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년]⑩‘산업통’ 자처 尹, 근로시간·방폐장 '첩첩산중'
'주69시간 논란' 등 골칫거리 산적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내놓은 산업계 주요 국정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 개편, 고준위 방폐장 설립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국가첨단전략기술 지원제도, 에너지 등 산업 각 분야 정책 가운데 2년 차 국정운영을 위해 시급하게 보완해야 할 부분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반도체, 보호 기술 기준 높아 부담…車, 자율주행 판 깔아야
먼저 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보완 과제로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선이 꼽힌다. 기술 보호 규정 기준이 너무 높아 오히려 국가첨단전략기술에 지정되지 않기를 바라는 기업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보다 중견·중소기업 사이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게 업계 평가다.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되면 관련 수출과 연구개발(R&D) 등 사업 전반에서 보호 의무가 생겨 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육성 대상은 없어지고 보호 대상만 남는 규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급성장할 것이란 기대가 컸던 분야로, 다양한 지원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국내 '자율주행 연구개발 생태계' 조성을 위해 행정안전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의 지원이 필요하고, 자율주행 연구에서 쌓이는 '데이터의 익명화' 처리에 관해 개인정보보호법 상 규제 개선도 보완해야 할 점으로 지목된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기업 전환 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박철완 서정대 교수(스마트자동차학과)는 "일렉트리피케이션(Electrification·전기화)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미미하다"며 "인수위 때 당선인 지시에 따라 청취한 민간 애로사항들이 아직 체계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민간 애로사항을 취합, 소관 부처 및 전문가들과 자동차와 이차전지를 연계한 신산업 체계 구축을 위해 자동차 관리법 개편을 논의했다. 배터리 전기차와 연료전지 전기차의 배터리팩과 연료전지 스택(시스템)에 별도의 고유 번호를 부여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주기를 관리하는 생태계 구축의 기본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토교통부에서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나 좀 더 신속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차전지, 세계 시장 ‘기술 평준화’ vs. 국내 기업 ‘초격차 기술’ …인식 차 줄여야
올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탄소국격조정제도(CBAM), 탄소중립산업법(NZIA) 등으로 세계 질서 재편이 예고됐지만 ‘기술 평준화’와 관련된 정책 지원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저가 전기차 시대에 대비해 저렴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도 생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수년간 제기됐으나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에선 소외됐다. 현재 테슬라 등 세계 전기차 업체들이 LFP 탑재를 늘리자 우리 기업들은 뒤늦게 LFP 배터리 생산에 뛰어들고 있다.
박 교수는 "정부가 최근 국가전략산업에 이차전지를 넣은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육성 방안이 초격차 기술 지원에 쏠려있는 점은 아쉽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미 우리 기업들이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배터리 생산에 집중해왔음에도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LFP 배터리를 주력으로 하는 중국에 점점 밀리고 있기 때문"이라며 "기초, 차세대, 생태계, 자원 등의 약점이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플랜B를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력 양성 대책도 시급하다. 첨단 분야 인력 양성에 집중돼 있고 '현장 인력' 양성 대책은 무(無)에 가깝다는 것이다. 연계형 인력 양성 사업을 더 확대하고 교육부에도 역할을 크게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 논리 벗어난 독립 에너지 기구 설립 속도 내자"
윤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줄곧 강조해왔지만 관철하지 못한 에너지 시장 기능 정상화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정부는 물가 급등 우려에 올해 1분기 전기요금을 9%대로 올렸다. 이는 시장에서 기대했던 요금 인상분의 4분의 1수준이다. 한국전력과 가스공사는 지난해 각각 32조원, 9조원의 적자를 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에너지정책학과)는 "반도체와 자동차를 팔아 번 돈을 에너지 비용으로 쓰고 있다"며 "시장 원리에 맡겨 전기요금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했다. 쉽게 말해 전기 가격이 너무 싸 수입한 석유 등을 이용한 만든 전기를 낭비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는 이어 "에너지규제위원회 설립을 논의한 지 1년이 됐지만 진척된 게 전혀 없다"며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인 에너지 기구를 만들어 에너지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고준위 방폐장)은 한국이 원자력발전소 운전을 시작한 1978년부터 풀지 못한 숙제다. 사용후핵연료는 매년 700t 배출된다. 지금은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 수조에 묻고 있다. 한빛원전은 2030년이면 100% 꽉 찰 것으로 전망된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란 사람이 1m 이내에 10여초만 노출돼도 사망에 이를 정도로 열과 방사능 준위가 높은 핵폐기물을 말한다. 원자력안전법에선 열 발생량이 2kW/㎥, 반감기 20년 이상인 알파선을 방출하는 핵종으로 방사능 농도가 그램당 4000베크렐 이상인 것으로 정의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하 500m 깊이에 영구처리 시설을 만들어 묻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윤 정부는 '언제' 지을지 법으로 정하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작년 11월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상정돼 현재 소위원회가 논의 중이다. 정작 '어디에' 지을지는 정하지 못했다. 정부, 정치권이 세운 계획도 없고 국민에게 공론화해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는 작업도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3대 개혁 중 하나 ‘노동’…공감대 형성 필요
'주 최대 69시간' 논란으로 국민 반대에 부딪힌 근로시간 개편과 관련해선 정책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는 의견이 나왔다. 윤동열 건국대 교수(경영학과)는 “주 69시간 근무가 아니란 해명에도 여론은 냉담하다”며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의 취지와 내용에 대한 설명과 정부의 건강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책 신뢰도 회복을 위해서는 대통령실과 당정이 혼선 없이 긴밀하게 이견을 조율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선·건설업 등 수주산업만큼은 근로시간을 예외적으로 유연하게 적용하도록 해달라고 기업들은 요구한다. 황용연 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정부에 가장 바라는 점은 (법정)근로시간을 늘려달라는 게 아니라 현행 주 40시간 및 연장근로 12시간 제도 안에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조선·건설 경영자들은 '법을 어길 순 없으니 차라리 수주를 포기하겠다'고 한다"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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