 용기에 쇠구슬과 함께 담아 가루가 될 때까지 분쇄했다. 이후 메탄올 등을 넣어 화학 처리를 하고 초음파 추출 작업을 마친 뒤 마지막으로 법화학실이 자랑하는 고감도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에 넣었다.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는 마약 성분마다 모두 다른 질량스펙트럼을 활용한 감정 장비로, 한 대당 1억원~8억원의 몸값을 자랑한다. 대검 법화학실은 10여대의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를 보유하고 있다.
모발 검사 과정을 둘러보고 소변 검사를 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변 검사는 피검사자의 소변에서 침전물을 가라앉힌 뒤 맑은 액만 걸러내 2㎖ 정도의 소량을 추출,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를 이용해 마약 성분을 검출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마약 감정 자체는 4~5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의뢰가 밀려있어서 결과 통보까지는 2~3주가량 걸린다. 다만 긴급 감정 요청이 있는 경우에는 먼저 감정을 진행한다. 기자가 참관했던 머리카락은 필로폰 양성 반응이, 소변은 펜타닐 등 여러 종류의 마약 성분 양성 반응이 나왔다.
최근 마약 수사 결과를 보면, 마약사범들은 보통 4~5가지의 마약을 동시에 투약한다. 이 때문에 시료를 여러 개로 나눠 검사를 진행해야 해 마약 감정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대검 법화학실은 현재 300여종 이상의 마약류 성분을 검출하는 시설을 갖췄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신종 마약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유엔마약위원회(UNODC) 분류 기준 신종 마약은 1200여종이다. 대검 법화학실은 이런 마약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신종 마약 분석법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대검 법화학실은 지난달 기준 논문 80건을 학술지에 게재했고, 20건의 마약 검사 특허 등록과 1건의 특허 출원을 마쳤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 달에 150만원 줄게"…딸뻘 편의점 알바에 치근덕댄 중년남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돈 많아도 한남동 안살아"…연예인만 100명 산다는 김구라 신혼집 어디? - 아시아경제
- "일부러 저러는 건가"…짧은 치마 입고 택시 타더니 벌러덩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10년간 손 안 씻어", "세균 존재 안해"…美 국방 내정자 과거 발언 - 아시아경제
- "무료나눔 옷장 가져간다던 커플, 다 부수고 주차장에 버리고 가" - 아시아경제
- "핸들 작고 승차감 별로"…지드래곤 탄 트럭에 안정환 부인 솔직리뷰 - 아시아경제
- 진정시키려고 뺨을 때려?…8살 태권소녀 때린 아버지 '뭇매'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