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중요한 것은 간호법안이 아니라 간호정책이다
간호법안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70년 의료역사에서 보건의료계가 두 쪽이 나 2년이나 싸우는 건 처음이다. 사생결단이다. 정치권도 난리다. 대화도 협의도 없다. 도대체 간호법안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나라 전체가 난리인가?
간호법안은 간호사의 면허취득, 업무 범위와 처우개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간호사의 면허취득과 업무 범위는 현행 의료법의 내용과 동일하다. 의료법에 있는 간호사에 관한 내용만 떼어내 분리한 것이다. 간호법 조문 31개 중 24개가 의료법과 동일하다. 처우개선에 관한 사항은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있는 내용과 유사하다. 이마저도 선언적 내용이다. 정부와 의료기관의 장이 간호사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라는 수준이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다. 포장 상자를 바꾸었는데, 내용물은 똑같다. 포장 상자를 바꾸기 위해 이토록 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국민 입장에선 영문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포장 상자를 바꾼다고 간호사의 근무환경은 좋아질까? 안타깝지만 간호법이 제정된다고 간호사의 근무환경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간호사의 근무환경 개선이나 지위 향상은 추상적인 문구가 기재된 법률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포장 상자 바꾸겠다고 온 나라가 이처럼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일이 아니다.
간호사들이 간호법 제정을 원하는 이유를 들어보자. 김민석 의원 등 49명의 의원이 발의한 간호법안의 제안 이유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숙련된 간호사 등 인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근무환경의 개선과 지역 간 인력 수급 불균형의 해소를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간호정책의 시행이 필요하다. 맞는 말이다. 간호사는 힘든 직업이다. 직업의 특성상 3교대를 해야 한다. 근무일정도 빈번하게 바뀐다. 다음 달에 내가 언제 일을 하고, 언제 쉴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유를 물어보면, 간호사 인력이 부족해서란다. 누군가 아파서 쉬고, 어린 자녀를 돌보기 위해 연가를 사용할 때 대체할 인력이 없어서다. 간호사 1명이 18명의 환자를 간호한다. 간호사 면허가 ‘7년 면허(평균 근속기간 7년 5개월)’로 불린다. 열악해도 너무 열악하다. 이러니 간호서비스의 질이 좋아질 수가 없다. 병원에 입원해 본 국민들은 안다. 환자를 돌보는 대부분의 인력이 간호사인 것을. 간호사가 힘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간호사의 근무환경 개선은 절실한 문제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인력도 늘려야 한다. 이는 환자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간호법의 제안 취지는 지극히 타당하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간호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법률에는 세부 내용이 담기지 않는다. 결국은 정부가 정책으로 가다듬을 일이다. 간호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기 전 정부는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간호사 1명이 간호하는 환자의 수를 16명에서 5명으로 줄이는 목표를 정하고 단계적으로 이행하겠다고 한다. 대체인력 배치를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원하여 병원이 다양한 근무형태를 만들고 간호사 개인의 형편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한 다음 날 대한간호협회는 정부의 이번 대책이 체계적이고 종합적이며, 진일보한 정책이라며 칭찬하는 성명서를 냈다. 그리고 정부가 철저하게 이행하고 제대로 된 투자를 해줄 것을 함께 요청하였다. 정부는 간호협회의 요구대로 국가가 간호사의 처우를 책임지고 개선하겠다는 각오로 대책을 차질 없이 이행해야 한다. 대책이 부족하다면, 현장의 의견을 끊임없이 듣고 보완해야 한다. 현장에서 간호사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이어야 제대로 된 정책이다.
이게 정답이다. 간호법안을 두고 싸우지 말자. 문제에 대한 진단은 정확한데, 처방이 틀렸다.
백대용 한국청년입법정책학회 이사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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