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까지 금" 소문도…40년전 67억 쏟은 '그분'만을 위한 곳
‘대통령의 별장’ 청남대가 마흔 살이 됐다. 1983년 건립돼 대통령 전용 휴양지로 사용돼오다, 세상에 공개된 게 2003년이다. 권력의 공간으로 20년, 다시 시민의 공간으로 20년 세월을 보냈다. 40년간 쌓인 이야기가 적지 않다. 청남대로 봄나들이를 다녀왔다. 마침 그곳에선 개방 20주년 기념 봄축제 ‘영춘제(5월 7일까지)’가 한창이었다.
1983년 67억원 투입해 조성
67억원을 투입해 조성한 청남대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고가의 가구와 미술품이 본관 내부를 장식했고, 전국에서 명품 소나무를 공수해 정원을 꾸몄다. 대청호를 굽어보는 골프장‧수영장도 딸려 있었다. 모든 것이 ‘그분’을 위한 전용시설이었다.
20년간 5명의 대통령이 청남대에서 휴가를 보냈다. 사용횟수는 김영삼 대통령이 28회로 가장 많았고, 사용일수는 노태우 대통령이 128일(103박)로 가장 길었다. 청남대는 대통령의 별장이자 제2 집무실로 기능했는데, 이곳에 머물며 나랏일을 정하는 일이 잦아 ‘청남대 구상’이라는 정치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93년 8월 청남대 휴가 직후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골프부터 테니스, 낚시까지 청남대 휴가 중 대통령의 여가 활동은 저마다 달랐다. 경비대와 경호원이 머물던 옛 경호동(별관)이 현재 역사관으로 활용 중인데, 역대 대통령이 남긴 소장품에서 그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노태우 대통령의 골프채, 노무현 대통령의 자전거, 김대중 대통령의 낚싯대 등이다.
배구공과 운동화, 테니스 라켓, 오리발, 당구 큐 등등 가짓수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통했던 전두환 대통령의 물품이 가장 많다. 전두환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 가리지 않고 두루 즐겼던 놀 거리는 대청호 유람과 낚시였는데, 청남대 야외 한편에 당시 사용하던 대통령 전용 보트 ‘영춘호’가 전시돼 있다.
청남대 산책
우선 청남대 본관은 침실을 비롯해 거실‧서재‧접견실‧식당 등 대통령의 공간을 두루 돌아보는 재미가 크다. 낡은 브라운관 TV, 노래방 기계와 전축 등 당시의 가전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개방 초기에는 욕실이 유독 인기가 많았단다. 청남대를 35년간 지킨 김찬중 운영팀장은 “대통령 별장이 베일에 싸여 있어 욕실에도 금 치장이 돼 있다는 소문이 돌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 본관의 모든 달력과 시계는 ‘2003년 4월’ ‘10시’에 멈춰있다. 청남대를 일반에 처음 개방한 2003년 4월 18일 오전 10시를 기리기 위해서다. 1988년 이른바 ‘5공 청문회’ 때 청남대는 ‘전두환이 만든 개인 호화별장’이라는 비난을 사며 갖은 구설에 올랐다. 당시 ‘전담 조경사까지 딸린 수억원짜리 나무’라고 화제를 모았던 것이 현재 본관 앞마당에 있는 모과나무다. 수령 233년으로 청남대에 있는 나무 중 가장 나이가 많다.
개방 20주년을 맞아 본관에서 하룻밤 머무는 숙박프로그램도 생겼다. 시범 운영을 거쳐 하반기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대통령 침실은 아니지만, 객실 하나 하나가 VIP룸이다. “손님 1호실은 5‧6공 시절 장관급 수석이 머물던 객실이고, 손님 3호실은 대통령의 일가친척을 위한 방이었다”고 김찬중 운영팀장이 귀띔했다.
청남대에도 기념사진 명당이 여럿 있다. 대통령 기념관 앞 연못은 과거 양어장이자, 스케이트장으로 사용됐던 장소인데,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착용했던 스케이트화가 별관 전시관에도 남아 있다. 대통령 기념관과 연못, 메타이세쿼이아 숲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수변 데크가 인기 포토존으로 통한다.
본관 뒤편 언덕의 봉황탑은 청남대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전망 덕에 인기가 높다. 경비대의 발칸 진지를 개조한 제1 전망대도 있는데, 관광객에게 가장 악명 높은 장소다. 전망대까지 645개 계단을 올라야 하는 터라 진을 빼야 하지만, 전망 하나는 일품이다. 청남대는 물론이고 대청호와 대전 시내까지 내다볼 수 있다.
청남대에는 탐방로 9개가 있다. 길기도 하거니와 코스마다 걷는 맛이 달라 취향대로 골라 걷는 편이 낫다. 이를테면 본관에서 시작해 호반의 정자 오각정을 거쳐 양어장까지 이어지는 ‘오각정길(1.5㎞)’은 호수를 끼고 걷는 산책 코스로 인기가 높다. 과거 ‘전두환 대통령길’로 불렸지만, 반대 여론에 많아지면서 2년 전 길 이름이 바뀌고, 동상도 별관 뒤편으로 옮겨졌다. 골프장을 중심으로 뻗은 ‘민주화의길(1㎞)’은 김영삼 대통령이 즐겨 뛰었던 조깅 코스다. 길 끝자락의 초가정은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유독 사랑한 정자였단다.
전국 명소가 된 대통령의 공간들
경남 거제시에는 이른바 ‘청해대(靑海臺)’라 불리던 섬 저도가 있다. ‘바다 위의 청와대’라는 뜻이다. 역사는 오히려 청남대보다 길다. 일제가 탄약고로 사용해 일찍이 요새화됐던 섬을 해방 이후 해군이 넘겨받은 뒤 1954년부터 대통령 휴양지로 활용했다. 이승만 대통령을 시작으로, 역대 대통령이 다녀갔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은 1960~70년대 거의 매년 저도를 다녀갔다고 전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임기 첫 휴가지를 저도로 택한 이유기도 하다. 당시 백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라는 문구를 새겨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저도가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 지정된 건 1972년의 일이다. 2019년 9월 섬이 일반에 개방되면서 47년 만에 빗장을 풀었다.
저도에 가려면 유람선에 올라야 한다. 전국 각지에서 관람객이 몰리던 개방 초기에는 궁농항‧장목항‧칠천도 세 곳에서 유람선을 띄웠지만, 지금은 궁농항에서 하루 두 차례 오가는 유람선이 전부다. 나머지는 코로나 확산 이후 운항을 멈췄단다. 거제유람선 김재도 대표는 “코로나 이후 부도를 걱정할 만큼 사정이 어려웠는데, 지난 3월부터 다시 관람객이 치솟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한 달간 입도객은 1만6000명이 넘는다. 2020년에는 한 달 입도객이 300명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저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 대통령 별장과 군사 시설을 뺀 탐방로와 전망대, 모래 해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강원도 최북단 고성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옛 별장이 있다.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인 화진포 호수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자리한 단층 건물이다. 별장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1960년대 철거됐던 것을 1999년 육군이 본래 모습으로 복원했다. 현재는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으로 운영 중이다. 규모는 작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휘호, 의복과 소품, 관련 도서 등을 만날 수 있다. ‘김일성 별장’으로 유명한 화진포의 성, 이기붕 별장도 인근에 있어 화진포를 찾은 관광객 대부분이 정해진 코스처럼 세 별장을 한 번에 돌아본다.
청주=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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