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빚진 자 모여 배워서 남 주는 ‘섬김의 교육’을 펴다

임보혁 2023. 5. 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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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한동대학교의 길] <1> ‘경쟁보다 섬김’ 새 비전을 열다
경북 포항의 한동대학교 본관 현동홀 4층 기도실 벽면에 ‘나는 빚진 자라’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액자는 고(故) 김동명 LA한인침례교회 목사가 손수 붓글씨로 써서 1992년 당시 김영길 총장에게 선물한 것이다. 김 목사는 과거 미국에서 생활하던 김 총장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쳐줬다고 한다. 한동대 제공


경북 포항시 한동대학교(총장 최도성)에 가면 인상 깊은 장소가 있다. 학교 본관 현동홀 4층에 자리 잡은 기도실이다. 기도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액자에 커다랗게 붓글씨로 “나는 빚진 자라”라고 쓰여 있다.

어느 대학이 빚쟁이라 고백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써 붙이기까지 하는 걸까 싶었다. 하지만 한동대 초대총장이었던 고(故) 김영길 박사의 평생 숙원은 이곳에 오는 모든 이를 빚진 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빚진 자, 그 빚을 마음에 품고 전 세계로 나가 배운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아낌없이 쓰는 다음세대를 교육하는 것, 이것이 바로 28년 전 한동대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오직 ‘비전’으로 포항 땅에 세워진 이유였다. 당시 이 놀라운 비전에 한국교회와 4만2000명의 후원자가 눈물의 기도와 헌신으로 화답했다.

몇 해 전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부, 명예, 권력을 거머쥔 대한민국 0.1%의 명문대 입학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욕망의 끝을 보여준 이 드라마는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오늘을 사는 세대들에게 교육이란 계층 세습의 강력한 수단이자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보험이다. 입시사회와 대학가를 점령한 이 강력한 교육 패러다임은 ‘모로 가도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사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으면 결코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이에 한동대는 또 하나의 대학이 아닌, 세상을 바꾸는 대학으로 서기 위해 다른 길을 택했다.

“배워서 남 주자”는 이 말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더욱더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해서 대학 문을 연 이들에게 꽤 허무한 답이었을 법했다. 그러나 한동대는 ‘보다 더 치열하게 주는 삶’을 표방하며 이 시대에 도전을 준다. 공부의 목적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으로 남을 섬기는 데 있다고 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빚진 자들이 모여 만든 이 대학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이 먼저 변하고, 기꺼이 손해 보고 희생하는 삶, 주는 사람이 되자고 교육한다. 이런 담대한 비전을 선포한 한동대의 첫 시작은 ‘광야의 길’이었다. 개교 직전 애초 예정된 재단설립이 백지화됐다. 지독한 재정난을 겪었다. 그러나 한동대 구성원들은 이 광야의 길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한국교회가 함께 걸어가게 하셨다고 본다. 당시 온누리교회는 재단 기업의 사고로 개교가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한동대 개교인가를 위해 필요한 예치금의 부족분을 후원해줬다. 당시 이 교회 담임목사였던 고(故) 하용조 목사는 이 결정으로 개인적으로나 교회 내에서도 여러 어려움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대의 재정적 위기와 핍박의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신앙은 모험이다. 하나님께 남은 것을 드리지 말고 최고의 것을 드려라. 하나님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포기하라”는 말로 사람들을 권면했다. 결국 1995년 한동대 개교와 함께 첫 신입생 원서를 마감하는 날 400명 모집에 4872명이 지원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빚진 자’들이 나타나 한동대의 비전에 동참하며 기도와 후원으로, 자칫 재정 위기에 빠질 뻔했던 한동대를 구해냈다. 재정 위기 상황의 돌파구가 된 것이 바로 1996년 시작된 한 계좌당 1000원 후원 운동인 ‘갈대상자 후원 모금’이었다. 수많은 갈대가 모여 모세를 강물로부터 지켜낸 갈대상자가 됐다는 성경 속 일화처럼 후원자들은 한동대가 세파와 역경에도 세속화하지 않고 하나님의 대학으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최고령 후원자였던 고(故) 윤영태 목사는 개교 초기부터 그가 100세가 넘을 때까지 꾸준히 기도와 후원으로 함께 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대학설립의 소식을 듣고 먼 산꼭대기 위에서 건물을 짓고 시작했던 한동대 캠퍼스를 직접 찾았다. 한동대의 신조와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고맙다며 후원을 시작했다. 그는 한동대의 역사가 100년이 되면 개개인의 인격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큰일을 감당하리라 기대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개교식과 준공식, 제1회 입학식을 같은 날 동시에 치렀던 이 신생대학은 당시 파격적인 교육실험을 했다. 국내 최초로 무감독 양심시험 제도를 시행했다. 또 무전공·무학과 입학 및 복수 학위제도, 전교생 생활관 입주 및 담임교수제도 등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설립 이듬해 1996년 교육부가 선정하는 교육개혁 우수대학으로 선정됐다. 1997년에는 교육 및 연구 수월성 제고 분야에서 우수대학으로 선정됐다. 1998년에도 학생 선택권이 보장되는 교육과정 개편 분야에서 우수대학으로 선정되면서 3년 연속 교육개혁 분야 선두에 자리매김했다.

한동대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에 빚진 자들로부터 시작된, 존립이라는 광야의 길에서 한국교회 나아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지만, 같은 비전을 품은 수많은 빚진 자들을 만나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고 말한다.

한동대는 올해 개교 28주년을 맞아 약 1만6000명의 빚진 자들을 사회로 보냈다. 앞으로 기획 시리즈를 통해 빚진 자들의 대학을 표방하는 한동대가 지난 역사에서 교계와 사회에 끼친 의미는 무엇인지, 앞으로 기독대학으로서 나아갈 방향은 어디에 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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