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홍의 시선] 달려가는 미국, 움츠러든 일본

정재홍 2023. 5. 3.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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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미국의 놀랄만한 경제 성적의 교훈’이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광범위한 경제 통계를 기반으로 작성한 이 기사는 지난 30년간 미국 경제가 두드러진 성과를 거뒀다고 전했다.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 경제가 쇠퇴하고 있다는 기존 인식과 상반되는 보도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미국은 정치 양극화와 빈부 격차가 극심하고, 의료보험 부실로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이 많아 선진국 중 수명이 가장 짧은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미국 경제는 지난 30년간 엄청난 역동성으로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할 성취를 이루었다.

「 ‘혁신에 혁신’ 미국, 괄목 성장
변화 뒤진 일본, 30여년 부진
한국은 창의·역동성 되살려야

경제 바로미터인 국내총생산(GDP)의 경우 미국이 지난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 수준으로, 30년 전과 비슷하다. 이 기간 중 중국 경제가 엄청나게 도약하고, 인도·브라질 등도 크게 성장한 걸 고려하면 미국 경제가 선방했다. 이를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미국의 성취가 뚜렷해진다. 주요 7개국(G7)에서 미국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40%에서 지난해 58%로 뛰었다. 미국의 1인당 GDP는 30년 전 서유럽 국가들보다 24%, 일본보다 17% 많았으나 지난해에는 각각 30%, 54% 많았다. 일례로 미국 오클라호마 트럭 운전사가 포르투갈 의사보다 더 많이 번다.

미국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미국 GDP에서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90년 14%에서 2019년 18%로 올랐다. 또 2021년 미국의 빈곤율은 7.8%로, 미 인구조사국이 빈곤율 조사를 시작한 2009년 이후 가장 낮았다.

미국이 뛰어난 경제 실적을 거둔 이유로 방대한 시장과 함께 풍부한 인적 자원,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 꼽힌다. 미국 노동생산성은 지난 30년간 67% 증가해 유럽(55%)·일본(51%)을 앞섰다.

미국 대학은 세계적 경쟁력을 가졌다. 영국 신문 타임스의 대학 평가에 따르면 세계 상위 15개 대학 중 11개가 미국 대학이었다. 미국 정부와 민간의 연구개발(R&D) 지출은 미국 GDP의 3.5%로, 대부분의 선진국을 앞섰다. 창업 열기도 뜨겁다. 미국에서는 2021년 540만개의 기업이 창업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창업에 실패했을 때 개인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국가 중 가장 낮다.

이에 반해 일본 경제는 쪼그라들고 있다. 일본 경제는 한때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였으나 중국에 이어 올해 독일에도 역전당해 4위로 밀려날 처지다. 장기화한 디플레(물가 하락)와 급격한 엔저가 맞물린 결과다. ‘버블 경제’ 절정기인 1980년대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을 앞질렀고, 세계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중 8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일본의 장기 경제 부진 때문이다. 환율·물가를 고려한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일본의 1인당 GDP는 2018년 한국에 추월당했고, 수년 내 명목 달러 기준으로도 뒤처질 전망이다.

일본 경제가 주저앉은 이유로 80년대 중반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를 높인 플라자합의와 일본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 미·일 반도체협정이 거론된다. 이는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다. 일본은 80년대까지 이어진 메인 프레임 시대에는 반도체 강국이었으나 PC·인터넷·스마트폰 등 세계적 디지털 추세에 뒤처지며 국가 경쟁력이 추락했다.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30년 전 세계 최대 반도체 국가였던 일본은 메모리 분야에서 키옥시아 한 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주요 기업들은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다. 일본은 과거에 안주하며 혁신을 수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왔다.

한국은 일본보다 빠르게 변화에 적응해왔다.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이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선 데는 시대 흐름에 맞춰 혁신해 왔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지난달 무역수지는 14개월 연속 적자이고, 수출은 7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 부진으로 전체 수출이 직격탄을 맞았다. 저출산·고령화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가운데 반도체를 대체할만한 미래 먹거리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경제 역동성을 되살려야 한다. 조지프 슘페터가 역설한 ‘창조적 파괴’,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강조한 ‘애니멀 스피릿’이 살아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도전보다 안정을 우선하는 사회는 역동성이 없다. 정부와 민간이 기업 하기 좋고, 실패가 용인되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교육 수준이 높고 도전 정신이 있는 한국인의 역동성은 금세 꽃 피울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의 길을 가느냐, 일본의 길을 가느냐는 사회 역동성에 달렸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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