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주의 촌철生인] 나 자신이 아름답다는 생각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미국 완구기업 마텔이 최근 다운증후군 바비를 출시했다. 미국 다운증후군협회의 도움을 받아 다운증후군 여성의 외모 특징을 살려 만들었다고 한다. 1959년 처음 금발의 바비를 출시한 마텔은 세월이 흐르며 다양한 피부색과 머리색을 가진 인형들을 내놓았다. 휠체어를 타거나 의족을 한 바비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바비 인형은 바비 인형이어서 긴 속눈썹과 짙은 화장, 갸름한 얼굴, 잘록한 허리, 늘씬한 다리에 대한 집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로 태어난 여자아이들과 그들을 대하는 남자아이들이 미(美)의 기준을 세우는 데 바비 인형은 지대한 공헌을 했을 것이다.
바비 인형이 출시되고 반세기가 지나서야 여성의 미에 대한 새로운 캠페인이 나왔다. 다국적기업 유니레버사의 대표 브랜드 도브(Dove)에 의해서다. 2004년부터 도브는 ‘리얼 뷰티’ 캠페인을 전개했다. 전문모델이 아닌 평범한 외모의 일반인들을 모델로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 광고 속 모델이 화장술과 포토샵으로 조작된 미인이라고 폭로하고, 당신의 생각보다 당신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했다. 아름다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96세의 할머니가 타임스스퀘어 옥외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도브는 오랫동안 캠페인을 지속하면서 인상적인 작품들을 여럿 만들어냈다.
그중 하나, ‘Camera Shy’라는 제목이 붙은 1분14초짜리 광고는 여성들에게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의 반응을 모은 것이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내저으며 얼굴을 돌린다. 두 손으로, 모자로, 머리카락으로, 책으로, 쿠션으로, 냄비 뚜껑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 등을 돌리고, 문을 닫고, 저만치 도망가버리기도 한다. 미국 재즈 가수 로즈 머피의 노래 ‘Peek a boo’(까꿍놀이)를 배경음악으로 경쾌하게 이어붙인 장면들 뒤로 카피 한 줄이 떠오르며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언제 멈춘 건가요?”
곧이어 대여섯 살쯤 된 소녀들을 보여주는데, 그들은 앞의 여성들과는 달리 카메라를 피하지 않는다. 더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더 팔짝 춤을 추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흡족하게 웃는다. 아, 우리가 어렸을 때는 카메라를 피하지 않았구나. 카메라 앞에서 준비된 나와 준비되지 않은 나를 구분하지 않았구나.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 당당했던 것이구나. 이게 바로 리얼 뷰티!
얼마 전에 집행된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새 광고는 도브의 리얼 뷰티 캠페인을 떠올리게 했다. 궁전 같은 실내,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황금빛 드레스를 입고 카펫이 깔린 계단을 내려오는 한 여자.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품격이 다른’ ‘럭셔리의 주인공’ 같은 도도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향수병을 들어 올린다. 이어지는 여자의 멘트. “아름다움을 원해? 그럼 이런 광고에 속지 마.” 말이 끝나자마자 손에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향수병. 광고는 뜻밖의 반전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움은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모두의 일상, 그 안에 있다’고. ‘뷰티 이즈 리얼리티’라고.
새 광고가 게시된 유튜브에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기존 화장품 광고를 전복하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신선하다는 반응과 함께 모델에 대한 감탄이 이어졌다. 모델은 할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 올슨! ‘정말 아름답다’ ‘외국 브랜드 광고인 줄 알았다’와 같은 댓글들을 보며,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모두의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겠다는 이 브랜드의 다음 광고가 궁금해졌다. 도브의 리얼 뷰티조차 판타지가 되고, 나이가 들어도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것이 최고의 아름다움이 된 우리 사회에서 아름다움의 리얼리티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적어도 분명한 것은 세상의 모든 광고가 바비 인형이 공헌한 것보다 더 많이 왜곡된 미의식에 공헌해왔다는 사실. 그러니 이 카피만큼은 꼭 가슴에 새겨두자. 광고에 속지 마.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투잡뛰며 명문대 보냈더니…“결혼 때 얼마 줄거야?” [사연뉴스]
- “임신 중인데 너무 배고파요”…손내민 사장님 [아살세]
- “내가 먼저야!”…서울대 명예교수, 구내식당서 학생 폭행
- “집중해야지!” 13세 남아 160대 때린 과외교사 징역형
- ‘신동엽 동물농장 하차’ 논란 부른 PD “申에겐 죄송”
- 끝끝내 “보험금 8억 달라”…이은해, 무기징역 불복 상고
- 어버이날 선물 1위는 ‘이것’…평균 예산은 33만6000원
- ‘미성년자인거 몰라?’…성관계 유도 후 합의금 갈취 일당 검거
- 임창정 “라덕연, 아주 종교야” 하자…투자자 “할렐루야”
- “상대에 모욕감 주지마”…‘한석규 인터뷰’ 꺼낸 한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