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자본주의·민주주의, 안녕합니까?
연예인 임창정씨 때문에 널리 알려진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는 담합으로 주가를 올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선명히 보여줬다. 돈과 사람을 모은,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라덕연씨는 투자자가 약 1000명이고 전체 투자금은 1조원가량이라고 말했다(1600명에 8000억원이라는 보도도 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1인당 평균 10억원이다. 임씨는 30억원을 냈다고 하고, 1인 투자 최소 금액은 3억원이었다. 라씨는 연예인·의사·사업가 등 투자 여력이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주식 매입이 8개 상장사에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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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공동체의 위험을 알리는
주가 담합과 정당의 부정선거
‘방 안 코끼리’ 외면 언제까지?
」
주식 거래량이 많지 않았던 이들 회사의 주가가 뛰었고, 이를 목격한 일반투자자들이 가세했다. 대박 투자가 되는 듯했다. 그런데 해당 주식 다량 보유자가 매도에 나서자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담합 세력에서 배반자가 나왔다는 말도 있고, 억지 주가 부양이 한계에 봉착해 생긴 일이라는 해설도 있다. 자세한 경위는 금융 당국과 검찰의 조사에서 밝혀질 터인데 지금으로선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부터가 불법인지 명확지 않다.
당사자들은 통정매매(주가 조작 관여자들이 값을 정하고 서로 사고파는 방식)에 의한 시세 조종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이 사건이 의미하는 것은 더 끔찍하다. 자산이 꽤 있는 사람 1000명쯤 모으면 큰 회사 여러 개의 주가를 동시에 띄우는 게 충분히 합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된다. 한두 종목은 재력이 있는 수십 명만 모아도 된다는 얘기다. 주식 시장은 ‘세력’이 움직이는 것이고, 그 움직임을 포착해 이용하는 것이 투자 성패를 가른다는 생각, 결국 도박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사건은 민주주의에 의문을 던진다. 일반 유권자가 민주주의 효용을 체험하는 것은 선거 때다. 대통령선거가 제일 확실하고 그다음은 국회의원 선거다. 내 뜻을 대신 펼치라고 투표한다. 그렇게 모인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표 선거 때 뒷돈을 받았다. 돈을 댄 사람은 이권을, 수집·전달자는 자리를 원했다. 선출된 권력이 이권 카르텔의 정점을 차지했다.
모두 알다시피 정당은 민주 정치의 핵심이다. 시민 당원이 당의 대표를 뽑는다(일반 유권자 의사가 반영되기도 한다). 그런데 당 대표 선거에서 당원과 대의원의 표심에 영향력을 가진 국회의원에 대한 매표 행위가 있었다. 부정선거였다. 한국 민주주의를 이끌었다고 자부하는 민주당은 이 사태를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식대 등의 활동비”라고 변명하거나 관련 수사를 “야당 탄압”이라고 한다. 돈봉투 살포가 관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렵게 쌓은 우리 공동체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를 내는 다른 한 곳은 의료계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로 몰린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요즘 같은 정도는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의사가 대거 배출되는데, 정작 사람 생명을 구하는 필수 의료 인력은 부족하다. 그 이유를 우리 모두가 안다. 돈 잘 벌고 상대적으로 몸은 덜 고달픈 분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합리적 선택이다.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 때 어떻게든 자식을 의사로 만들려는 처절한 욕망을 봤다. 그 부모가 이 사회 최상위 지식인이었다.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민주당 돈봉투 사건, 의사 수급 문제가 연일 보도된다. 우리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자본주의·민주주의, 그리고 이 두 기둥이 받치고 있는 경제 시스템과 사회적 가치 체계가 공동체 구성원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의문을 품게 한다. 우리는 지금 ‘방 안의 코끼리’나 ‘회색 코뿔소’처럼 바로 옆에 와 있는 위험한 존재를 애써 모르는 척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코끼리나 코뿔소를 몰아낼 획기적 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 아니면, 야생 동물에게 밟히거나 들이받히는 불행을 나만 잘 피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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