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아파트 부정청약 위약금 몰취 조항 설명의무 대상 아냐"

최석진 2023. 5. 3. 09:4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부정청약자에 대한 위약금 조항은 설명의무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해도 계약을 해제할 때 분양한 시행사가 몰취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A씨가 대한토지신탁을 상대로 "아파트를 분양받은 수분양자 지위를 확인해달라"며 6000여만원의 반환을 청구한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한토지신탁은 2018년 3월 북한이탈 주민 B씨에게 공급대금 5억7500만원에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특별공급분에 대한 분양계약이었다. 또 계약 체결 당일 2950만원의 공급대금을 받고 아파트 발코니 확장공사를 해주기로 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B씨는 A씨에게 자신이 분양받은 아파트 분양권을 양도했다. 당시 B씨는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지급해야 할 6억여원의 공급대금 중 계약금과 1차 중도금 등 약 1억1800만원을 납부한 상태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의 수사 과정에서 B씨가 불법청약모집 조직에게 돈을 받고 자신의 신분증과 공인인증서, 주택청약저축통장, 북한이탈주민등록확인서 등 청약신청에 필요한 서류들을 넘겨 불법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 B씨는 주택법을 위반해 주택공급 교란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약식기소돼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용인시장은 대한토지신탁에 주택법을 위반한 해당 아파트의 공급계약을 취소하라는 공문을 보냈고, 대한토지신탁은 B씨와의 아파트 공급계약을 해제한 뒤 B씨가 납입한 5700여만원의 1차 중도금을 중도금을 대출해준 C 조합에 반환했다. 그리고 남은 6000여만원을 위약금 명목으로 몰취했다.

대한토지신탁과 B씨 사이에 체결한 아파트 공급계약서에는 '매수인이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위배되는 행위를 해 계약이 해제된 때에는 공급대금 총액의 10%가 위약금으로 귀속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아파트 수분양자의 지위를 뺏기게 된 A씨는 대한토지신탁이 B씨에게 이 같은 중요한 약관 조항의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다며 몰취한 위약금 6000만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 A씨는 B씨로부터 계약 해제에 따른 공급대금 등 반환채권을 B씨로부터 양수받고, 이를 채권자인 대한토지신탁에 통지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계약이 해제됐을 때 공급대금 총액의 10%를 위약금으로 당연히 대한토지신탁에 귀속하도록 한 조항이 설명의무 대상인지가 쟁점이 됐다.

A씨는 약관 중요 조항에 대한 설명의무를 정한 약관규제법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한토지신탁이 자신에게 6000만원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관규제법 제3조(약관의 작성 및 설명의무 등) 3항은 '사업자는 약관에 정하여져 있는 중요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여야 한다. 다만, 계약의 성질상 설명하는 것이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초 최초 분양을 받은 B씨가 체결한 계약서 중 위약금 조항이 포함된 페이지에 B씨의 서명·날인이 돼 있고, 유의사항 등 일부 조항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듣고 숙지했다'는 취지의 자필 서명도 돼 있는 점에 비춰 계약 내용이 충분히 설명·고지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또 1심 재판부는 "약관에 정해진 사항이더라도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고객이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거나 이미 법령에 의해 정해진 것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항이라면 그러한 사항에 관해서까지 사업자에게 명시·설명의무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원용하며 "이 사건 위약금 조항은 분양대금의 미지급, 관계 법령 위반행위 등 매수인의 귀책사유로 계약이 해제되는 경우 총 공급대금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 위약금으로 피고에게 귀속된다는 것으로서 통상적인 아파트 공급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내용의 규정이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매수인인 B씨로서는 대가를 받기로 약속하고 탈북민 기관추천 특별공급분 주택청약에 필요한 서류를 제3자에게 양도하는 등 주택법을 위반해 이 사건 공급계약이 해제되는 경우 위약금을 부담할 수 있음을 알았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이에 대해 명시·설명의무가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B씨가 체결한 계약서상 위약금 조항은 계약 체결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약관규제법상 설명의무 대상이며, 이를 위반했을 때에는 같은 법 제3조 4항에 따라 해당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1심 재판부와 달리 B씨가 부정청약을 통해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해서 위약금에 관한 조항이 설명의무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만든 아파트표준공급계약서 위약금 조항에는 '기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을 때'가 계약 해제 사유로만 규정돼 있을 뿐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경우에는 포함돼 있지 않고, 실제 수분양자의 부정청약 관련 행위나 주택규칙에 관한 규칙 또는 관계 법령 위반 행위를 위약금 부과 사유에서 제외하고 있는 분양계약서가 확인되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위약금 조항이 통상적인 아파트 공급계약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어 별도의 설명 없이도 수분양자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분양계약의 일반적이고 공통된 사항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다시 결론이 뒤집혔다.

제판부는 먼저 앞선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사업자의 약관 설명의무는 계약 상대방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약관에 정해진 중요한 사항이 계약 내용으로 돼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을 피하는 데 근거가 있다"며 "따라서 약관에 정해진 사항이더라도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고객이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거나, 이미 법령에 의해 정해진 것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항이라면, 사업자에게 설명의무가 없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대한토지신탁과 공급계약을 체결한 B씨 또는 아파트를 공급받기 위해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사람들로서는 공급질서 교란행위를 통해 공급계약 체결에 이르더라도 발각되면 공급계약이 유지될 수 없고, 그 때문에 발생 가능한 피고의 손해를 배상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은 개별적 설명이 없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할 것"이라며 "이는 이 사건 공급계약서와 달리 이 사건 위약금 조항을 두지 않은 주택 공급계약서가 일부 존재한다는 사정이 있더라도 마찬가지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원심은 이와 달리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이 사건 위약금 조항이 설명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라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약관의 설명의무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