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않는 한국인… ‘걱정이네’하면서 커피 테이크아웃 [이슈&탐사]

정진영,김지훈,이택현,이경원 2023. 5. 3. 00: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멸종위기종 인간] <6·끝> 지구는 안 다쳐, 네가 다쳐
경기도 화성의 한 재활용 업체에 플라스틱 폐기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최현규 기자


“기후위기가 먼 나라 먼 미래의 일이 아닌 현재 우리에게 당면한 큰 문제임을 안다. 정부와 기업만 나설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행동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는 불편하고, 1년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다녀와야 한다.”

이는 국민일보가 설문조사로 재구성한 한국 성인의 기후위기 인식 및 환경적 실천 태도다. 평년보다 일찍 피고 진 벚꽃, 반복적인 산불을 접한 한국인들은 대부분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으며 사회 전반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인식과 실생활에서의 태도 사이에 거리도 발견됐다. 가령 한국인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일회용 플라스틱컵마다 956원의 가격을 물리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스스로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플라스틱컵 가격은 657원이었다. 이번 설문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 포인트다.


한국인 1명, 1년에 플라스틱컵 200개

국민일보가 지난달 설문조사기관 서베이빌리와 함께 성인 503명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인식과 대응 태도를 조사한 결과 75.9%가 “한국에서도 기후위기는 큰 문제”라고 응답했다. 73.6%는 “일상 속에서 나부터 행동을 바꿔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 책임이 있는 주체를 묻는 문항(중복응답)에는 68.0%가 ‘개인’을 선택했다. 정부(63.8%), 기업(58.4%)보다 큰 응답 비중은 한국인이 ‘모두의 기후위기 책임’을 공감한다는 을 시사한다.

다만 환경적 의식이 친환경적 실천 태도로 곧장 이어지진 않았다. 503명에게 1주일간의 일회용 플라스틱컵 사용 개수를 조사한 평균치는 3.8개였다. 시민들은 일회용기에 담긴 형태의 음식 배달을 1주일에 평균 3.2회 이용했다. 성인 1명이 1년간 플라스틱컵 198개를 이용하고, 일회용기 배달 음식을 166회 주문하는 셈이다. “불가피한 상황까지 감안하더라도 절대적인 이용량이 일단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석유를 증류해 만드는 플라스틱은 생산될 때와 폐기될 때 탄소를 배출한다. 온난화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미세플라스틱의 경우 생태계 전체의 건강을 위협한다.

여행만을 목적으로 비행기를 이용하는 횟수는 연평균 2.8회(편도 기준)로 조사됐다. 해마다 1.5회 해외여행을 하는 셈이다. 모두에게 여행할 권리가 있지만, 스웨덴과 영국 등 유럽에서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부끄러운 비행) 운동이 크게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항공기는 이동할 때 버스의 4배, 열차의 20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지구에 배출되는 전체 온실가스의 3%가량은 항공기를 통해 나온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들은 적어도 단거리는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는 공항을 신축·증축하는 것이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소송이 제기돼 법원이 심리 중이다.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행동은 그대로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설문 응답의 행간에서 일종의 ‘지체 현상’을 읽었다. 시민들이 아직 온실가스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경험하지 못했고, 피해를 입기까지 시간적·공간적 여유가 있다고 짐작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온실가스를 배출했다고 해서 그 영향이 당장 그 배출자에게 가지는 않는다”며 “가뭄으로 매우 고통 받는 아프리카 나라의 이야기를 알지만, 그게 아직 내 고통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인도 노동자가 인도 잠무 외곽의 산업 지역에서 재활용될 플라스틱 병을 선별하고 있다. AP=뉴시스

공유지의 비극

전문가들은 일회용품과 탄소배출에 익숙한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려면 ‘경제적 치환’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금전적 충격요법이 동반되지 않으면 자발적 친환경 실천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저렴하고 편리한 것’이 ‘비싸고 불편한 것’으로 바뀌어야 비로소 행동이 의식을 따를 것이란 고육지책인데, 해외에서는 이미 캔·플라스틱 보증금 등 일상생활 용품의 가격을 전보다 높인 제도가 시행 중이다.

국민일보는 이와 관련해 커피 플라스틱컵에 대한 환경분담금을 소재로 이 ‘경제적 치환’을 실험해 봤다. “일회용컵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으려면 플라스틱컵마다 얼마의 환경분담금을 부과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503명이 응답한 평균은 956원이었다. “일회용컵 이용에 대한 환경분담금을 얼마까지 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의 응답 평균은 657원이었다. ‘내가 부담할 돈’은 ‘다들 부담할 돈’보다 약 300원 낮았다.

문태훈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이 300원의 간극을 두고 “기후위기는 ‘공유지의 비극’ 문제”라고 말했다. ‘공유지의 비극’은 “아무도 비용을 분담하지 않은 공동 목초지는 풀이 없는 황무지로 변한다”는 이론이다.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일 이기심이 한데 모이면 공동의 실패를 낳는다는 의미다. 내가 환경보호를 위해 부담할 몫을 공동체의 부담보다 내려잡는 한국인의 태도 기저에는 “나는 잘하는데 다른 사람이 기후위기를 키운다”는 인식이 들어 있다. 모두가 남의 책임을 먼저 말할 때에는 목초지가 황무지로 변하는 법이다.

국내 커피전문점들은 텀블러를 가져오는 고객에게 음료 가격의 100~500원을 할인하고 있다. 이는 응답자들이 환경오염 억제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거나 스스로 분담하겠다는 환경분담금 액수보다 낮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사업자들이 다회용기를 제공하게 하는 시스템 도입을 병행하면서 소비자들도 그 부담을 함께 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에 자가용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뉴시스

남탓 대신 ‘내 노력’ 돌아볼 때

환경부 국가온실가스 통계에 따르면 온실가스 총배출량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이후 86~87%로 꾸준하다. 시민들은 이 에너지를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 “가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70.2%는 “있다”고 답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에너지 요금은 세계적으로 저렴한 수준이라서 시민들이 에너지 요금과 탄소배출, 기후변화의 밀접한 관련성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했다. 홍 교수는 “취약계층을 보조하며 기존 에너지 요금을 정상화하면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들처럼 태양광 에너지의 사용을 도심까지 확대하기엔 현실적 걸림돌이 많다는 말도 있다. 한국에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면 이웃 주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눈부심 피해가 발생한다거나, 비를 맞으면 유해물질이 나온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도 퍼져 있다. 윤 교수는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안보’에서도 중요한 해결책”이라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전기요금이 절약된다는 점이 앞으로 더 알려져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각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이행을 충실히 감독하고, 기업은 더욱 강력한 친환경 경영에 나서라는 요구도 거세다. 유권자·소비자로서의 권리 행사는 정부·기업의 변화를 이끌 장기적 대책으로 거론된다. 법원은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다수 기후변화 소송을 심리 중이다. 탄소배출 감축에 미온적인 기업, 플라스틱을 과도하게 쓰는 기업의 제품 구매를 줄이자는 운동도 있다. 환경단체들은 금융시장에서 삼척 석탄화력발전소의 회사채가 시장에서 전량 미매된 사례를 이야기한다. “해외 금융회사들은 석탄산업에 투자를 그만뒀고, 리스크가 크다”고 자산운용사들마다 전화를 건 결과다.

기후위기는 유례없는 비상사태이며 미래세대의 생명이 위태롭다. 이는 모든 인류가 당면한 문제이며, 내가 아닌 다른 누가 해결해줄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홍수열 소장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정부와 기업, 소비자가 해야 할 역할이 모두 다르다”고 했다. 그는 “책임을 따지기보다 진정한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 각자가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정진영 김지훈 이택현 이경원 기자 young@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