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틈에 가격 인상" 인플레 기회삼아 이익 늘리는 기업들

뉴욕=조슬기나 2023. 5. 3.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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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배경에는 이 틈에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수익성을 높이고자 하는 기업들의 탐욕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은 왜 이렇게 끈적할까. 기업 이익 때문일 수 있다'는 기사를 통해 적지 않은 수의 기업들이 최악의 인플레이션 상황을 기회로 삼아 원가 상승률보다 더 큰 폭으로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상 기업의 제품 가격을 좌우하는 것은 원가, 타사 상품과의 경쟁 등이다. 이를 고려할 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공급망 차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식량·원자재 가격 상승 등은 최근 대다수 기업이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할 만한 충분한 이유였다.

하지만 작년부터 이어진 급격한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4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불편할 정도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WSJ의 진단이다. 이날 공개된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7.0% 상승했다. 이는 전월 상승폭보다 소폭 오른 것은 물론, 유럽중앙은행(ECB)의 물가안정 목표치를 훨씬 웃돈다.

WSJ는 이처럼 불편할 정도로 높은 인플레이션 뒤에는 기업들이 비용 상승분을 상쇄하는 것 이상으로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징후가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ECB 이코노미스트들은 "기업들이 수익을 늘리고 있다"며 이러한 부분이 임금상승보다 작년 하반기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실적 발표에서도 제품 가격 인상을 통해 기업들의 수익성이 높아졌음이 확인됐다. 건축자재 제조업체 홀심의 얀 필립 제니쉬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발표 당시 "우리는 거의 2년간 인플레이션 환경에 있었다"며 "매우 능동적인 방식으로 가격을 책정한 결과 오히려 마진은 개선됐다"고 밝혔다.

제품 가격을 13% 이상 올린 펩시코, 2개 분기 연속 가격 인상에 나선 킴벌리클라크는 1분기 호실적을 거뒀다. 맥도날드는 오히려 더 많은 고객들이 매장을 방문해 순이익이 63% 급증했다. 네스카페와 키캣으로 잘 알려진 네슬레 SA의 경우 9.8% 가격 인상으로 1분기 매출이 5.6% 늘어났다. 앞서 네슬레 측은 지난 2년간의 원가 상승분을 상쇄하기 위해 제품가격을 인상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UBS 글로벌 웰스매니지먼트의 폴 도노번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공급망 병목 현상,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을 알고 있기에 (제품 가격을 인상해도) 기꺼이 따라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가격 인상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며 브랜드를 훼손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최근 공급망 차질 등에 따른 가격 인상은 특정 기업이 아닌, 업계 전반에 걸친 이슈다. 이로 인해 당초 가격 책정 당시 고려해온 경쟁기업의 상황도 현재로선 주시할 이유가 적어졌다. 이사벨라 웨버 매사추세츠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시점에서는 기업의 가격 결정 구조를 전혀 다른 시점에서 봐야 한다"면서 "병목 현상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면 경쟁 기업도 가격을 따라 올릴 것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뤄진 상태"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패턴이 최근 미국 기업들의 실적보고서 내 수익 창출 패턴에서 확인됐다는 점도 꼬집었다.

특히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기업들의 탐욕이 유럽 등의 지역에서 식품가격 오름세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 WSJ의 진단이다. 알리안츠는 이러한 가격 상승분의 약 10%는 더 높은 마진을 추구한 기업들의 욕구를 반영했다면서 식품공급망의 핵심이 소수의 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알리안츠의 루도빅 서브란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식품 부문, 특히 유통 부문에서 경쟁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다만 이러한 기업들의 행보에 대한 반발도 확인되고 있다. 독일의 대형 유통업체 에데카는 최근 기업들의 가격 책정 정책을 비판하면서 과도하게 가격을 올린 일부 업체들의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에데카의 마르커스 모사 CEO는 "브랜드 제품 산업이 책임을 다하고, 인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인상폭도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실적 발표에서도 일부 기업의 CEO들은 소비자들이 점점 가격 인상에 저항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네슬레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프랑코이스 자비에르 로저 역시 "가격이 인하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노번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가성비가 형편없다는 소비자들의 평판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면서 이익 주도의 인플레이션 시대가 끝나고 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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