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한미동맹, 한미관계 그리고 한일관계
2023년 4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큰일을 해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하여 미국을 방문한 윤 대통령은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워싱턴 선언(Washington Declaration)을 통해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 공격에 대하여 ‘즉각적, 압도적, 결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또한 미국은 ‘핵을 포함한 미국 역량을 총동원하여’ 이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한미동맹이 한층 강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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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한미동맹 이끌어낸 이승만
한일합방 방조한 미국 비판한 적도
국격 올리고 국가간 신뢰 다지려면
상대국에 성의 있는 자세 주문해야
」
한미동맹은 1953년 한국전쟁 직후 양국이 북한의 전쟁 재발을 억제하기 위해 체결한 조약에 기초한다. 형식적으로는 상호방위조약이지만 당시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안전을 미국이 보장한다는 약속이었다. 이 성과는 온전히 외교에 탁월한 이승만 대통령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한미동맹을 우산으로 하여 한국은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에서 7개 국가밖에 없는 50-30그룹(인구가 5000만이 넘고, 동시에 1인당 GDP가 3만 달러가 넘는 나라들: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한국)의 일원이 되었다.
한미동맹을 이끌어낸 이승만 박사는 그보다 10여 년 앞선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예견한 책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Japan Inside Out: The Challenge of Today)』를 썼다. 나중에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에서 그는 미국이 1882년 조선과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1905년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든 것을 방조했다고 비판하면서 미국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격(格) 있게 진실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더 깊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듯이 이 박사가 일찍이 미국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공유하며 쌓은 신뢰가 전후에 한미동맹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대지(大地·The Good Earth)』의 작가 펄 벅은 이 책의 서평에서 “나는 이 박사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모르는 사실, 곧 미국이 수치스럽게도 조미수호조약을 파기함으로써 일본의 한국 약탈을 허용했다고 말해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했다.
오늘날에도 이승만 박사가 당시 국제정세를 꿰뚫어 본 혜안이 필요하다. 먼저 윤석열 정부는 미국 첩보기관의 한국에 대한 도·감청을 국민을 대신하여 강력히 비판·항의하고 양국 간 신뢰관계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강조함으로써 우리의 국격(國格)을 세울 필요가 있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 등장 이후 미국 내 공급망 구축을 위한 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 및 고급기술 분야의 한중 무역 제재 등에 대해 양국 간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미국의 산업 및 무역정책이 양국 간 호혜적 시각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불이익 속에 성취한 미국의 번영은 한국경제의 저성장·양극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설득해야 한다.
대일관계도 마찬가지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은 관계 개선을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해왔다. 식민 지배의 침략을 사죄 반성한 19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와 2005년 고이즈미(小泉) 담화, 식민지 지배가 조선인의 뜻에 반해 이루어졌다는 2010년 간(菅) 담화는 전후 한일관계 발전에 중요한 징검다리가 되었다. 다만 2015년 아베(安倍) 담화는 한일합병(1910)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많은 선인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양국의 우호 관계에 균열을 가져왔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법이 낡은 법보다 우선하듯이 새로운 담화는 오래된 담화보다 우선한다. 현재 일본의 일반적인 역사 인식은 아베 담화가 대변하고 있으며, 적지 않은 일본인이 조선 침략은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상태로는 양국 관계가 일시적으로 봉합된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주도적인 결단을 내렸다. 우리는 기시다(岸田) 총리에게도 본인이 직접 나서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성의 있는 의사표시를 할 것을 요청해야 한다. 그 내용은 고이즈미 담화보다 더 미래지향적인 내용이기를 희망한다. 양국이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타협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와 함께 해결방안을 합의해 내는 외교적 과정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합의가 이루어진 다음 양국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자국민 설득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미국은 1905년 조미수호조약을 파기함으로써 일본의 한국 약탈을 묵인했던 책임을 뒤늦게라도 일부 떠맡는다는 의미에서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이끌어내는 데 일조하기 바란다.
각국의 정치지도자가 역사적 사실 앞에서 솔직해질 때 국격이 올라가고 국가 간 신뢰가 두터워지며 함께 더욱 풍요로운 미래로 나갈 수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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