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 외로움 덜어낼 네트워크 구축… 극복 사례 정보 제공도
<3부> 고립, 경종을 울리다
⑬ 영국은 왜 외로움부 만들었나
‘각자가 원하는 양질의 사회적 관계 불일치에서 비롯된 주관적이고 반갑지 않은 감정.’ 2018년 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고독부)’를 창설한 영국 정부의 외로움에 대한 정의다. 영국이 외로움부를 출범시킨 건 외로움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하자는 취지에서다.
영국 정부가 처음부터 외로움부 창설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와 국회(영국 의회)의 꾸준한 요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조 콕스 노동당 의원이다. 콕스 의원은 국제구호단체 옥스팜(Oxfam) 활동가 출신으로 하원의원 시절 외로움 문제와 함께 시리아 내전, 이민자 등 약자 인권을 위해 힘썼다. 그러다 2016년 한 극우주의자에 의해 살해됐다.
영국 의회는 콕스 의원을 추모하는 차원에서 외로움 문제에 대응하는 ‘조 콕스 위원회’를 만들었다. 이후 정부는 위원회와는 별도로 외로움을 담당하는 부처를 만들었다.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에 해당하는 영국의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DCMS) 부처가 외로움부 역할을 맡았고, 해당 부처 장관이 고독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외로움부 장관을 겸직하고 있다.
조 콕스 위원회와 함께 시민단체인 ‘외로움 종결 캠페인(CEL·Campaign to End Loneliness)’도 외로움부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로움부를 만들기 7년 전부터 외로움 이슈를 꾸준히 제기했다. 지난 27일 영국 런던에서 만난 이 단체의 로빈 휴잉스(사진) 프로그램 디렉터는 “단체를 처음 설립한 이유는 노년층의 외로움을 막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전 연령층으로 확대해 연구하고 있다”면서 “외로움은 성별과 나이를 떠나 떠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자 문제”라고 설명했다.
외로움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외로움 관련 보고서에서 외로움 해결을 위해 설정한 목표는 ‘낙인효과(Stigma Effect) 줄이기’다. 낙인효과란 어떤 행위나 모습만을 보고 단정지어 생각하고 낙인을 찍어 평가하기 시작하면 그 평가 대상은 점점 행동이 위축돼 평소 가진 능력마저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영국 정부는 외로움의 낙인효과를 줄이려면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봤다.
정부는 네트워크 구축 뿐만 아니라 외로움에 대한 증거 기반을 마련해 외로운 이들의 행동 사례를 연구하고 이를 축적하고자 하는 목표도 있다. 만약 사람들이 외로운 시기를 보낼 때 과거 경험자 사례를 토대로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현지에서 만난 외로움부의 아멜리아 에젤 콜 시민사회·청소년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신적 고통과 외로움은 양방향 관계”라며 “실제로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이 외로움도 동시에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자신이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느낄 때 주변에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외로움 문제 해결에 나선 영국 정부와 시민단체가 강조하는 건 유기적 관계 형성이다. 정부와 시민단체, 시민단체와 시민단체가 외로움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교회도 다르지 않다.
휴잉스 디렉터는 “외로움을 극복하려면 정부와 시민단체를 연결하는 허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휴잉스 디렉터가 활동하는 CEL이 추구하는 역할과도 일치한다. CEL은 정부와 함께 캠페인을 진행하는 건 물론 일반 시민단체가 외로움 극복에 동참하도록 실질적 조언과 도움을 주고 있다. 정부와 시민단체, 종교단체간 중간다리 역할을 감당하기도 한다.
실제로 CEL은 외로움을 전 세계가 협력해야 할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영국은 물론 정부 부처에 고독성을 두고 있는 일본, 고독부 창설을 고민 중인 호주와 미국 등 10개국에서 활동하는 외로움 단체 네트워크인 ‘글로벌 이니셔티브 온 론리니스 앤 커넥션(GILC)’을 만들어 교류하고 있다. 휴잉스 디렉터는 “한국에서 외로움에 관심이 있는 단체가 있다면 언제든지 가입을 환영한다”고도 했다.
외로움부도 2021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외로움 극복을 위한 정부 계획의 일환인 ‘태클링 론리니스 네트워크(Tackling Loneliness Network)’를 결성했다. 150여개의 공공·민간·자선 단체를 한데 모은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CEL과 협력해 외로움 극복을 위한 ‘더 허브(The Hub)’도 구축했다. 이 허브는 네트워크 회원들이 외로움 관련 연구 보고서와 행사 등을 공유하는 디지털 커뮤니티다. 현재 일선 전문가를 비롯해 국가 정책 고문, 학술 연구원 및 지자체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400명 이상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아멜리아 책임자는 “영국 정부는 자원 봉사와 지역 사회, 사회적 기업, 지자체 등과 긴밀히 협력해 외로움 관련 지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면서 “허브를 통해 외로움 극복 모범 연구 사례를 공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런던=글·사진 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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