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봉호 (12) “썩은 세상에 영어학이 웬 말”… 신학으로 진로 유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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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징집 영장을 받았다.
논산 훈련소 입소 전 대기소에서 받은 신체검사에서 몸무게가 47㎏으로 나와 48㎏ 이상이어야 하는 병역기준에 미달했다.
종교학을 부전공으로 택해 신학에 필요한 희랍어와 라틴어도 배웠다.
그러다 영어학에 관심이 생겨 학사 졸업논문은 가정법에 관해 썼고 영어학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도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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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유류창고 경비 소대 차출됐지만
상상 초월하는 심각한 부정부패 목격
이런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대학을 졸업하고 징집 영장을 받았다. 논산 훈련소 입소 전 대기소에서 받은 신체검사에서 몸무게가 47㎏으로 나와 48㎏ 이상이어야 하는 병역기준에 미달했다. 합법적으로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구실이 생겼으나 나는 병역의무는 당연히 이행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실망하고 당황했다. 기껏해야 1㎏이니 좀 올려 달라고 군의관에게 애걸했다. 병역면제 받은 걸 기뻐해야 할 텐데 기어코 입대하겠다 하니 기특했는지 눈감아 줬다. 부정으로 입대한 셈인데 훈련소에서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를 한 덕에 몸무게가 늘어 결과적으로 그렇게 큰 불법은 아닌 게 됐다.
후방이긴 하지만 모두가 기피하는 경비 중대에 배속돼 하루 12시간 보초를 서야 했다.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인적이 끊긴 들판에서 혼자 보초를 서며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듯”이란 시편 구절이 어떤 것을 뜻하는지 실감했다. 그보다 더 힘든 건 시도 때도 없이 가해지는 선임병들의 폭행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얻어맞아 절뚝거리면서 화장실 청소 등 험한 일은 다 맡아 해야 했다.
그러다 군용 유류창고를 경비하는 2소대에서 영어를 아는 병사가 필요해 그곳으로 차출됐다. 폭행은 없었으나 부정이 심각했다. 중대장부터 이등병까지 훔치지 않는 자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내 임무는 배급받아 가는 유류 종류와 양을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특무상사 하나가 커다란 돈 뭉치로 부정 동참을 회유했다. 거절하자 ‘작전’이란 이름으로 군용 휘발유 수십 드럼을 훔쳐갔다.
거기서 나는 진로를 바꾸기로 했다. 고등학생 때 윤봉기 목사님이 신학 공부를 권하셨으나, 부모님은 법대를 원하셔서 타협점을 찾은 게 영문과 입학이었다. 종교학을 부전공으로 택해 신학에 필요한 희랍어와 라틴어도 배웠다. 그러다 영어학에 관심이 생겨 학사 졸업논문은 가정법에 관해 썼고 영어학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도 입학했다. 영어학을 강의하신 고 김진만 교수의 특별한 관심도 영향을 끼쳤다.
학교와 교회에만 익숙하던 나에게 상상을 초월한 군대의 부정은 큰 충격이었고 이렇게 썩은 세상에 영어학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회의감을 갖게 됐다. 이런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는 게 급선무란 생각이 들었다. 접었던 신학을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유학하던 교회 선배가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입학원서를 보내면서 지원해 보라기에 즉시 신학교에 편지를 써서 목회가 아니라 기독교적 교육의 기초로써 신학을 공부하려는데 이런 학생도 허용하는지 문의했다. 우선 지원해 보라기에 원서를 보내고 선교사를 통해서 시험을 보았더니 합격해서 장학금과 여비까지 약속받았다. 유학자격 시험에 합격해서 그때 시행된 유학휴가란 제도 덕에 1년만 복무하고 1962년 8월 미국에 갔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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