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날라리풍' 두려운 北…'외국물 노동자' 가두고 튼 영상
코로나19 봉쇄 해제를 앞둔 북한 당국이 해외에 불법 파견한 노동자들을 활용한 '외화벌이'를 본격적으로 재개한 가운데, 해외 노동자들에 대한 집중적 단속을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해외 생활 중 외부 세계를 경험하면서 북한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이에 반발해 이탈하는 행동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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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당국 운영 숙소에 사실상 감금
북한은 2019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제재 전까지만 해도 현지 언어와 기술이 능한 숙련 노동자의 경우에는 개인 또는 2~3명의 소규모 그룹이 자체적으로 숙식을 해결하며 일감을 따내는 방식을 일부 허용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해외 노동자들을 당국이 운영하는 숙소에 집단으로 모아 놓고 출·퇴근을 하는 방식으로 통제를 강화했다.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최근 블라디보스토크 현지를 확인하고 온 강동완 동아대 교수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노동자들의 숙소는 시내 번화가 인근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문 곳에 집중돼 있었다. 숙소 인근에선 건설 현장으로 출근하는 이른 아침이나 일과를 마치고 복귀하는 저녁 시간 이후에야 건설현장별로 노동자들이 각기 무리 지어 드나드는 모습이 포착됐다.
사실상의 강제 때문에 과거 이들이 자주 찾던 블라디보스토크 재래시장에서도 북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강 교수는 2일 중앙일보에 "예전에는 관리직 간부와 신뢰가 형성된 숙련공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일감을 찾아 돈을 벌고 일정 금액을 상납하는 방식인 '청부'를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최근에는 노동자 대부분이 북한 당국이 관리하는 건설현장에 투입되고 있으며, 청부를 나가는 경우에도 합숙소에서 출퇴근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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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자 속출…'김정은 찬양 방송' 의무 시청
특히 지난달 20일 저녁에는 당국이 운영하는 숙소에 북한 노동자들이 모여 북한군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조선인민혁명군(항일 빨치산) 을 다룬 '주체혁명의 첫 기슭에서'라는 제목의 '소개 편집물'을 시청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김정은 등 '김씨 일가'에 대한 우상화를 다룬 영상물로, 북한 당국이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정황이다.
북한이 해외 노동자를 단속하고, 사상 교육을 강화하는 배경은 최근 해외 파견 인력의 잇따른 이탈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지난 3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현지 북한 노동자들을 관리하던 간부가 탈북을 시도하다 발각돼 체포됐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간부는 블라디보스토크 내 북한 식당인 '고려관'의 부지배인이다. 그의 현지 체포 직후 고려관은 문을 닫았고, 중국인이 이를 인수해 곧 중국 식당이 들어선다는 말이 돌고 있다.
이밖에 지난해 11~12월 외화벌이를 위해 러시아 각지에 파견됐던 북한 노동자 9명이 집단으로 탈북해 국내에 입국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 중 2명은 현직 군인 신분으로 밝혀져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동요가 민간인을 비롯해 군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는 정황이 확인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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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물' 먹은 노동자…"北엔 양날의 검"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북한의 사회구조상 해외에 파견된 노동자는 북한 정권엔 '돈벌이'의 수단이자, 차단된 정보가 아닌 외부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된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는 김정은 정권에게 '양날의 검'과 같다"며 "김정은 정권에 필요한 통치 자금을 벌어들이는 핵심 '돈줄'이지만, 북한으로 귀국한 뒤에는 일반 주민들에게 소위 '자본주의 날라리풍'을 전달하는 주요 루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북한 당국은 북한 주민들의 사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반동문화사상배격법'을 만들어 한국 등 외부 문화의 접촉을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돈벌이를 위해 해외 파견 노동자를 추가로 내보내는 딜레마가 반복된다. 실제 자유아시아방송(FRA)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최근 함경북도 지역에서 중국으로 파견할 1000명 규모의 노동자를 모집하는 등 해외 파견 노동자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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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노동자 인권 문제 제기
정부 당국도 이런 정황을 파악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특히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의 수입은 김정은 정권의 주요 외화벌이 창구라는 점을 부각하는 동시에 이들의 열악한 인권 상황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겠다는 게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이런 기조는 한·미 정상이 지난주 채택한 공동성명과도 맥을 같이 한다. 양국 정상은 '워싱턴 선언'으로 강화한 대북 억제력을 전제로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북한의 '돈줄'로 떠오른 사이버 범죄 등을 원천 차단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 문제는 김정은 정권의 불법행위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사례인 동시에 국제사회가 강조하는 인권 문제까지 내포하고 있다"며 "북한을 외교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가치연대'에 방점을 찍은 한·미에게 주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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