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방송서 ‘자해’ 미화…청소년, 그대로 따라했다

민태원 2023. 5. 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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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음악경연 프로그램 같은 미디어 속 '자해(自害)' 콘텐츠가 청소년에게 자해를 쉽게 여기도록 해 실제 행동으로 옮기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해 콘텐츠가 방영된 시점은 2018년 3월 말쯤으로, 당시 청소년을 주 시청층으로 하는 음악경연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의 자해를 다룬 노래와 실제 자해 상처 등이 여과없이 노출되는 등 자해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내용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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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경연 프로서 출연자, 자해 다룬 노래·신체 상처 여과없이 노출
이후 자해 청소년 응급실 방문 급증…10~14세 3.4배 증가 ‘전염 입증’
해당 랩 경연 방송 캡처

TV 음악경연 프로그램 같은 미디어 속 ‘자해(自害)’ 콘텐츠가 청소년에게 자해를 쉽게 여기도록 해 실제 행동으로 옮기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능이나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자해나 극단적 시도 장면 등 유해 콘텐츠가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쉽게 전염됨을 시사한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이태엽,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팀은 2018년 3월 청소년 대상 케이블 음악방송 프로그램(랩 경연)에서 자해를 다룬 콘텐츠가 방영된 후 청소년 사이에서 자해로 인한 응급실 방문이 유의미하게 늘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국가응급환자 진료 정보망을 이용해 2015년 1월~2018년 12월 응급실 방문 환자 가운데 자해(자살 시도 및 비자살적 자해)로 인한 환자 11만5647명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했다.

자해 콘텐츠가 방영된 시점은 2018년 3월 말쯤으로, 당시 청소년을 주 시청층으로 하는 음악경연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의 자해를 다룬 노래와 실제 자해 상처 등이 여과없이 노출되는 등 자해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내용이 소개됐다. 방송 후 해당 노래는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청소년들 사이에 자해 상처를 SNS에 잇따라 올리는 일이 벌어졌다.

연구팀이 월평균 자해로 인한 응급실 방문자 수 분석 결과, 자해 콘텐츠가 방영되기 전(2018년 2~3월)과 방영 후(2018년 4~12월)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10~14세의 경우 월별 인구 10만 명당 0.9명에서 3.1명으로 3.4배 늘었으며 15~19세는 5.7명에서 10.8명로 1.89배, 20~24세는 7.3명에서 11.0명으로 1.5배 증가했다. 15~19세 여성과 20~24세 남성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연도별로도 차이가 확연했다. 연간 자해로 인한 응급실 방문자 수는 10~14세의 경우 2015년 인구 10만 명당 8.1명에서 2018년 31.1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15~19세는 63.5명에서 119.0명으로, 20~24세는 75.7명에서 127.1명으로 늘었다. 자해 콘텐츠가 방영됐던 2018년들어 자해 시도가 뚜렷이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 청소년의 자해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자해로 인해 응급실을 방문한 10~14세 청소년 가운데 여성은 2015년 46.6%를 차지했던 데 비해 자해 콘텐츠가 방영된 2018년에는 76.7%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15~19세에서는 여성 비율이 55.8%에서 67.8%로, 20~24세는 55.7%에서 61.9%로 늘었다.

이번 연구는 국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디어 속 자해 콘텐츠가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을 밝힌 첫 연구인 점에서 의의가 크다.

김효원 교수는 3일 “미디어 속 자해 콘텐츠는 아이들에게 ‘자해는 해도 되는 것’ 혹은 ‘자해는 멋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심리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써 자해를 다수 청소년에게 알린 효과가 있다. 미디어에서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청소년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남국 교수도 “이번 연구는 청소년처럼 미디어 자극에 영향을 많이 받는 집단에 대해서 전국 응급실 방문 데이터를 분석해 돌발성 자극의 영향을 확인한 데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돌발성 자극과 이에 민감한 사회 계층을 사전에 찾아내고 그 영향을 줄여나갈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y) 최근호에 실렸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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